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남자 그여자>,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하다
뮤지컬 <그남자 그여자>
『그남자 그여자』는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연인의 마음이 보인다.
누구의 연애인들 이와 같지 않았을까
연애라는 게 그렇다.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없으면서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연인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도, 그 안에서 부딪히는 감정들도 모두 그러하다. 연극 『그남자 그여자』는 이렇게 ‘지극히 보편적이고, 그래서 평범한’ 순간들을 펼쳐 보인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서른의 문턱을 넘은 ‘선애’. 그녀에게도 연인이 있‘었’다. 7년을 만나며 무수히 많은 날들을 함께 꿈꿨을 남자. 그가 오늘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구 남친, 현 나쁜 놈’이 되어버린 그와의 마지막을 시시하게 장식할 수는 없다. 그녀는 친히 식장까지 찾아가 앞날을 축복해주는 ‘아량’을 베푼다. 물론,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런 날 혼자인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학교 후배이자 직장 후배인 ‘영훈’을 대동하기로 한다.
사실 영훈에게는 10년 동안 짝사랑해 온 ‘그녀’가 있다. 대학 시절 뜨거운 연애에 빠져있었던 그녀는 이제 실연의 아픔 속에 빠져 있다. 마침내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 싶지만 지금의 그녀는 사랑 따윈 믿지 않는 눈치다. 행복해 보이는 연인을 마주칠 때면 “이 남자는 정말 다를 거라 믿고 싶겠지만 결국엔 그 놈이 그놈”이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는다.
영훈과 달리 ‘강민’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친 ‘지원’에게 첫 눈에 반한 그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각에 지하철을 탄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향하는 눈길,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시선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녀가 실수로 떨어뜨린 지갑 역시 돌려줄 마음은 없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지원은 쉽게 마음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능글맞은 듯 담백한 강민의 고백이 싫은 건 아니지만, 무턱대고 다가서는 그의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못 이긴 척 넘어가 주자니 어딘가 찜찜하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 없는 문제들을 고민하던 끝에 결심했다. 확실히 약속을 받아두자고.
그렇게 네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다. 선애의 연애는 또 한 번 찾아온 사랑이었고, 영훈의 연애는 드디어 현실이 된 꿈이었다. 어쩌면 지난날의 선애가 경험했을, 어쩌면 지난날의 영훈이 간절히 바랬을 20대의 풋풋한 사랑은 영훈과 지원의 오늘 속에 있다. 서로 다른 연애 경력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이들에게 찾아온 감정은 다르지 않다.
메시지 알림음이 들림과 동시에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고, 찰나의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상대의 말 한 마디, 작은 손짓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눈앞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흐름을 놓친 지 오래다. 이토록 강한 집중력을 발휘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옆에 앉은 그 사람을 향해 모든 감각이 곤두선다. 극장 안의 어떤 소리보다도 그의 숨소리가 크게 들리고, 그보다 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뛰는 나의 심장이 주책맞게 느껴진다. 누구의 연애인들 그와 같지 않았을까. 『그남자 그여자』를 보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얕은 한숨이 배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도.
그와 그녀,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하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떨림만큼이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이런 게 아닐까. 좋은 순간만 있는 건 아니더라, 라는 고백 말이다. 『그남자 그여자』의 주인공들에게도 연애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현실’ ‘입장’ 그리고 ‘차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문제들을 그들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한 목소리로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하는 우리”를 이야기하고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을까” 의문을 갖는다.
배려를 이유로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은 오해를 낳고, 그로 인해 생겨버린 틈은 두 사람 사이를 점점 더 비집고 들어온다. 먼저 알아채 주기를 기다렸던 마음은 ‘왜 나를 더 이해해 주지 못하느냐’는 말로 바뀌어 상대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그건 정말 ‘다른 언어’ 때문이었을까. 서로를 잘 알지 못해서, 그가 내 마음을 살펴주지 않아서 벌어진 일들이었을까.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다짐들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솔직해져야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지, 라는 다짐도 그 중 하나다. 크고 작은 다툼들을 겪으면서, 결국 문제는 내 마음을 감추고 그의 마음을 멋대로 재단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까닭이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언어가 달라서가 아니었다. 진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꽁꽁 감춰둔 채 알쏭달쏭한 말들만 들려줬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 마음을 살피지 않았던 게 아니다. 내 마음을 보여준 적이 없었을 뿐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 때문에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바로 그 오만함 때문에 ‘아직도 내 마음 하나 알지 못하냐’며 그에게 화살을 돌린 것뿐이다.
연애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또 다른 사실은,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제법 멀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들임에도 가슴에서 나오는 말은 그에 반할 때가 너무도 많다. 『그남자 그여자』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하게 말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고,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의 생각을 단정 짓지 않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이해할게’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나를 조금만 더 이해해줄 수는 없니’라는 말이 더 쉬웠다. 그렇게 그들은 어긋났다. 모두가 한 번쯤 경험했듯이. 그러나 누군가는 다시 만나게 되듯, 그들도 재회할 수는 없을까. 이야기의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뮤지컬 『그남자 그여자』는 소소한 감정들부터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까지, 모든 연인들에게 찾아오는 순간들을 유쾌한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지나간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연애와 사랑을 되돌아보게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웃음코드로 극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이끌어간다. 배우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에 흠뻑 빠진 채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문득문득 ‘그때 그의 마음도 저랬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감정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구나’라는 사실에 공감하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아직 전하지 못한 속마음을 연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면, 미처 알아채지 못한 그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함께 관람하길 권한다. ‘썸남’ ‘썸녀’와 같이 극장을 찾아도 좋다. 『그남자 그여자』의 주인공들이 사랑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지켜본 그가 나의 진심을 눈치 챌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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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