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우리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인문학이 처음 태동했던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의 아포리아(Aporia)라 명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았다. 이때 기록된 책이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다.
그리고 이들 고전은 기원후 8세기,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시대에 군주나 봉건 귀족의 자제를 위한 리더십 교육 과정으로 재탄생한다. 새로 탄생한 왕자(Prince)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거울(Mirror)과도 같다고 해서 그 이름도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이라 했다. 혼탁한 세상에 대중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나라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에 대한 갈망이 이를 태동시킨 것이다.
고전에 기록된 그리스 아포리아 시대의 실감나는 현실을, 그리고 아포리아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가 성찰해야 할 가치들을 통해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망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날카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본문 미리보기
북극성이 어디 있는지, 내 인생의 좌표는 어느 곳인지,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자신을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숙고하라는 요구입니다. 이런 성찰을 위해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아포리아(Aporia) 시대, 즉 ‘길 없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문학의 과제입니다. (5쪽)
아포리아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Lack of Resources)’, 즉 ‘길 없음(Impasse)의 상태’이자 ‘출구 없음(No Exit)의 상태’를 뜻한다. 이것은 위기(Crisis)보다 더 심각한 상태다. 위기 상황에서는 그래도 어떤 조치를 취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포리아는 더 이상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아포리아 상태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비로소 절감 하게 된다. (17쪽)
그리스에서 생겨난 이 말의 원래 뜻은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다. 그리스는 약 1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200개가 넘는 섬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래서 도서(島嶼) 간 이동을 위한 항해술의 수준이 높았는데, 바람을 이용해 돛으로 파도를 타고 넘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만큼 해상 사고의 위험도 잦아졌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섬과 섬 사이를 항해하다가 어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즉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에 직면했을 때를 아포리아라고 했다. (17~18쪽)
군주의 거울은 기원후 8세기, 유럽이 본격적으로 중세로 접어들던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인문학의 리더십 교과 과정이다. (20쪽)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군주나 봉건 귀족의 자제가 탄생할 때마다 그에 적절한 군주의 거울이 그 나라의 학자나 사제들에 의해 집필됐다. 새로 탄생한 ‘왕자(Prince)’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거울(Mirror)’과도 같은 탁월한 리더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이라 불렀다. (20~21쪽)
기원전 5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리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노출된다. 그리스의 아포리아, 즉 길 없음의 상태가 시작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초, 즉 499~449년에 촉발된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가 직면한 첫 번째 아포리아다. (29~31쪽)
그리스에 밀어닥친 두 번째 아포리아는 기원전 431~404년 페르시아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그리스에 기원전 5세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테네의 황금기(The Athenian Golden Age)’인 동시에 참혹한 전쟁이 두 번이나 발발했던 죽음과 폭력의 시기였다. 그리스인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내전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함께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읊던 동족끼리, 같은 헬라어를 쓰는 피붙이끼리, 올림픽이 열리면 함께 뛰고 달리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친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31쪽)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현자 소크라테스Socrates(B.C. 469~399)가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아테네라는 도시가 철학에게 첫 번째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사람들의 저주를 받으며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리스의 세 번째 아포리아는 과거 두 번의 전쟁처럼 외부 요인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점이 무엇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33~34쪽)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리더의 위치에 오르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그 사회는 아포리아에 처하게 된다. 행복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왕과 명예욕에 불타올라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킨 군주, 그리고 물질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군이 나라를 이끌면 그 나라는 쇄락을 면치 못하게 되고 온 국민이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81쪽)
오만이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오만 때문에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패전하고 말았다. 이것이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탐사 보고서가 내린 결론이다. 잘못된 리더의 오만이 문제를 일으켰고, 그것 때문에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무고한 백성들만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83쪽)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실체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그리스에서 일어난 내전에 대한 기록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영원히 반복될 보편적 역사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다. 반복되는 역사의 전후좌우를 살펴보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밝힘으로써 후대 사람들에게 진정한 역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지도를 그려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92쪽)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또 다른 제자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그리스 최고의 군주의 거울을 제시했다. 플라톤이 철학과 관념의 세계에 머물렀다면, 크세노폰은 만인대와 함께 페르시아 고지를 오르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인물이다.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했다면, 크세노폰은 동굴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왜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지,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지도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남겼다. 결국 플라톤과 크세노폰 두 사람은 아포리아의 시대에 대응하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한 셈이다. (178쪽)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한글 구약성서에는 ‘고레스 왕’으로 번역됨)는 비록 이교도들의 왕이었으나 “여호와께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의 사자였다.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집단 포로 신세로 전락했을 때, 그들을 해방시켜주고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만든 왕이 바로 키루스 대왕이기 때문이다. (180쪽)
불확실성에 의존한다는 것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에게 자신 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것과 같다. 탁월한 장수는 자신의 운명을 불확실한 행운에 의지하지 않는다. 특히 나라와 같은 큰 집단을 책임지고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키루스와 같은 군주에게 불확실성에 의존하는 태도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불확실성과 행운에 의존한다는 것은 군주의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217~218쪽)
위대한 제국은 대리석이나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제국은 영토가 아니라 사람이다. 제국은 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319쪽)
키루스가 꿈꾸던 페르시아제국은 건물의 총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고, 인재였으며, 그런 인재를 모으는 방식은 본인 스스로 그런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키루스가 남긴 마지막 ‘군주의 거울’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324쪽)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김상근 저 | 21세기북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우리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인문학이 처음 태동했던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려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의 아포리아(Aporia)라 명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답을 인문학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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