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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테임 임팔라 < Currents >
테임 임팔라(Tame Impala) < Currents >
이들은 음반으로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지난 두 전작으로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 록을 훌륭히 체득했던 케빈 파커와 테임 임팔라는 1980년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리프 구성은 당시 뉴웨이브, 신스팝과 교집합을 이루는 데다 그루비한 리듬을 타고 흘러나오는 리듬 앤 블루스는 해당 무렵의 소울, 펑크(funk), 디스코와 접점을 만들어낸다.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 핑크 플로이드와 연결된 지난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이 지점에서 조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케빈 파커는 밴드가 가진 본연의 컬러를 결코 내려놓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사이키델리아는 여전히 테임 임팔라의 주요한 테마로 자리한다. 형형색색의 모양새를 가진 소리들이 매혹을 던지며 밑바탕에 있는 너른 공간감을 더한 구성은 몽환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만든다.
묘한 작품이다. < Currents >에는 기존 밴드의 모습과 신선한 색채가 혼재돼있다. 오케스트럴 매뉴버스 인 더 다크의 뉴웨이브를 「The moment」와 「Yes I'm changing」에 가져다 놓고 프린스의 리듬 앤 블루스를 「Cause I'm a man」에 끌어왔다. 음반 곳곳에 배어있는 여타 디스코, 신스 팝의 요소들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Let it happen」은 앨범 전반의 콘셉트를 예고하며 신스 팝과 소울을 혼합한 트랙 「Love/paranoid」와 레트로 디스코 넘버 「The less I know the better」에도 또한 변화의 기조가 서려있다. 그러나 사실, 본위에 자리한 케빈 파커의 작법에는 이렇다 할 변동 사항이 없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진행 구조와 그 위에 쌓은 사운드스케이핑, 멜로디컬한 리프, 캐치한 보컬 선율들로 구성된 틀은 전작들을 통해 일찌감치 모델링된 결과들이다. 개개의 곡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을 때 위와 같은 구조를 트랙들 내부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아티스트와 밴드의 뛰어난 창작력은 양립하는 고유의 문법과 새 재료를 합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도 케빈 파커는 사운드를 뒤섞는 데 있어 훌륭한 역량을 보인다. 앞서 언급한 「Yes I'm changing」과 「Cause I'm a man」과 같은 곡들은 물론이거니와 「Past life」도 이에 대한 좋은 증거로 자리한다. 신디사이저 리프들로 대표되는 1980년대의 여러 단편들이 디스코그래피에 이질성을 부여하나 테임 임팔라의 포맷을 거치며 밴드의 독자성에 능히 녹아들었고, 이와 반대로 밴드 특유의 사운드는 낯선 소스들을 취하며 자신들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그룹의 특색을 짙게 깔아놓으면서도 뉴웨이브, 신스 팝 식 터치를 통해 변이를 능숙하게 취한 「Eventually」, 「Reality in motion」 등에도 주목을 기할 필요가 있으며 음반을 근사하게 여는 멋진 사이키델릭 댄스 팝 「Let it happen」을 빼놓고 음반을 얘기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또한 없을 테다.
두껍게 층을 이룬 새로운 공기에 초점이 모이나 멜로디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케빈 파커는 훌륭한 사운드 블렌더임과 동시에 재능 가득한 송라이터다. 선율로부터 출발하는 직관적인 소구 효과가 여러 리프와 보컬 멜로디에 서려있다. 소리의 콜라주를 뚫고 나오는 팝적인 훅 라인의 파괴력이야말로 이 팀이 가진 거대한 강점 중 하나이지 않던가. 갖은 사운드와 선율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곡의 한복판에서 테임 임팔라 산(産) 쾌락이 정점에 오른다. < Currents >의 모양새는 작품 자체로서는 전작들로부터 연결되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가치는 밴드에 걸린 높은 기대치에 충분히 달하고도 남는다. 숱한 사이키델릭 밴드들에게 걸리는 동어반복과 무리한 시도라는 양면적인 부담을 이들은 능란하게 회피하며 다시 한 번 수작을 내놓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능력이 낳은 결과다. 동류의 밴드들이 잔뜩 포진된 지형도 안에서도 케빈 파커와 테임 임팔라는 단연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음반으로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2015/07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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