그때 그리고 지금, 연극 <보도지침>
1980년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화제의 연극!
정신을 집중하게 하는 날카로운 대사와 독백은 한 마디마디가 전부 뇌리에 박힌다.
되풀이 되는 역사
모든 언론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내기 급급했던 1980년대 독재정권 시절. 전두환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박탈한 채 일일이 모든 기사와 뉴스를 검열하고, 매일 아침마다 신문사에 “이 기사는 보도 하지 말 것, 이 기사는 최대한 짧게 실을 것” 과 같은 내용이 담긴 보도지침을 전송했다. 그들은 가장 진실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을 장악한 채 국민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믿겨지지 않을 만큼 비정상적인 이 상황을 모두 쉬쉬하고 있을 때, 1986년 9월 월간 ‘말’은 '보도지침-권력과 언론의 음모'라는 특집호를 통해 비정상적인 현실을 폭로한다. 잡지에는 1년여의 시간 동안 정부가 언론사에 보낸 584개 보도지침이 그대로 실렸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월간 ‘말’의 발행인 김태홍과, 보도지침을 제공한 한국일보 기자 김주언은 실형을 선고 받고 국가보안법 및 국가 모독죄로 구속되었다.
연극 <보도지침>은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정부의 보도지침을 고발하는 큰 줄기를 그대로 가져오되, 몇 가지 장치를 추가하여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연극은 주인공인 김주혁과 김종배가 판결을 받는 재판정에서 시작된다. 피고의 신분으로 법정에 선 두 사람과 그들의 변호인인 황승욱, 그리고 그들을 고소한 검사 최돈결, 이 네 사람을 대학시절 절친했던 연극부 동기로 설정하여 보다 극적인 연출을 이끌어낸다. 이 재판의 판사 역시 네 사람의 학교 선배이자 스승으로 설정했다. 연극은 이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자기 주장이 확고하고 고지식한 FM 김주혁, 자유 분방하고 낙천적인 김종배, 가난한 집에서 자라 오직 공부에만 몰두한 황승욱, 부족함 없이 자란 부잣집 도련님 최돈결 등 주인공 네 사람의 성격은 하나 같이 다 입체적이고 뚜렷하다. 그리고 <보도지침>은 이처럼 뚜렷한 캐릭터들을 똑똑하게 이용한다. 네 사람이 겪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 사건 이후 변화하는 네 사람의 각기 다른 삶을 보도지침 폭로 사건과 연결 짓는다.
몰라서 묻나?
연극은 2시간 내내 정신 없이 휘몰아친다. 다소 무겁고 어려울 수도 있는 소재지만, 분위기를 유연하게 해주는 적절한 유머도 간간히 첨가해 부담스럽지 않게 균형을 유지한다. 정신을 집중하게 하는 날카로운 대사와 독백은 한 마디마디가 전부 뇌리에 박힌다. 연극은 분명 30여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왜 그런 느낌이 들지? 라는 의문에는 판사 송원달의 “몰라서 묻나?”라는 대사가 가장 명확하고 속 시원한 대답이 되어 준다. 이처럼 어딘가 익숙한 그 느낌 덕에 관객들은 더 깊게 <보도지침>에 빠져든다. 되풀이되는 비극적인 역사를 두 눈과 두 귀, 그리고 온 몸으로 느끼면서 “어디로 갈 생각인가”라고 물어보는 송원달의 마지막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보도지침>은 공연 전부터 제작자의 발언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공연계의 주 관람층인 20~30대 여성을 무시한 제작자의 발언 때문에 보이콧 사태가 일어났고, 실제 많은 취소표가 생겨났다. ‘말’과 ‘생각’에 대해 민감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만든 사람이, 정작 그 ‘말’과 ‘생각’을 진중하지 못하게 내뱉었다는 게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작품 자체가 지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흡인력 있는 스토리, 탄탄한 연출, 그리고 현 시대를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연극 <보도지침>은 6월까지 수현재 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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