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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에 열광하는 심리
지금의 이 헛헛함이 해결될 것 같다는 환상을 모두가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아닌 남이 먹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나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에너지를 쾌속 충전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의 맛은 나만을 위한 맞춤 처방전이니까.
바야흐로 먹방, 쿡방이 대세다. 하정우가 영화 <베를린>에서 우적우적 김을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멋진 훈남 배우의 의외의 모습에 대중이 열광을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예능 프로그램에는 음식을 만드는 것, 먹는 것이 단골 소재가 되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탐스럽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인터넷 전파를 작정한 듯 시의적절하게 배치가 되었다. 더욱이 인터넷TV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세칭 먹방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요새는 세칭 백주부라 불리는 백종원부터 최현석 셰프까지 요리사가 스타가 대중의 환호를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 연복 쉐프가 운영하는 중식당은 두 달의 예약이 이미 찼다고 하고, 백 선생의 레시피나 ‘냉장고를 부탁해’에 소개된 레시피를 따라서 요리를 한 사람들의 블로그는 차고 넘친다.
수십년 전만 해도 먹는 얘기를 대놓고 하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세칭 ‘미식가(美食家)’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것도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기아 난민을 떠올리지 않는다하더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굶어죽는 이웃이 도처에 있는 것이 우리나라였다. 전통적으로 먹는 것으로 장난치면 안되고,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우리가 어느새 먹는 것에 열광하고, 맛있는 것에 환장하면서 전국 5대 짬뽕을 성지순례하는 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쿡방을 보면서 직접 요리를 하고 쉐프를 스타로 숭앙한다. 모임이나 데이트를 할때 가능하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동네 맛집을 검색하고, 좋은 곳을 많이 알고 소개해주는 사람은 좋은 주식 종목을 소개해주는 사람보다 환호를 받는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변한 것일까?
아마도 그건 우리의 마음이 헛헛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뭔가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만 지금의 이 헛헛함이 해결될 것 같다는 환상을 모두가 갖게 된 것이다. 이를 정성적 허기(emotional hunger)라고 한다. 우리가 아주 아주 갓난 아기였을 때를 상상해보자. 엄마의 젖가슴을 물고 젖을 빨고 있을 때에는 엄마와 하나가 되어있고, 안전하다고 여기며,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은 정서적 만족을 느끼면서 동시에 배도 불러오는 육체적인 허기도 만족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는 엄마와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육체가 배가 고플때 알아서 엄마가 젖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채고 울어야 그제야 먹을 것이 들어온다는 냉엄한 현실을 느낀다. 내가 벽에 그림을 그리면 엄마가 화를 내기도 하고, 춥고 열이나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바로 와서 안아주지 않아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배를 채우는 것과 엄마가 꼭 껴안아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은 서로 다른 루트라는 것을 익히면서 다른 영역으로 분화해서 발달시켜 나간다.
그러나 그 뿌리는 하나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 특히 3세 까지는 해마라는 명시적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아직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고 있을 때라, 그 이전에는 특히나 편도라는 감정적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주로 경험을 축적시켜 놓는데 이때에는 더욱이 정서적인 영역과 육체적인 영역이 합쳐진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갈라 기억의 저장소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장은 자라나면서 하나하나 쌓여나간다.
어디서 무엇을 배웠는지 죽어라 외웠던 국사나 수학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처음 해준 국수의 냄새,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눈을 비비고 있을 때 부엌에서 들리던 도마 소리와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는 명시적으로 몇 년 몇 월 몇일에 벌어진 일로 기억할 수 없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저 느낌적 느낌으로 우리의 뇌에 각인이 되어있으면서 그때의 따스함, 안온함을 필요로 할때 불현듯 소환이 되고는 한다.
힘들고 괴로운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정서적으로 메말라간다. 누군가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사람에게 뒷통수 맞고 난 다음의 찌릿함에 온마음이 탈진이 된다. 그런데 정서적 탈진은 쉽사리 내 마음대로 충전이 되기 어렵다. 누가 옆에 있어 주기를 원하지만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을 곁에 두고 있기도 힘들고, 혼자서 자가 충전을 하는 능력자는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엄마 품에 파고드는 것도 남사스럽다.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고 했던가?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고 파고파고 또 파고들다보니 아주 어릴 때 아기였을 때의 경험까지 기어올라가게 된 것이다. 바로 엄마의 젖을 물고 있을 때 했던 일타쌍피의 경험. 그때는 두 줄이 아니라 한 줄이었고, 그 때 그랬듯이 맛있는 것을 먹으면 육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모두가 만족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 것을 찾는다. 화나고, 힘들고, 괴롭고, 탈진하고, 마음이 헛헛할때.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함께 나눠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렇게 하면 마음이 풀어지고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헛헛하고 지친 마음에 당이 돌면서 뇌가 활성화되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는 만족감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면서 자율신경계를 의학적으로도 안정화시킨다.
그래서 먹방이라는 것을 찾아서 보고, 쿡방을 보고 따라하고, 맛집이 있으면 찾아가고 메모해두고, 사진을 찍어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한다. 힘들고 지칠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넘기면서 지금 쓰라린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다.
여기에 조금 더 나가서 나만의 소울 푸드를 찾게 된다. 바로 추억의 음식이다. 나만의 추억의 음식을 찾아내고 그것의 기억을 더듬어서 명확히 하는 것은 정서적 기억을 재소환해서 현실의 기억과 함께 맞물려서 부정적인 요인의 아픔을 중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그게 추억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추억의 맛을 갖고 있다. 이런 부분을 잘 다루고 있는 책들이 있다.
박찬일 셰프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먼저 꼽고 싶다. 알려지다시피 기자 출신으로 이태리에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한 쉐프이자 글장이인 저자의 책이다. 그런데, 그의 이전 책에서 요리 수업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나, 좋은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보다 이번 책에서 어릴 때의 추억들을 소환해서 하나하나의 음식들과 매치시킨 것이 나는 가장 좋게 읽었다. 그는 뭔가 일이 풀리지 않고 고민할 일이 있으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그걸 기다리는데 이때 복잡한 머릿속이 정돈된다고 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국수를 말아서 열무 김치를 넣어 만들어준 국수의 기억, 오직 김치와 김칫국물에 깨소금을 탁탁 뿌렸을 뿐이나 누나들 몰래 어머니가 올려주신 삶은 달걀 반개의 기억은 그에게 어머니와 가진 소중한 추억이다. 운동회날에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에도 무리를 해서 밥 한 단, 달걀과 나물 한 단, 고기나 생선 한 단, 거기에 과일 한 단을 쌓아올린 찬합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가져온 장면을 읽는다. 그걸 통해 그가 기자에서 요리사로 전직을 하고, 여러 번 새로운 식당을 열면서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저력은 이런 추억들로 쌓아온 정서적 안정감이란 자아의 힘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심야식당의 만화가 아베 야로의 책『술친구 밥친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의 히트작 심야식당에서 마스터가 만든 요리들은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채워준다. 그것도 한밤중에나 겨우 한 잔을 할 수 있는 도시의 어두운 곳에 속한 마이너 인생들.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고 여기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얽힌 아베 야로 본인의 사연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고향음식에 얽힌 추억들로 샛줄멸 튀김, 가다랑어 타타키등이 소개되고, 심야식당에 나온 등장인물의 원안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000의 여인들이란 그가 만난 신주쿠의 여인들의 이야기가 실려있기도 하다.
이렇게 자신의 어릴 때 추억의 맛들을 책으로, 또 만화로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기죽을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나만의 맛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먹방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쿡방을 보고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서 한 번은 내 마음속에 깊숙이 간직해 있던 나만의 추억의 맛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꺼내 보면 어떨까.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는 것보다, 내가 아닌 남이 먹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나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에너지를 쾌속 충전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의 맛은 나만을 위한 맞춤 처방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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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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