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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할 만한 삶을 상상한다

『젠더 트러블』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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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보면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존재들이다. 무척 당연한 말이다. 새삼스럽게 말하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비롯한 타자들 간의 차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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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6일 아침. 나는 신문을 회사 1층에서 가지고 올라오며, 10여개의 일간지 첫 면을 모두 채운 테러의 기록을 보았다.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있어서는 안 되는 테러 소식을 접한 것은 주말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안타까움과 애도였다. 하지만, 그 뒤에 든 생각은 또 다른 폭력의 발현 혹은 공모였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어떠한 폭력에 거부하고, 반항하면서도 다른 쪽의 폭력과는 대담하게 공모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 이중성은 오랫동안 서구사회에서 거론되어 왔던 상실과 애도라는 정체성의 과정을 통해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애도할만한 삶”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나는 오래 전 읽었던 주디스 버틀러(이하 버틀러)가 명명한 ‘우리’의 개념설정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공격을 당하면, 항상 개인 혹은 공동체는 또 다른 ‘우리’를 만들어왔다. 에이즈를 비롯한 질병과 지구적 갈등 - 종교, 민족 등 - 을 통해서 여러 소수자들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이 폭력은 상실과 취약성으로 얼룩진 구성된 신체를 토대로 하게 된다. 그리고 애도를 통해 우리는 그 사실(신체의 비밀)을 노출하여 제2의 폭력을 받는다.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애도라는 매카니즘은 관계성에서 상실로 인해 자기 자신이 변형을 겪는 것을 동의하면서 발생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이 상실의 변형적 효과는 무엇을 잃었는지 모를 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관계, 즉 상대방 때문에 훼손된다. 그리고 상실의 지점을 찾지 못한다.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르는, 취약성을 인지하지 않은 감정은 분노로 쉽게 다가가며 본질을 잃은 채 변형된다.


애도의 가장 중요 포인트는 취약성이다. 취약성은 정치적 조건 아래에서 폭력(대표적 폭력으로는 ‘전쟁’이 있겠다.)이 삶의 방향이 되면서 악화되기 마련. 이 악화를 통해 애도는 서열화되고 안과 밖이 설정된다. - 신문을 비롯한 부고란을 보면 알 수 있다.- 탈인간화, 탈실재화의 폭력을 겪는 ‘삶’들이 설정되는 것이다. 부고란에 존재할 수 없는 삶은 어떠한 삶일까? 혹은 언론에 실리지 않는 수많은 죽음들은? 우리는 이번 테러를 통해서도, 그에 따른 대응 폭격에서도 존재할 수 없는 삶들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탈인간화된 삶들은 공적 담론 속에서 생략된 채 묻히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공적 담론 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지난 2001년 9.11 테러로 ‘미국’이라고 불리는 굳건한 성, 국경의 취약성을 발견했었다. 제1세계라는 상실을 가져오고, 거기에서 국민들은 불안, 분노하면서 테러범(아랍인) - 상상 속의 아랍인까지 포함한 - 을 모두 감시의 대상으로 설정했다. “자기-방어”로 정당화되는 인종차별주의, 혹은 특정한 종교혐오가 유령처럼 사회를 돌아다녔다. 버틀러는 여기서 미국의 주권성을 단언하는 오만한 태도와 9.11테러를 비롯해 제네바 협정에 대해서 반민주적인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라 포장하는 모순점을 지적했다. 이번 IS 테러에 대응하는 프랑스의 대처도 이러한 모순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국가는 ‘주체’일 수 밖에 없다. 지난 월요일은 내게 있어 이타성의 폐제로 개개인이 이용당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목격한 순간이었다. 폭력의 재생산에 있어 버틀러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각자의 취약성을 알고 인정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취약성이 인정되어야만 그 자체의 의미와 구조의 구성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인한 제1세계의 연합인이라고 말하며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안에는 상실이 큰 또 하나의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취약성. 충분히 애도되거나 받지 못한 탈인간화된-탈실재화의 공동체가 곪아 있다는 취약성 말이다. 이러한 “인정 투쟁” 속에서 누군가를 공적 담론 속에서 생략시키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서로가 연루된 존재임을 관계망 속에서 발견해야만, 나아가 진정한 연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당신”을 보면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존재들이다. 무척 당연한 말이다. 새삼스럽게 말하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비롯한 타자들 간의 차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제1세계가 있기 위해서는 제3세계도 생산되어야 한다. 제1의 종교가 있다면, 제2의, 제3의, 혹은 제4의 종교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국제 연합의 대응’은 연대의 가능성과 자신들의 내부 취약성의 인정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이어진 대응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지금의 국제 연합은 전근대 제국주의적 성격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시대의 야만은 여전히 ‘우리’ 속에서 가열차게 진행 중이다. 이것은 인정하는 일, 그것부터 진정한 애도할만한 삶으로의 시작이다.

 

* 이 글은 전체적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저서 『젠더 트러블』에서의 관점을 끌어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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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유리(문학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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