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만에 후딱 만드는 파스타
로마 대표 트라토리아의 주방 습격
서울을 대표하는 식당을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맛있는 김치찌개를 하는 곳? 아니면 전통 있는 한정식집? 그러면 로마를 대표하는 식당이 어디냐는 질문을 던져 본다.
서울을 대표하는 식당을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서울에서만 30년 가까이 살며 뭘 먹을까를 항상 고민하는 나도 막막해지는 질문이다. 맛있는 김치찌개를 하는 곳? 아니면 전통 있는 한정식집? 그러면 로마를 대표하는 식당이 어디냐는 질문을 던져 본다. 타지인이기에 더 쉽게, 생각 없이 답할 수 있는 걸까? 단 하나의 대답만이 허용된다면 (내 경험치 안에서라면) 나는 펠리체(Felice)를 꼽을 것이다. 대표라고 하면 이 정도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겠지. 로마의 전통 메뉴를 충실히 내놓는 곳,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 그다지 비싸지 않고 오랜 역사까지 갖추었다면 더욱 좋겠지.
서울 마장동 우시장처럼 로마에도 도축장 옆에 큰 시장이 있다. 바로 테스타초 시장이다. 소를 도축하고 남은 내장을 팔다가 자연스레 형성된 곳이다. 시장 옆 곱창집, 소머리 국밥집처럼 테스타초 시장 근처에도 내장 냄새 물씬 풍기는 실비집들이 있다. 도축장은 이미 사라졌지만, 시장과 실비집들은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 깊은 맛집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펠리체는 빼놓을 수 없다. 항상 꽉꽉 차 있는 예약에서도 알 수 있지만, 로마 유명 레스토랑 주인들과 맛집 얘기를 나눌 때도 항상 빠지지 않았던 곳이다.
“펠리체, 나도 오래전부터 그곳의 단골이지요.”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드나들던 때가 떠오르는지 이곳을 얘기하며 입맛을 다시곤 했다. 그런 그곳의 주방을 엿볼, 아니 당당히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주방을 보여 줄게요. 하지만 영업 시작 1시간 전에 꼭 시간을 맞춰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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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에 칼같이 맞춰 갔는데 레스토랑은 금요일 저녁 영업 준비로 분주하다. 주인은 나의 방문이 그다지 탐탁지 않은지 표정이 굳어 있다. 슬슬 눈치를 보고 있는데 안에서 주방장 모자를 쓴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나타난다. 이곳의 셰프인 살바토레 티스초네.
‘그냥 주방만이 아니라 요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스쳐 가기 무섭게 그는 나를 잡아끈다.
“주방을 볼래요? 파스타 만드는 것을 보여 줄게요.”
동작이 재빠르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넘쳤다.
“카초 페페Cacio Pepe를 만들 거예요.”
그대로 해석한다면 후추 치즈 파스타. 로마의 공식 파스타라 할 정도로 이곳에서 즐겨 먹는 파스타다. 로마 대표 트라토리아(Trattoria, 고급 레스토랑보다 좀 더 대중적인 형태의 식당)에서 주방장이 로마 대표 파스타를 보여 준다니, 아주 신이 났다.
먼저 파스타를 삶을 물에 소금을 뿌린다. 종이에 싸 두었던 생면을 한 움큼 쥐고 손으로 톡톡 흔들며 넣어 준다. 그리고 면을 삶기 시작한다. 한 5분쯤 지났을까? 면을 몇 가닥 들어 본다. 잘 익었는지를 한눈에 알아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을 건져 내어 금속 통에 담는다. 일부를 하얀 접시에 담고 거친 후추를 팍팍 뿌린다. 올리브유도 살짝 끼얹고 파스타 삶은 물을 슬슬 뿌린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페코리노 치즈를 들이붓다시피 듬뿍 뿌리고 자장면 비비듯 쓱쓱 비빈다.
한 1분쯤 걸렸을까.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너무도 간단한 과정에 맥이 조금 풀린다. 이것이 로마 최고의 트라토리아에서 대표 메뉴를 만드는 과정이라니. 하긴 이탈리아의 진짜 맛들은 항상 이러한 단순함 속에 있었다. 갓 짜서 향내가 진동하는 에메랄드빛 올리브유, 담백하고 신선한 치즈, 만드는 사람의 솜씨만 좋으면 거기에 두어 가지 재료만으로 ‘진짜 이탈리아 요리’ 뚝딱이다. 로마를 대표하는 파스타, 카초 페페. 사실 치즈도, 후추도, 올리브유도 어찌 보면 소스라기보다는 그냥 파스타 면의 맛을 내는 양념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이탈리아 파스타다. 사실 카초 페페에는 아주 옛날부터 파스타를 만들던 방식이 담겨 있다. 우리가 보통 스파게티 소스라고 알고 있는 토마토소스가 쓰인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6세기 초에 토마토가 유럽에 전해졌지만, 그것을 스파게티 소스로 만들어 먹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0년이 지나서이다. 그전까지 보통 사람들은 파스타 면에 치즈 가루를 뿌리고 적당히 비벼 손으로 집어 먹곤 하였다.
그 단순함이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일까? 포크를 쥐여주며 먹어 보라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통한 면발에 후추와 진한 페코리노 치즈가 녹아내린다. 첫맛에 ‘와’ 하게 되는 맛은 아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포크를 놓지 못하게 하는 맛.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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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연> 글,사진12,150원(10% + 5%)
유럽의‘진짜’음식들이 보여준 특별한 맛 이야기 세계적인 스타 셰프의 감동적인 코스 요리부터 소박한 보통 사람들의 손맛 담긴 음식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진짜배기 음식을 찾아 유럽 곳곳을 누빈 고군분투 미식 여행의 기록. 겉보기엔 우아하지만, 실제로는 고생바가지였던 저자 김보연의 유럽 맛 기행은 단순히 맛있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