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4명 VS 남한군 2명, 그들은 운명은? -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과연 그들은 여신님과 함께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여신님은 그들에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던 존재이자 희망이자, 꿈이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르게 바라 볼 수 있도록
때론 하나의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할 때가 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다. 순수한 시골처녀로 인해 전시상황에서 조금씩 상대를 이해해가던 남북한 병사들의 모습도, 서로가 서로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로 받아들이던 군인들의 모습도 모두 급박한 전시상황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깊은 여운과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전쟁에 연루된 ‘사람’에 집중해 휴머니즘적인 이야기를 부각시킨 두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전쟁이 지닌 비극성과 참혹성을 전달해주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역시 위의 두 영화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총알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포탄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는 급박한 전시상황을 주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이전과 다른 신선한 관점에서, 참신한 발상으로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 편 전쟁의 비극성을 진지하게 파헤쳐나간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국군대위 한영범은 후임 신석구와 함께 북한군 포로 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는 임무를 받게 된다. 6명의 인물들은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 기상악화로 인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무인도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장 난 배를 고치는 것. 그러나 유일하게 배를 고칠 수 있는 류순호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 간다. 한영범은 그런 류순호를 위해, 여신님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그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머지 병사들 역시 류순호를 위해 여신님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그들의 무인도 생활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전쟁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게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며 이야기한다. 극한의 상황에 고립된 남북한 병사들이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단순한 플롯을, 여신님이 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개성적이고 독특한 플롯으로 탈바꿈시킨다. 경쾌한 음악과 유쾌한 대사로 웃음을 전달해 주다가도 인물 내면의 깊숙한 상처를 통해 관객들의 슬픔을 자극한다. <웰컴 투 동막골>이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듯 조금 다른 시선에서 주제에 접근하면서도 주제의식 또한 잃지 않는다.
여섯 남자의 여신님
병사들은 처음에는 불평을 쏟아내다가 이내 황당하고 엉뚱한 ‘여신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군인이 아니라 평범하고 소박한 일반인이던 원래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포장된 것이 아닌 진짜 자신을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은 상대를 적이 아닌 동료, 친구로 받아들이게 된다.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고 이해한다. 사실 처음부터 그들이 적이 될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전쟁이라는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마주치게 했을 뿐이다.
시작은 류순호를 위한 가상의 여신님 프로젝트였지만, 이내 병사들은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신만의 여신님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여신님은 더 이상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반드시 지켜내고 싶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만나야 할 소중한 존재 그 자체이다.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늙은 어머니, 좋아한다는 말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헤어졌던 짝사랑하던 여인, 같은 꿈을 키우며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여동생, 생사를 알 수 없이 헤어진 가족 등. 여신님은 그들에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던 존재이자 희망이자, 꿈이었다. 여신님 프로젝트는 결국 모두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앞에 말했듯 무게 중심이 탄탄히 잡힌 작품이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자칫 엉성할 수도 있는 전쟁이라는 소재를 유연하게 풀어나간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들이 이 참혹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왜 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떠올리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해 발생한 전쟁 속에 희생되고 고통을 받는 건 결국 무고한 국민들일 뿐이라는 것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다시는 이렇게 만나지 말자던 인민군 이창섭과 국군대위 한영범의 마지막 대사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행복한 얼굴로 여신님을 향해 노래하던 여섯 남자의 목소리가 메아리 같이 가슴 속에 울려 퍼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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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