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잘 볶는 여자
하루 한 상 – 첫 번째 상 : 파스타
결혼한 지 3달. 나와 남편은 부지런히 꾸준히 ‘하루 한 상’을 차리고 있다. 회사를 그만둔지 3주. 남는 시간으로 그 ‘한상’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 ‘하루 한 상’에 나와 남편이 무얼 먹고 사는지 솔직히 써보려고 한다.그 첫 번째 상은 파스타.
파스타 만세!
결혼 전 수년간 부모님과 떨어져 산 적이 있었다. 항상 고민한 건 청소도 빨래도 아닌 끼니. 독립할 때는 자유의 기쁨에 젖어 밥 걱정을 할 줄 미처 몰랐었다. 한 접시에 모두 담아 먹는 게 너무 편했던 나는 (설거지가 적어져서 너무 좋았다!) 우연히 파스타에 눈을 뜨게 된다. 남들은 먹방, 쿡방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된다던데.. 난 책을 통해서였다.
『독학파스타』지은이는 안동 출신 40대 남성이다. 몇 장 읽고 난 뒤 몽글몽글 피어오른 생각. ‘아 이런 게 파스타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면, 소금, 올리브오일, 마늘만 있으면 만들 수 있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그때마다 응용도 가능하기에 그 이후로 난 자주 파스타를 해 먹었다. 파스타 만세! Libre Pasta!
냉장고 털어 만든 파스타
여름은 파스타의 계절
제철 채소, 제철 음식이 있다고 하는데 파스타에 철이 있다면 나는 여름이라고 하고 싶다. 마늘도 초여름이 수확 시기이고 토마토도 여름 햇빛을 받아 완전히 익은 게 단맛과 새콤함이 강하기 때문에 소스용으로 더 알맞기 때문이다. 같이 볶아 먹으면 맛나는 가지, 호박, 바질도 여름이 제철이다. (토마토와 바질을 함께 키우면 더 잘 자란다. 그늘이 있으면 잘 자라는 바질에게 토마토가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상생. 그 둘이 합쳐지면 심지어 맛있다!)
근교에서 텃밭을 하는 아빠가 키운 마늘, 자전거를 타고 가면 딸 수 있는 옥상 텃밭 야생 토마토 등 각종 야채가 있는 여름은 그야말로 시즌 오브 파스타인 것이다.
재료들도 제철이지만 여름이 파스타의 계절이라고 하고 싶은 이유는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꾸만 면을 끓이고 마늘을 볶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한 그릇의 파스타를 앞에 두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후루룩하면 더할 나위 없다.
옥상텃밭 토마토
파스타 두 접시, 맥주 두 잔
파스타는 사랑을 싣고
남편과 나는 옥상텃밭 모임에서 만났다. 텃밭에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바로 재료를 따서 음식을 해 먹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남편에게 처음 해 준 음식은 파스타였다. 10월의 가을 저녁. 텃밭에서 뒹구는 재료를 따서 바로 볶았는데 남편이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정식으로 사귀기 전 몇 번 파스타를 했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재료 식감을 잘 살려서 볶는다고 칭찬을 했었다. 다른 음식들은 남편과 함께 하지만 지금도 파스타 만은 내가 하게 된다. 음. 점수 따기 및 일감 몰아주기였나?
편하고 편하다, 원팬파스타 (one pan pasta)
우리는 집에서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과정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규정된 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입을 위해 몸을 움직인다. 입이 몸을 이긴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한 파스타라도 삶고 건지고 볶고를 거치면 식기를 제외하고도 솥, 채반, 팬 등 적지 않은 도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누가 말했던가 요리의 마지막은 식사가 아닌 설거지라고.
하지만 얼마 전 솥과 채반을 건너뛴 획기적인 요리법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른바 원팬파스타(one pan pasta). 면을 삶고 다시 볶을 필요 없이 적당량의 물과 기름, 마늘 및 모든 재료를 다 넣고 익히면 된다. 볶음이라기보다는 걸쭉한 면 조림의 느낌이다. 준비부터 완성까지 15분 정도 걸리는데 30분이 조금 더 넘는 기존의 조리법에 비하면 파스타의 혁명이라고 부를만하다. 하루 종일 찬음료, 찬바람에 내맡긴 몸에 원팬파스타는 따뜻하고 후끈한 기운을 불어준다.
토마토, 바질, 마늘을 촵촵 썰어 넣은 모양새
그 파스타 먹어보고 싶다
아무리 집에서 만들어 먹는 파스타가 맛있다지만 계속 밥하다 보면 ‘남이 해준 밥’이 맛있듯 먹어보고 싶은 ‘남이 해준 파스타’가 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로마의 어느 파스타집에서 입안 가득 넣으며 먹었던 그 토마토 스파게티.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 친구 둘이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 다니면서 먹었던 다양한 파스타. 음 나는 이탈리아를 가야겠다.
(부록) 남편의 말
결혼 전 9년을 혼자 살다시피 한 나도 역시 파스타를 종종 만들어 먹긴 했었다. 하지만 여편님이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으며 새삼 느낀 것은 재료를 어떤 순서로 얼마나 볶느냐가 파스타의 맛을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마늘 볶는 솜씨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열정 때문에 흔쾌히 고가의 파스타 삶는 전용 냄비를 혼수로 사는 데에도 동의했다. 남들은 파스타 면을 삶는 중에 올리브오일을 넣지만 여편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면을 다 삶고 나서 올리브오일을 뿌린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유명한 셰프들은 고집이 있다고 믿기에 내가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도 맛있게 만들어 주는 그날까지 열심히 면 값을 벌어보겠다.
독학 파스타권은중 저 | 바다출판사
파스타를 마스터한 남자는 요리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창조적 예술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 예로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던 청바지를 다시 입고 맛집 순례에 나선 점을 꼽는다. 새로운 맛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가 변화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푸성귀와 해산물에 몰두할수록 엔도르핀이 솟아나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힘이 생긴다.”고 말하면서 요리를 통해 이상한 해방감까지 만끽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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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지 않습니다.
<권은중> 저13,500원(10% + 5%)
뼈대 있는 가문의 남자, 파스타 증후군에 빠지다 대학 2학년 MT 때 식사 당번으로 뽑힌 때가 머리털 난 이후의 ‘첫 부엌 출입’이라고 고백하는 저자. 요리와는 전혀 무관한 신문기자가 파스타책을 냈다. 지금은 자칭 ‘요리 폐인’. 세련미 넘치는 이탈리아 요리에 빠져 된장이나 간장 대신 올리브유를 사고 멸치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