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쓴다는 것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감당하는 경험
하긴 아이를 두고 득실을 따지면 뭣하나. 이토록 귀찮은 존재가 이토록 귀엽기만 한데.
초등학교가 개학을 했다. 만세! 4주 가까이 삼시 세끼 딸아이의 밥과 간식을 만들고 집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지냈다. 더불어 내 머릿속은 더욱 하얗게 텅텅 비어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음에 따라 감각은 무뎌지고 원래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더더욱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쉬운(?) 글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있을 때 쓸 수가 없다.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길어 올려야 하는 종류의 글을 써야 할 때 곁에 있는 아이는 사랑스러운 방해꾼이다. 육아와 글쓰기는 그렇게 상충되는 개념이다.
아이가 없는 작가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당장 국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물론 국내에도 소설가K,J,B가 아이 없이 부부끼리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부는 자유롭게 외국 생활을 하기도 하며 내키는 대로 이사도 한다. 언제라도 글을 쓰거나 안 쓸 수가 있다.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글을 집중해서 쓸 수도 있고 부담 없이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신청할 수도 있다. 그 자유와 가용시간이 부럽다.
반면 나는 딸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거나 내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야 한다. 혼자 사는 어떤 작가는 글을 쓰기 전 이런저런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여유는 꿈꿀 수도 없었다. 아이를 보내놓고 몸을 휙 돌리면 그때부터 바로 일의 본론으로 들어가야 겨우 시간을 맞추곤 했다. 가사노동도 아이가 있는 저녁 시간에 미뤄서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든 온전히 글쓰기에 쓰기 위해 애썼다. 적지 않은 숫자의 여성작가들이 아이가 한참 클 무렵, 출간 공백이 있는 것을 넌지시 목격하게 된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물리적으로 글쓰기에 득보다 실이 크기에 글쓰기를 인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미 늦어버렸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글 쓰는 일상을 잘 영위해나가면서 내 마음이 육아로 지쳐서 낡아가지 않도록 소중히 다뤄야 할 것이다. 스티븐 킹도 이십 대의 젊은 아빠였던 시절, 두 아이를 키우면서, 허드렛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어떻게든 따로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해서 미칠 듯한 집중력으로 썼다고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고백한 바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직면해야 한다.
아이를 가지는 일이 글쓰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경험’일 것이다. 아이 때문에 제한받고 못하는 경험이 있는 반면 아이가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부모가, 혹은 엄마가 되는 경험, 자식을 사랑하는 슬픔과 기쁨, 자식을 통해 나의 성장기 시절을 되짚어보는 경험, 이타적인 존재가 되는 경험, 자식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경험,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감당하는 경험. 육아에세이나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때가 아니더라도, 부모라는 이름이 부여하는 역할의 다양한 경험은 특별하다. ‘자식이 있어야 철 든다’라는 말에는 동의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결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맞다.
하긴 아이를 두고 득실을 따지면 뭣하나. 이토록 귀찮은 존재가 이토록 귀엽기만 한데. 보고만 있어도 그저 좋은데. 지금은 이렇게 글로 투덜거린다 해도 머지않아 지금의 이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고 지독히도 애틋하게 그리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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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