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가속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구글 최고 엘리트 출신 한국인 청년의 비즈니스 모험기 ④
2012년 1월 초 무렵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사무실로 쓰며 거주했던 집을 급히 정리하고 개발자 친구와 함께 보스턴으로 향했다. 살을 에는 추위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긴장되고 설렜다. 테크스타스의 12주 프로그램을 위해 레슨스미스 초기 멤버 다섯 명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고 우리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기쁜 마음으로 테크스타스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준비되지 않은 가속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테크스타스를 위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 팀은 레슨스미스의 개선 방향부터 논의하기로 했다. 제품 기능과 출시일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데모데이를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했으며, 앞으로 12주 동안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아주 큰 문제를 하나 발견하게 됐다. 레슨스미스는 교사들을 위한 교재 공유 플랫폼이었고, 우리의 수익 모델은 프리미엄 콘텐츠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플랫폼은 콘텐츠를 공유하는 교사들과 공유된 콘텐츠를 구매하는 교사들이 공존해야 했다. 그날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레슨스미스에 대해 함께 일했던 교사들한테 자세히 얘기를 해봤어.”
“아, 그래? 반응이 어땠어?”
“다들 엄청나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난리야. 출시되면 꼭 쓰겠다고 했어.”
“좋은 소식이네.”
“근데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뭔데?”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사용해야 하는 건지 확신이 안 선다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확신이 있었던 거 아니야?”
“…….”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무 말 안 했지만 그 순간 나와 파트너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뿔싸, 내가 실수했구나!’ 레슨스미스라는 플랫폼이 유용하다는 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우리는 제품을 잘 만들기만 하면 됐다. 다만 이 플랫폼이 수익을 창출하고 그 결과 회사가 성장하려면 사용자들이 프리미엄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 돈을 쓸 거라는 가정이 반드시 성립되어야 했다. 이러한 가정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기 전에 실험을 통해 명확히 검증해야 했다.
우리는 친구들의 얘기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도메인 전문가인 그들이 하는 말을 그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일 거라고 믿었던 걸 깊이 반성했다. 우리는 게을렀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을 창업자인 우리 손으로 직접 확인해보지 않은 것이다.
테크스타스 기간 동안 사용했던 보스턴 사무실 모습
이미 말했듯이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던 우리는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을 꺼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슨 생각으로 레슨스미스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아이디어를 찾던 우리에게 레슨스미스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온 아이템이었다.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찾아 헤매던 아이디어라고 너무나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 핑계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수입호굴 불황신이가생(雖入虎窟 不慌神而可生)이라 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을 거슬러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황하지 말고 계속 밀고 나가라고 나 자신에게 조언해주고 싶다. 일이 그렇게 되자 테크스타스의 12주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쩔쩔맸다. 레슨스미스의 수익 모델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투자자들에게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테크스타스라는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 공황상태에 빠졌고 결국 첫 프로젝트였던 레슨스미스는 제대로 출시하지도 못한 채 접기로 했다.
[추천 기사]
- 여행은 열애와 비슷한 것 같아요
- 미니버스로 세계여행 떠난 빼빼가족, 왜 떠났어요?
- 간혹 보이는 빈틈은 매력적이다
- 자본주의의 시작과 발전을 설명하는 50가지 키워드
-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내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 오클랜드대학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IBM에서 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글로벌기업에 취직했지만 단순한 업무와 불투명한 미래에 회의를 느끼고 평소 동경하던 구글로 눈길을 돌렸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30명만 뽑는 구글 최고 엘리트 프로그램인 APM(Associate Product Manager)에 합격해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센스(AdSense)와 글로벌 블로그 서비스인 블로거(Blogger) 업무를 담당했다. 큰 역할을 기대했던 구글에서의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다. ‘5년이나 10년 후에 어떤 선택이 덜 후회될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고, 마침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안고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혹독했다. 세계적 창업지원기관인 테크스타스에 참가했다가 좌절과 상처만 안고 뉴질랜드로 돌아갔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심정으로 두려움의 맨 얼굴과 마주했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이폰용 캘린더 앱인 카나리(Canary)를 개발했으며, 앱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도메인 업계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도메인 제공업체 고대디(GoDaddy)와의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현재 고대디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서승환> 저12,600원(10% + 5%)
야후 CEO 머리사 메이어가 인정한 구글 최고 엘리트 출신 젊은 창업가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체험기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사표 낸 뒤 시작됐다” 꿈의 직장 구글에 입사한 뒤 2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인수합병에 성공하기까지 도전과 열정의 기록 구글 최고 엘리트가 입사 2년 만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