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그만둔 거 후회하죠?
구글 최고 엘리트 출신 한국인 청년의 비즈니스 모험기
큰 꿈을 품고 구글을 그만둔 뒤 시작한 스타트업이 끝났다.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을 바꾸는 회사를 만들진 못했지만 좋은 조건으로 회사가 인수합병이 되는 바람에 최소한 실패 딱지는 면할 수 있게 됐다.
“구글 그만둔 거 후회하죠?”
구글에서 나와 약 30개월간 스타트업을 꾸려나가는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구글이라는 꿈의 직장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그만두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 시절부터 인터넷 벤처 기업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미래에 덜 후회할 수 있는 쪽으로 선택해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최악의 경우에 사업에 실패한다는 시나리오와 계속 회사를 다닌다는 시나리오를 비교할 때 미래에 더 후회할 쪽은 당연히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시나리오였다. 이후 스타트업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다만 조직의 일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안정감과 매달 받던 월급이 가끔 그리웠을 뿐이다.
위너들의 모임… 약 혹은 독?
우리 팀의 배경은 눈부셨다. 하버드대학,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으로 구성됐고 이력으로만 보면 세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큰 성공으로 가는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때까지 큰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고 남들이 보기에 좋은 스펙의 위너들(winner)로 뭉쳐진 팀이었다. 자신과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완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위너들도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시절 우리는 정신적으로 너무 어렸고 나약했다. 결국 우리는 제멋대로 속력을 내다가 넘어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했다.
땅이 굳으려면
부푼 꿈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우리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우리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었고 모두 다 잘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처럼 건방졌던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이 왔다. 회사를 세우고 4개월이 지난 후 미국의 저명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테크스타스(TechStars)에 합격했는데, 프로그램이 시작된 첫 주에 우리는 우리의 사업모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충분한 시장조사도 하지 않은 채 자만심에 빠져 시작했던 것이다. 12주짜리 프로그램인 테크스타스의 마지막 주에는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진행되는 데모데이(demo day)가 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우리에게는 투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고 절대 놓치면 안 됐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프로그램을 시작한 10개 회사들은 최소한 2년 이상 운영해온 회사들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진행해온 프로젝트를 버리고 12주 만에 투자 가치가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 2년을 12주 안에 따라잡는단 말인가?
“눈물 젖은 키보드로 코딩을 해보지 않고서 스타트업을 논하지 말라”
결국 새롭게 회사의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한 명의 파트너와 갈라서야 했다. 이 일로 사기가 저하된 채로 우리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말 지옥 같은 몇 개월이 지났다. 죽을힘을 다한 끝에 새로운 회사의 방향은 정해졌지만 투자 유치를 성공시키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일들을 겪은 뒤 하루는 침대에 누워 내 처지를 돌아봤다.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자신했던 나였다. 꿈의 직장, 억대 연봉 그리고 여자친구까지 남부러울 것 없었다. 꿈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잃었다고 생각하니 회의가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주제넘었던 걸까? 내 머릿속에서 온갖 감정들과 생각들의 회오리가 일었다.
현실을 직시하다
우리는 테크스타스 참여 기간 동안의 악몽을 뒤로한 채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회사 이름을 바꾸고 사업의 방향을 ‘건강’으로 전환해 음식 레시피 검색엔진과 레시피 공유 사이트를 개발했지만 모두 판매 부진으로 접어야 했다.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패배를 인정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다시 아이디어를 쥐어짜내 제품을 만드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말씀 안 하던 부모님도 이제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며 조심스레 걱정을 했다. 때마침 구글을 포함해 여러 회사에서 입사 제안 러브콜을 보내왔다. 당시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기에 그 러브콜들이 달콤한 유혹처럼 느껴졌다. 이제 그만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전히 성공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스마트폰 캘린더 카나리(Canary)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제 또 어떤 제품을 만들까?”가 아닌 “요즘 스마트폰 이메일 앱은 좋은 거 많은데 캘린더는 너무 불편하지 않아? 스케줄 관리를 하는 데 X, Y, Z가 많이 불편하던데?”라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가장 쓰기 편하고 유용한 모바일 캘린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번 아이디어는 사업을 위해 쥐어짠 아이디어가 아닌 정말 현실에서 우리가 불편한 점에 대한 해결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 팀은 유통이나 수익 창출에는 약할 수 있으나 제품 개발에는 어떤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때까지 웹 개발만 참여해온 회사가 스마트폰 앱에 뛰어들어 복잡한 캘린더 앱 프로토타입이 나오기까지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후 많은 테스팅을 거쳐 앱이 정식 출시가 됐고 경제전문지 〈INC.〉가 뽑은 2013년 아이폰 앱 베스트 5에 들기도 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 우리는 많은 언론 보도와 사용자의 성원에 힘입어 실리콘밸리의 몇몇 회사들과 합병에 관해 논의할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고 그중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 회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우리의 짧고도 긴 여정은 끝이 났다. 스타트업 중 십중팔구는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는 가운데 우리의 끈기가 작은 결실을 맺게 해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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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 오클랜드대학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IBM에서 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글로벌기업에 취직했지만 단순한 업무와 불투명한 미래에 회의를 느끼고 평소 동경하던 구글로 눈길을 돌렸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30명만 뽑는 구글 최고 엘리트 프로그램인 APM(Associate Product Manager)에 합격해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센스(AdSense)와 글로벌 블로그 서비스인 블로거(Blogger) 업무를 담당했다. 큰 역할을 기대했던 구글에서의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다. ‘5년이나 10년 후에 어떤 선택이 덜 후회될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고, 마침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안고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혹독했다. 세계적 창업지원기관인 테크스타스에 참가했다가 좌절과 상처만 안고 뉴질랜드로 돌아갔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심정으로 두려움의 맨 얼굴과 마주했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이폰용 캘린더 앱인 카나리(Canary)를 개발했으며, 앱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도메인 업계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도메인 제공업체 고대디(GoDaddy)와의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현재 고대디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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