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플루토, 데이빗 보위 〈Space Oddity〉
데이빗 보위 〈Space Oddity〉
이 음악을 듣기만 하면 우주의 섬뜩한 고독이 느껴진다. 누구와도 교신이 되지 않거나 교신하기 싫어지면 사람은 외로워 자빠지는 것 아닐까 싶다.
뉴호라이즌스 호가 명왕성의 선명한 사진을 보내 온지도 꽤 됐다. 하트 무늬 비슷한 얼음 빤스를 입은 고화질 사진을 보자마자 다양한 감탄사가 튀어나왔지만 문득 이런 의문도 들었다.
어째 별로 고독해 보이지 않잖아?
왜일까, NASA가 공개한 사진을 요리조리 뜯어봐도 고독이나 외로움, 우수를 느낄 수 없었다. 태양계의 가장 먼 바깥을 돌다 심지어 왜소하다며 퇴출되어 이름도 134340 따위로 바뀌는 수모를 겪은 별이라면, 고독에 부들부들 떠는 드워프 흑마법사 같은 인상일 걸로 예상했는데 한낱 인간의 올망졸망한 상상력이었단 말인가. 우주란 역시 어렵다.
다만 똑같은 명왕성 사진을 보고 막대한 고독을 느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한 우주선이 자신을 향해 구 년 반 동안 날아와 인증샷을 찍는 바로 그 순간, 더 이상 고독한 별이 아니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왜 외로운지도 모르겠는데 양자역학을 어떻게 알겠나.
안 외로워 보이는 명왕성을 칼럼의 소재 삼기로 한 뒤 몇 주가 대머리 벗겨지듯 훌러덩 지나버렸다. 내가 너무 외로워서 명왕성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딱 고르지 못한 거였다. 정확하게는 너무 많아서 그 중에 어떤 음악으로 썰을 풀지 선택 장애에 시달렸다.
아무튼 심의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데이빗 보위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M83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오늘의 주제곡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Space Oddity>는 영어가 짧아서 ‘우주의 기이함’ 정도로 해석될 거란 심증이 간다. 노랫말은 우주비행사 톰 소령이 지상 관제탑과 교신하는 내용이다. 무난한 발사과정을 거쳐 임무를 수행하다 우주선 회로에 문제가 생겨 교신이 끊긴 톰 소령이 바보 되는 내용이다. 솔직히 스스로 교신을 끊고 고독한 우주미아를 선택했다는 해석도 가능한 노랫말이다. 이 음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이 부분이다.
지구별은 푸르고 난 할 수 있는 게 없군.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이 음악을 듣기만 하면 우주의 섬뜩한 고독이 느껴진다. 누구와도 교신이 되지 않거나 교신하기 싫어지면 사람은 외로워 자빠지는 것 아닐까 싶다. 아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외계의 누구와도 교신하지 못하는 우리 지구야 말로 우주적으로 외로운 존재 아닌가. 어째서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주 미아가 되는 우주 비행사 얘기의 씁쓸함과 달리 이 곡의 멜로디는 환상적이다. 1절에선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는 환희가 느껴진다. 그리고 2절에선 그에 동반되는 허무가 느껴진다. 제목처럼 기이한 감상을 주는 명곡이다. 데이빗 보위 님도 스타일 기이한 걸로 둘째가라면 서운하신 분 아닌가. 이 곡의 뮤비에선 곤두선 빨간 직모에 뭐라 표현하기 곤란한 눈빛을 하고 기타를 치는 모습이 확실히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명왕성에서 뭔가 유사성을 발견했다. 퇴출 이유가 수성보다 작아서기도 하지만 다른 태양계 행성들과 궤도면이 다르고, 생긴 게 살짝 타원형으로 이상하고, 공전 궤도 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그것 참 어쩐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정상적인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래선지 돈돈돈 하는 이 세상에서 비싼 돈 들여 쓸 데 없어 보이는 명왕성에 탐사선을 보낸 과학이 하나의 예술적인 명곡으로 보였다. 돈돈돈 하는 멋대가리 없는 행위 말고 인간이 이런 이상한 짓도 할 수 있다는 감동을 느꼈다.
그제야 명왕성이 왜 외로워 보이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명왕성은 지구의 학자들이 정한 규정대로 살지 않는 뮤지션 같은 면모가 있는 거고, 태양빛을 희미하게 받는 춥고 배고픈 와중에도 꿋꿋한 자기 개성으로 존재하는 멋이 있었던 거다.
1977년에 여행을 떠나 현재 인터스텔라를 여행 중인 보이저호에는 골든 디스크가 실려 있다고 한다. 우주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는 지적 생명체가 보이저호를 발견한다면, 그리고 그 발견자가 닭대가리가 아니라면 거기 그려진 친절한 상형문자에 따라 디스크를 재생할 테고, 오오, 지구로부터의 메시지를 듣게 되는 것이다. 우주로 간 그 골든 디스크는 현대의 인간이 한 짓 중에 가장 멋진 포즈라고 늘 생각했다.
그 디스크에 엄선된 인간과 지구의 소리는 각국의 언어로 된 인사말은 물론, 음악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그 사실에 코끝이 찡했다. 바흐를 처음 듣는 외계인은 우리가 대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던 것인지, 어째서 이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고야 말았는지 공감하게 될 것만 같다.
음악은 외로워 자빠졌고 회로가 망가졌을 때 최후의 교신 수단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대로만 이득을 따져가며 살면 다른 존재들과의 교신이 끊겨버리기 쉽다고 본다. 우리는 쓸 데 없는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돌아오지 않을 우주선을 우주에 띄우는 존재로서 아름답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지만 음악과 우주선은 앞으로도 길게 여행하면 좋겠다.
몇 년 전 <Space Oddity>를 실제 인터내쇼날 스페이스 스테이숀(ISS)에서 부른 우주인 크리스 햇필드(Chris Hadfield)씨가 떠오른다.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하며 오래된 데이빗 보위의 노래를 불러 뮤비로 찍다니, 어지간히 외로웠나보다. 그는 매우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이 곡을 불러 유튜브에 올린 뒤 이천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명해졌다. 원곡의 가사처럼 우주 미아가 되고 싶지 않았던 건지 지구로 귀환하는 걸로 노랫말을 고쳐 부르긴 했지만 사람들로부터 고독하게 잊혀가던 이 명곡을 우주의 현장성을 더해 다시 듣는 게 감명 깊어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늘 그랬지만 오늘도 외로운 필자는 음악을 들으며 견딘다. 그의 <Space Oddity>를 잘생긴 명왕성에게 바치며 칼럼을 끝내겠다. 물론 데이빗 보위님께 허락받은 건 아니다. 우주의 신비와 보위님의 연락처는 통 모르겠다. 둘 다 정말 끝내준다는 것만 알겠고.
아무튼 당신도 계속 힘내라 플루토.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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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