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뇌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엄마 아빠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질 뿐
여성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했던 보부아르의 논의는 엄마에게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엄마의 탄생』이라는 책도 있다. 굉장히 좋은 책이다. 그건 그렇고, 엄마가 만들어진다면 동일한 맥락으로 아빠 역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위장전입의 선구자 격인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학군을 두 번이나 옮겼고, 아버지인 루소는 공교육으로 국민을 만들어내는 민족국가의 탄생을 예견이라도 한 양, 자신이 키우는 것보다 공교육(?)에 맡기는 게 낫다며 자식을 다섯 명이나 고아원에 보냈다. 자나 깨나 자식 생각에 전전긍긍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더라도 코를 골며 숙면을 취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왜 아빠는 아이의 고열에도 숙면을 취했을까
솔직히 말해서,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와 자식을 간호하는 어머니를 두고도 8시간 수면을 감행한 사람은 나다. 벌써 한 달도 지난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기 엄마가 나에게 욕 한 바가지를 콧구멍에 퍼부으려다 참은 모습을 잠결에 본 듯하다. 그 때 상황은 대략 이랬다.
아이는 월령 18개월을 맞아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12개월 무렵에 돌발진(돌 전후로 발생하는 발열과 발진 증상)을 겪은 터라 부부는 처음에는 당황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고열은 장염과 함께 왔고, 2~3일 앓고 나았던 이전과 달리 1주일 내내 열은 가라앉지 않았다. 고열 상태가 계속되자 열꽃이 온 몸을 뒤덮었는데, 최악의 순간은 밤이었다. 아기 엄마는 잠을 포기하고 1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체온 확인, 젖은 수건으로 온 몸 닦기를 반복했다. 젖은 수건이 안 먹힐 때는 해열제를 투여했고, 해열제 때문에 체온이 너무 내려가면 껴안아서 저체온을 막았다. 그랬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아빠라는 작자는 자고 있었다. 역시나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 듯하다.
"이건 전적으로 아기와 열과의 싸움이야. 내가 나를 이겨야 하는 문제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나는 우리 아가를 믿어. 믿고 말고. 잘 버텨낼 거야."
아이 엄마의 간호 일지
고열로 응급실에 간들, 병원에서도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해열제 처방해주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는지라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내뱉은 잠꼬대다. 그럼에도 아기 엄마가 듣기에는 대꾸할 가치 없는 망언이었을 테다. 국정화 육아서가 있다면 ‘고열이 났을 때 남편이 착각하는 대표적인 오해’ 대목에서 첫 번째로 나옴직한 인식이다. 용케 아내는 화도 내지 않았고 싸다구를 올리지도 않았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로 그녀의 인내력은 대단했다. 대략 이런 이야기를 아빠이자 사람 남자이자 친구인 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역시 비슷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맞벌이인 부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하고, 그곳에서 잘 노는 듯 보였으나 그건 엄마가 함께할 때만 해당. 이른바 '분리'를 하려고 하면 아이는 득음이라도 할 기세로 울어댔다. 이런 일이 수 차례 반복되자 어린이집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아기 엄마에게 애착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엄마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아이에게 충분히 마음을 써 주지 못한 죄책감을 털어놓으며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빠의 반응은?
"거 참. 아기가 엄마랑 떨어지면 우는 게 당연하지. 애착에 문제 있다는 거,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면역력에 문제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추상적인 분석이야. 반세기 가까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돌리는 시사 평론가의 성의 없는 분석 같단 말이지. 나도 여섯 살 때까지는 유치원 가서 울었다고. 엄마 보고 싶어서. 스트레스가 심해 심지어 피오줌까지 지렸는 걸."
뇌의 차이가 엄마와 아빠를 만든다는 설명
불안해 하는 엄마와 심드렁한 아빠를 다룬 책이 있으니, 바로 오은영 저자가 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다. 벌써 4년 전에 나온 책이나, 여전히 많은 엄마와 아빠가 찾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육아는 엄마나 아빠 모두에 힘든 일이며 엄마의 불안과 아빠의 무관심 배후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두려움은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며, 적당한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
이런 두려움을 대하는 엄마와 아빠의 태도나, 취하는 행동의 양상은 전혀 다른데 엄마는 아이에 과잉개입하고 아빠는 자신의 감정(두려움)을 과잉통제하려 한다. 왜 엄마와 아빠는 육아라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왜 다른 태도를 보일까. 이유 중 하나로 저자는 여성과 남자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고, 다른 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엄마의 보살핌 본능을 유지시키기 위해, 엄마의 뇌는 적당한 호르몬을 분비해낼 것을 계속해서 명령한다. (중략) 엄마의 뇌에는 '아기를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라는 큰 명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자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에도 호들갑을 떨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37쪽)
원시인류에게 사냥꾼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빠들, 그들의 뇌는 오랜 시간을 거쳐 문제해결 중심으로 발달했다. 여자와 남자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중략) 여자의 뇌는 감성적인 특징이 있어서 문제해결보다는 공감을 원한다. 자신의 불안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한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무조건 해결만 하려고 든다. (59~60쪽)
이런 내용을 읽으니, '오오, 과연 그렇군. 엄마와 아빠가 두려움에 대응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네. 사람은 역시 책을 읽어야 해'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깨달음도 잠시, 과연 뇌가 달라서 두려움에 대응하는 엄마와 아빠의 태도가 다르게 나타나는지에 관해 의문이 들었다. 이런 설명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나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와 같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변하지 않는 기본 전제로 깔고 설명을 해나가는 방식 아니던가. 여성과 남자는 다르고, 다름은 생물학적 요인 - 특히 뇌 - 에 기반하며, 이 다름이 차별은 아니지만, 여성과 남자의 다름을 동일함으로 치환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차별일 수 있다, 로 넘어갈 수도 있는 섹시즘 경향이 다소 있는 설명 방식 말이다.
전반적으로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는 이런 논의를 엄마와 아빠에 확대 적용시킨 책으로 느껴졌다. 물론 책에서는 오은영 저자 자신도 "여자지만 남자의 뇌를 가진 경우도 있고, 남자지면 여자의 뇌를 가진 사람도 있으며 균형 있는 뇌를 가진 사람도 있다. 이처럼 남녀 뇌의 차이는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하자."(60쪽)라고 부언하고 있다. 덧붙여서 저자가 접한 실제 사례와 이를 분석하고 해결법을 알려주는 장에서는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렇다 아빠는 저렇다는 논의에 뇌를 끌어오는 방식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뇌를 근원으로 지목하면, 자칫 아빠의 무관심함을 정당화할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뇌가 아니라 시간
심리학자인 코델리아 파인은 『젠더, 만들어진 성』에서 뇌과학이 섹시즘을 부추기는 현상을 비판하며 몇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여성의 뇌와 남자의 뇌가 다르다고 결론 내린 연구 중 상당수에서 방법론적 결함이 발견된다. 둘째, 뇌 구조와 심리적 기능 사이의 상관성은 모호하며 이러한 모호함 덕분에 ‘남자=이성’, ‘여성=감성’이라는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쉽다. 셋째, 인간의 뇌는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탁월하기에 신화로 채색된 진화심리학적 설명 - 인간의 뇌는 수렵채집 시대에 형성되었으며 당시 분업 체계에 적응하느라 남자의 뇌와 여성의 뇌는 다르게 진화했다 - 은 한계가 많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여성과 남자의 수학 성취도 차이가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차이의 정도가 큰 사회가 있는가 하면, 적은 사회도 있다. 문제는 남자의 뇌가 수학에 유리하다는 가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순간 여성의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빗대자면, 남자인 아빠가 감정 노동에 부적합한 뇌를 갖고 있다는 가설이 널리 인정되면 아빠는 더욱 더 아기를 못 보게 된다는 뜻.
또 하나 아빠로서 흥미롭게 읽었던 사례는 성별로 아이에게 다른 옷을 입히는 전통에 관한 부분이다. 이런 전통은 비교적 최근의 풍토로 지금은 여아에게는 분홍을, 남아에게는 파랑을 입히는 게 당연하지만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성별 가를 것 없이 5세 때도 흰색 드레스를 모두 입혔다. 한때는 분홍색이 확고하고 강하며 열의와 용기를 상징하는 빨강에 가깝기 때문에 남아에게 선호되었고 반대로 여아가 파랑을 입었다. 지금처럼 남아는 파랑, 여아는 분홍이라는 이분법은 20세기 중반에야 자리잡았다(297쪽)고 하니, 어떤 부분에서는 섹시즘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왔다고 봐야겠다.
엄마와 아빠의 차이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분리된 근대 이후에 과장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가 이 책을 읽어서만은 아니다. 최근에 아빠로서의 고민을 나누던 자리가 있었다. 상대방은 스스로 아이와 잘 지낸다고 생각했고, 곁에서 보기에도 정말 아이를 잘 다루는 아빠였다. 나는 아이 보는 게 너무 무섭다는 고민을 털어놨고, 지인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그 분은 상대적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였는데, 당연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나보다 월등히 많다. 역시 좋은 아빠가 되려면 능력 있는 프리랜서가 되어야 하나... 지인은 나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 없이 아이를 잘 보고 싶어 하는 건 도둑놈 심보죠. 엄마가 아이를 걱정하는 건,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고 그 만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무심한 건, 아이와 보낸 시간이 부족하고 그 만큼 아이를 모르기 때문이고요. 식자우환이라는 건, 육아에도 똑같이 적용되거든요.”
1만 시간의 법칙은 육아에도 유효하다
그래, 맞다. 뇌를 탓할 게 아니었다. 뇌 못지 않게 사회적 풍토, 그러니까 OECD 최고 수준의 노동 시간, 경조사로 꽉 찬 주말, 존재하나 입에 담아선 안 될 금기인 아빠의 육아 휴직, 가정이 아니라 치킨집에서 보내는 저녁 회식 등등이 아빠를 무심하게 하고 엄마를 걱정하게 만든 주역일 수 있다. 연태고량주와 양꼬치를 섭취하고 싶은 불금이지만 나는 오늘 집으로 곧장 갈 것이다. 아이가 울면 엄마에게 달려가는 못난 아빠지만 말이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오은영 저 | 웅진리빙하우스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인터넷이나 책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스스로의 엄마 아빠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조언을 얻을 수 없다. 정신과와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아이와 부모의 문제 모두에 가장 근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엄마의 걱정과 아빠의 무관심 모두가 불안에서 온다는 정신과적인 고찰에서 시작된 이 책은 불안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해지는 구체적인 길을 찾는다. 더 잘하라고 부모들을 채찍질하기보다는 옳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저/김경숙 역 | 동녘라이프
30여년간 부부들을 위한 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부부간 갈등의 진정한 원인과 치유법 연구에 몰두해온 존 그레이 박사의 역작! 남자와 여자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언어, 행동 등 모든 점에서 서로 다르다. 그런 차이를 깨닫지 못하는 많은 부부들은 상대방을 원하며 갈등을 겪는다. 이 책은 남녀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서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 수많은 부부들을 이혼 위기에서 구해내었다.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 베스트셀러 227주에 올라, 남녀관계 인식의 새지평을 연 금세기 관계서의 최대 역작으로 꼽힌다.
남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서로간의 오해는 곧 풀리고, 상대방을 자신의 사고나 행동의 틀에 맞추는 그릇된 기대 또한 쉽게 수정될 수 있다.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비유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쓰거나 맞서려고 하는 대신 그 차이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더불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저 | 위즈덤하우스
남자들은 왜 헤어질 때 잠수를 탈까? 도대체 남자와 대화라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겉으로는 한없이 대범하고 여자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자의 속내에 대해 여자들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는 여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해 오해하거나 상처받았던 남자들의 말과 행동 이면에 감추어진 그들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 이유와 대처법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준다.
또 『금병매』를 패러디한 생생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남녀 간에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화들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고 판단해 그들과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위로받고 싶은 남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다.
젠더, 만들어진 성
코델리아 파인 저/이지윤 역 | 휴먼사이언스
수많은 심리학?뇌과학 대중서들은 남녀의 뇌가 다르게 태어났다는 생물학적 근거를 들며 자신의 이론을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의 뇌가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출간 당시 미국과 영국, 호주 등지에서 화제가 된 이 책은 루안 브리젠딘, 사이먼 배런코언, 마이클 거리안 등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 뇌의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정적이고 문학을 잘 이해하는 여성, 이성적이고 수학을 잘 푸는 남성과 같은 고정적으로 배선된 남녀의 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21세기 과학이 만들어 낸 새로운 신경 성차별 혹은 뇌 성차별이라고 부르는 “뉴로섹시즘neurosexism”일 뿐이다. 언제든지 유연하고 새롭게 바뀔 수 있는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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