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연재 결정은 어려워
주변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마음의 진짜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이것이 감당, 극복해야 할 일인지, 그만두어야 하는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개인적인 판별법은 찜찜함이 지속적으로 온 몸을 맴돌면 위험 신호요, 밤잠을 설치면 확실한 경보였다.
돌이켜보면 지금 쓰고 있는 <채널예스> 연재처럼 쉽게 쓰기로 결정한 연재도 없었던 것 같다. 서점 웹진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을 것이고, 쓰고 싶은 일상의 주제를 택하면 되니까 마음의 부담도 없었다. 고로 마감 스트레스도 별로 없다.
반면 얼마 전,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신문에서 봄에 새로 생기는 지면에 상담 칼럼을 쓰자고 섭외가 들어왔다. 오랜만의 ‘종합지’ 섭외라 남편 포함 주변 사람들은 좋아해 주고 축하해주었다. 나도 들뜬 마음으로 승낙을 했다. 한데 승낙하고 돌아서보니 기쁘다기보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시험판을 만든다고 미리 첫 회분 원고를 신문사에서 요청하자 그때부터 부담은 스트레스로 뒤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낙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쓰겠다고 말해놓은 상태,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프로답지 못했다. 짜증이 나 있는 나 자신에게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나 대체 왜 이러지?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한동안 연재를 안 하다가 하려니까 그 압박감 때문에.
방사능 치료 입원을 앞두고 있어 심란해서.
아이가 겨울 방학 중이라 삼시 세끼 갖다 바치는 생활에 지쳐 있어서.
나이 먹어서 그냥 기운과 열의가 빠져서.
다른 ‘마가머’들한테 내 상태에 대해 하소연하니 그건 아주 정상적인 ‘마감 스트레스’라고 일깨워주었다. 막상 하면 또 곧잘 하면서, 라며 그들은 내가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마음을 다시 잡으려고 했지만 그다음부터 매일 밤 악몽을 꾸면서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사태는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하여, 막다른 골목처럼 한 후배에게 상담을 했다. 나 대체 왜 이러냐고. 그랬더니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관두세요. 힘들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상담 칼럼의 세계는 졸업한 것 같아요.
기껏 졸업한 길을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곡을 찔렸다. 예전에 했던 것을 굳이 다시 하는 것, 작가로서는 ‘사이드잡’ 같은 상담 칼럼을 다시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즉 해야 할 동기가 애초에 전혀 없는데 주어진 일을 거부하는 내가 성실하지 못한 건가, 프로답지 못한 건가, 배부른 것 아닐까, 라며 번외의 갈등을 일으키며 자책하고 있던 것이다. 곰곰 생각해봐도 예전에 한 신문에서 무려 3년 가까이 상담 칼럼을 쓴 적이 있어서 동어 반복을 걱정했고, 이미 상담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던 것이다. 연재를 앞두고 하고 싶지 않았던 간절한 마음은 일시적으로 자신감이 없어지거나 겸손한 것이 아닌,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신문사에게는 연재를 못 하겠다고 했다. 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안 하겠다고 해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주변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들어오는 일이라면 무조건 군말 없이 하라던 포주 같은 남편도 다행히 내 결정에 ‘잘했어. 인생은 마음가는 대로 운칠기삼이여’라며 예상 외로 이해해주었다.
마음의 진짜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이것이 감당, 극복해야 할 일인지, 그만두어야 하는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개인적인 판별법은 찜찜함이 지속적으로 온 몸을 맴돌면 위험신호요, 밤잠을 설치면 확실한 경보였다. 또한 그 두겠다고 결정한 후, 아쉬움이나 미련같은 찝찝함이 일절 남지 않고 그 건에 대해 자연스럽게 잊어가면 그것은 그 포기가 옳았음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포기가 끝은 아니다. 속 깊은 후배가 해 준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대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것 잘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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