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키의 연극 데뷔, <지구를 지켜라>
키치한 무대 위에 벌어지는 폭력
관객들은 SF와 코미디가 뒤섞인 상황 앞에서 코웃음을 치려다, 병구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병구의 세계가 견뎌낼 수 없는 사회를 견디기 위해 만든 위약같다는 느낌에 슬퍼진다. 지극히 악역으로 대표되는 사장을 인간답지 않게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도, 사실은 병구를 인간으로 대접해주지 않은 사회의 반작용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이름은 유명하지만 정작 본 사람은 찾기 힘들다고 하는 마이너 영화에 속한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병구와 병구에게 외계인으로 지목되어 납치된 강만식, 병구의 조력자 순이, 병구와 순이를 쫓는 추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영화가 전개된다. 특유의 키치함과 발설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어이없는 엔딩으로 호불호를 갈리게 만들었던 원작을 10년이 지난 후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동명의 연극 <지구를 지켜라>로 새롭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놈들은 모두 사실 외계인이다
김경주 시인의 시 「드라이아이스」에는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사실을 직면하면 어떻게든 버티다 나중에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방법과 언어를 찾으려 한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고통을 잊거나,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을 볼모로 잡은 범인을 지지한다든지, 세상에 혼자 남았을 때 상상속의 친구를 만들어 낸다든지 하는 경우처럼, 병구는 권력과 폭력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잃는, 생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기꺼이 비이성적인 존재가 되어 상황을 이해해보려 한다.
병구가 택한 방법은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이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지구를 무너뜨리려는 외계인이라고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자신이 일했던 공장의 사장이 외계인이며, 개기일식 때까지 외계인을 고문해 왕자가 어디로 오는지 알아내지 못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은 주가 조작에 연루되고 조폭을 고용해 노조 간부에게 린치를 가하며 연예인과 스캔들에 휘말리기까지 하는 권력자이다. 관객들은 SF와 코미디가 뒤섞인 상황 앞에서 코웃음을 치려다, 병구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병구의 세계가 견뎌낼 수 없는 사회를 견디기 위해 만든 위약같다는 느낌에 슬퍼진다. 지극히 악역으로 대표되는 사장을 인간답지 않게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도, 사실은 병구를 인간으로 대접해주지 않은 사회의 반작용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0년 후, 연극 무대
온갖 촬영 기법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병구를 조명한다. 제작사 페이지원과 연출가 이지나가 2년 간 고민한 끝에 조용신 작가, 음악감독 김성수, 세트디자이너 서숙진, 영상디자이너 정재진 등 공연계 굵직한 스텝을 섭외하고 뮤지컬배우로 활발하게 활약 중인 샤이니의 키(Key)가 일찌감치 병구 역의 출연을 결정하면서 무대의 한계를 넘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가 컸다. 연극 시연이 끝나고 기자들은 질문을 던졌다.
키는 첫 연극으로 <지구를 지켜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개런티나 극장의 규모보다는 이런 좋은 작품, 장르, 콘텐츠가 있다는 자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고 공부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지나 연출은 사실적이지 않은 과장된 연기와 육두문자를 쓴 이유에 대해 “키치적인, 만화적인 부분을 많이 골랐다. 극한의 상황에서 가해를 하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나오는 욕을 참으면서까지 우아해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음악은 빠른 템포에 전자음이 가득했다. 영화의 미장센은 무대의 영상 효과로 대신했고, 원작보다는 조금 더 만화적인 느낌이 강했다. 배우들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과거를 넘나들며 심리전을 벌이고, 모자란 배역은 멀티맨 역할을 맡은 육현욱 배우가 순간순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극을 이끌어나갔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위악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아름답고 실력있는 배우들과 스텝진이 다시 불러낸 <지구를 지켜라>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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