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읽다 포기한 적 없나요?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 역자 이동희 교수
한국에서는 주로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기 있지만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도 세계에서 널리 읽히는 책이다. 소설로 비유하자면 불핀지가 단편집이라면 슈바브는 장편인데, 각 신화를 엮는 줄기가 있어 읽기에도 재밌다.
세계를 이해하려면 유럽을 알아야 하고 유럽을 보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한다는 말에 누구나 한 번은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독을 시도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불핀치가 정리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단편적인 묘사 위주라 끈질기게 읽게 하는 힘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따로 존재하는 신화를 재구성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나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총 3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뤄졌지만 읽기에 지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번역한 이동희 교수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구하는 중에 이 책을 완역하기 위해 2년에 걸친 시간을 쏟았다.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불핀치 버전을 많이 떠올리는데요.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우리나라에는 미국 문화 영향 탓인지 주로 불핀치 버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소개되었습니다. 볼핀치 버전은 단편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하고 있어, 이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토막난 조그만 이야기들이나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되다 보니, 불핀치 버전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사건과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지 않아 헷갈린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합니다. 불핀치가 여러 원전들을 참조하기 보다는 주로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의존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구스타프 슈바브는 전설, 신화, 그리스 비극 등 여러 원전을 충실하게 섭렵해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재구성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진 이야기의 극적인 긴장을 놓치지 않고 서로 연관되는 이야기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을 위해 현지를 답사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계기가 있다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번역을 위해 현지를 답사한 것은 아닙니다. 원래 저는 철학전공자로서 철학을 중심으로 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양 문화 지역을 답사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런 기획 속에 고대 그리스 지역을 답사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요성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 지금 터키에 있는 트로이나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미케네 지역을 간다면 거대한 돌덩어리의 잔해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그리스 지역을 함께 여행하면서 계속 돌덩어리들만 보니까, 이렇게 한탄을 하더군요. ‘돌만 보니 돌아 버리겠네!’ 돌도 이야기를 알면, 달리 보이고,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 얽힌 이야기와 의미를 모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는 고대 그리스 문화뿐만 아니라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헤브라이즘과 더불어 유럽 문화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자, 동시에 예술적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지를 답사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아야 서양문화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독일권에서 널리 읽히는 이 책을 번역해 소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고전은 현대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21세기 대한민국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지금 갈수록 중요해 지는 상상력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인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신들과 인간들, 동물들, 심지어는 바람, 강 등 자연 사물들에 대한 무수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이 캐릭터들이 신화 곳곳에 등장하며 이야기의 극적인 긴장과 재미를 줍니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스핑크스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극적인 긴장이나 재미도 매우 줄어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많이 있다고 하여도 잘 짜인 스토리가 없다면, 그 캐릭터가 제대로 살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주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갖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속에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 및 인간의 행위와 관련하여 항상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고, 감추어진 욕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조명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신화를 보면, 인간이 초월적 존재들인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겸허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지 못하면 결국 파국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렇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신들과 인간들이 얽혀 만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됩니다.
많은 신화 중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유럽 신화나 한중일 신화 등과 다른 그리스 로마 신화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전 세계인이 애독하는 고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서양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그 영향을 받은 데서 기인하는 것도 큽니다.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니까요. 그러나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만한 어떤 보편적인 이야기나 의미 같은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없었다면 아무리 강요해도 그것을 읽지 않게 되겠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도덕책처럼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고대 게르만족 사이에 퍼졌던 고대 북유럽 신화는 기독교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지배하면서 서양을 지배하게 되면서 쇠퇴하게 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고대 게르만족의 북유럽 신화가 나치와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도구로 쓰일까 조심한 측면도 있습니다. 고대 북유럽 신화에도 토르와 오딘 등 무수히 많은 신과 인물이 등장하고, 흥미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어 그리스 로마 신화와 또 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한중일 신화도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한중일 신화가 계속 발굴되고, 구스타브 슈바브가 했던 것처럼, 좀 더 체계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져 독자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사랑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방대한 신화를 번역하셨는데요. 번역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제일 어려운 점은 책이 방대해서 번역하는 데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점입니다. 2년 동안 날마다 번역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마다 약간씩 다른 전승도 있고 또 충돌되는 이야기도 있어, 서로 비교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 혹은 인물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장 좋아하는 신은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최초의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가 만든 인간을 돕기 위해 불을 훔쳐다 주고 그 대가로 매일 밤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는 고난을 당합니다. 제우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불굴의 정신이 프로메테우스 모두에게 들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반해 칼 마르크스는 자기의 아이콘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인, 대학생, 청소년 등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독자는 다양합니다. 각 독자들이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까요?
무수하게 많이 등장하는 신들이나 인물들의 생소한 이름들에 당황하지 말고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옛날이야기를 읽듯이 쭉 읽어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수많은 신과 인물과 사건이 얽히며 계속해서 전개되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에 그 묘미가 있습니다. 읽다 보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흥미 있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과 인물에 대해 친숙해 지게 될 것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신과 영웅의 시대구스타프 슈바브 저/이동희 역 | 휴머니스트
1838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화 필독서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고전. 독일의 교육자이자 시인인 구스타프 슈바브는 방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섭렵하고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고대 시인들의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거나 유럽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화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에서부터 로마 건설에 이르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스 고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극적인 감동까지 생생하게 살려낸 작품이다. 독자들은 대하소설처럼 유려하게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으며 복잡하게 느껴졌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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