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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덫

문학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선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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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른 밥벌이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 종합 10위 안에 들지 못하는 작가가 ‘회사원 정도의 수입’을 벌기 위해서는 책집필-청탁원고-강연이라는 삼각형을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최근에 읽었던 텍스트 중 가장 마음에 꽂힌 것은 문학잡지 『악스트』의 천명관 작가 인터뷰였다.
“근본적으로는 글을 써서 자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글을 쓰는 것에도 회의가 온다.”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지만 문학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선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
“지난 십 년간 등단한 작가 중에 회사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내 짐작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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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소설가 천명관 / 출처 : 악스트 Axt창간호 

 

‘작가는 가난해야 한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한다’ 가 고정관념이 된 상황에서 위의 얘기들을 읽으면 후련하다. 그러나 현실에 적용하기엔 알다시피 이상적인 얘기다. 그나저나 ‘회사원 정도의 수입’이란 어떤 액수를 그는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가령 연 수입 5천만원이라고 치자. 소설이나 글만 써서 그 액수를 벌 수 있는 이들은 열 명도 채 안 될 것이다. 그의 짐작대로 지난 십 년간 등단한 작가 중에는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글 ‘외’의 일들을 겸업, 병행하면서 어떻게든 작가업을 유지하는 것일 테니까.
 
다른 직업이 없는 경우 작가들은 책 원고를 쓰면서 동시에 잡지와 신문, 온라인 사이트 등에서 청탁받은 글로 돈을 번다. 내 경우 책 판매가 1만부 전후였을 때는 청탁받는 대로 썼다. 어떨 때는 격주 연재물, 주간 연재물, 주2회 연재물, 월간 연재물, 비정기 사보 외고 등이 겹쳐 한 주에 일곱 개 원고, 즉 평균 매일 한 개의 원고를 마감해야 했었다. 지저분한 데스크 칼렌더를 보면서 ‘원고 머신’으로 사는 일상에 허무함을 느꼈다. 그래도 티끌 모아 어떻게든 ‘회사원 정도의 수입’ 까지는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첫 장편소설을 준비하면서는 큰 마음 먹고 알짜 하나를 제외한 모든 청탁원고를 그만 두었다. 안 그러면 도저히 소설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고료를 높게 쳐주는 제안이 들어와도 눈물을 머금고 거절해야 했지만 한 편으로는 거절할 수 있는 핑계가 있다는 것도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더 절박하게 목표에 매진할 동기부여도 되었다. 다행히 당시 그나마 숨통을 틔게 해준 것은 강연이었다. 대중강연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연재물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강연료로 밥벌이의 일정부분을 채울 수가 있었다. 불행히 모든 작가들이 대중을 상대로 말을 잘하거나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다른 밥벌이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 종합 10위 안에 들지 못하는 작가가 ‘회사원 정도의 수입’을 벌기 위해서는 책집필-청탁원고-강연이라는 삼각형을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셋 중 하나라도 약해지는 징후가 오면 -  다시 말해 책 판매가 확 줄거나, 원고청탁이나 강연이 도통 안 들어오면 ? 하나는 다른 두 가지와도 긴밀한 관계에 있으니 작가에겐 불길한 빨간 신호다. 역으로 작가가 한 가지에 자발적으로 ‘올인’해도 곤란하다. 청탁글 납품에만 ‘달리면’ 소재가 고갈되고 사람의 바닥이 보인다. 강연만 다니다보면 그건 작가가 아니라 전문강사요, 차라리 강연을 유치하기 위해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오로지 내 글만 쓰겠소’는 고결하고 아름답지만 배고프고 불안하여 이윽고 천명관 작가의 말대로 글 쓰는 것에 회의를 느낄 수 있다.
 
이 삼각형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와야 뭐라도 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 방법이 ‘책 대박’이라는 요행 외에는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퀘스천』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인생의 덫은 모두 우리 스스로 놓은 것일까?’라고.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불평할 수는 없다. 천명관은 문학을 사랑하기 위해선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가? 물론 이것도 그렇다. 하지만 저 삼각형을 울퉁불퉁 굴리면서 나아가느라 문학을 사랑하기엔 때로는 너무나 지쳐 있다.
 
 

악스트 Axt 창간호

편집부 | 은행나무

메인 커버스토리로 등장하는 이는 소설가 천명관이다. 작가로서의 삶뿐 아니라 문단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거침없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 소설가 정용준이 인터뷰를 했다. 또한 화가가 소설작품에서 키워드를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림리뷰, 젊은 소설가의 일기, 패션에디터이자 시인인 이우성씨의 ‘세상의 모든 리뷰’ 등의 코너도 선보인다.

 

 

 

 

 

 

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저/조동섭 역 | 밝은세상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 닿을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부모의 불화, 부부 갈등, 부모와의 충돌, 자폐아로 태어난 아들 맥스에 대한 치료와 교육 문제 등 우리가 사는 동안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작가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나의 삶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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