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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유-학교2015>, 교실 속 들끓는 다채로운 이야기
KBS <후아유-학교2015>
어른들의 낭만적인 회상처럼 교실이 즐겁기만 한 곳은 아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앉아 있는 학급에선 불온한 감정이 끓어오른다. 사랑, 질투, 방황, 좌절, 분노, 슬픔….
“솔직히 학교에 가기 싫다. 왜 가는지도 모르겠고, 가면 쪽팔린 일 투성이고, 짜증나는 일도 많다. 공부도 못 하고, 꿈도 없고, 맞는 것도 싫지만 이상한 건 아침에 눈뜨면 자동적으로 학교에 간다. 그래서 학교에 왜 가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하나다. 그냥.”
2년 전, KBS <학교2013>의 고남순(이종석)은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에 이렇게 답했다. 그냥. 학생들이 스승을 존경하고 학우와 우정을 나누며 글자 이상의 윤리와 도덕을 체득할 수 있는 학교는, 안타깝지만 어른들의 환상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남순처럼 학교를 ‘그냥’ 다닌다. 그냥, 눈을 뜨면 가야 하는 곳이니까. 심지어 그냥 지루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누군가에게 학교는 피곤하고 힘들고, 때로는 끔찍한 장소다. 교실에선 어른들은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다채로운 감정이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학생들에게 학교는 가끔 그냥 견뎌내는 것조차 고역인 곳이 됐다.
KBS <후아유-학교2015>는 쌍둥이 이은비와 고은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런 학교를 조명한다. 쌍둥이지만 다른 인생을 살던 고등학생 은비와 은별은 통영에서 재회하고, 불의의 사고로 은비는 은별의 삶을 살게 된다. 드라마는 은별의 학교에서 정체를 감추고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은비를 주인공으로 학교의 여러 면면을 담아낸다.
출처_ KBS
1회, 눈을 가린 소영(조수향)을 친구들이 학교 뒤편으로 데려온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친구들이 준비한 것은 왕따 은비(김소현). 은비를 꿇어앉힌 친구들은 은비에게 달걀을 던지고 밀가루를 쏟고 까나리 액젓을 들이붓는다. 처참한 모습의 은비를 보고 방긋 웃는 소영. 이어지는 대사는 충격적이다. “초가 없는 게 좀 아쉽긴 한데, 고마워! 너무 감동이야!” 경악도 잠시, 다음 장면에서 은비는 이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는 듯 익숙하게 오물을 씻어내고 교실로 돌아온다. 노골적인 비아냥과 빈정거림이 쏟아지는 교실, 선생님조차 아이들을 제재하지 않고 은비는 북적거리는 교실 속 익숙한 외로움을 견딘다.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물리적ㆍ정신적 폭력의 주인공이 되고, 이런 악의는 잔인하고 집요해 학생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질긴 뿌리를 자랑한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왕따가 됐던 친구를 감싸다 본인이 폭력의 희생양이 된 은비는 캐릭터 자체로 다양한 폭력과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것임을 드러낸다. 얼핏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섞은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기존 학교 시리즈의 주제의식과는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군데군데 틈새를 메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학교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 현장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뽐낸다.
또래집단, 그리고 소외가 가장 두려울 나이 아이들 사이 미묘한 갈등을 드라마는 탁월하게 묘사한다. 어떤 폭력도, 강압도 없었지만 매번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영은(김보라)은 특히 그렇다. 일진이니 셔틀이니, 이런 말을 부정하면서도 영은은 친구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쓴다. 기백만원이 넘는 돈을 결제하면서도 돈의 액수보다 친구들 앞에서의 체면을 걱정하는 장면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은 스스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돈을 지불해 친구들과의 시간을 사고 있음을. “니들이 언제부터 날 같은 반 친구라고 생각했어? 너도 인정했잖아, 니들이 날 3반 공식 지갑으로 여긴 거. (…) 평소에 투명인간 취급하다가 어쩌다 한 번 같이 갈래 물어보는 거 그거 돈 내라는 뜻이잖아. 진짜 나랑 같이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 같이 갈래, 그 말 들으려고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데. 니들은 전부 내가 아니라 돈이 필요하다는 거 알면서도 난 싫단 말 못 해. 왠지 알아? 싫지 않으니까. 그렇게라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으니까.” 울분에 가득 차 쏟아붓는 소리에 아이들은 말을 잃는다. 영은은 유난히 제 돈을 쓰는 것을 거부했던 은별에게 도난 혐의를 뒤집어씌우는데, 이런 자신의 치부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여린 사춘기의 감성엔 제 돈을 쓸 때만 웃어주는 친구들보다 그 돈을 비웃는 친구가 더 뼈아프단 것을 드라마는 섬세한 연출로 증명한다.
아이들에게 힘든 것은 단지 교우 관계 뿐만이 아니다. 시진(이초희)는 엄마의 과한 기대 속에서 허우적대고, 분에 넘치는 지원 속에서도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 고민 중이다. 엄마가 가방을 사다 바치고 들어간 스터디에선 매번 비웃음을 사는데, 엄마는 아랑곳않고 공부가 길이 아닌 것 같으니 미술을 시작하자 말한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이 목표인 것 같은 엄마 앞에서 시진은 작아질 뿐이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운다 왜! 아빠 닮아서 머리가 똑똑하던가 엄마 닮아서 얼굴이 예쁘던가. 날 왜 이렇게 낳았는데, 잘하는 게 없잖아 나는!” 장래와 진로에 대한 막막함은 아이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다.
그뿐 아니다. 주인공 은별은 자신의 정체가 들키는 것은 아닌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자꾸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날아오는 의문의 문자에 의아해한다. 송주(김희정)는 이안(남주혁)을 몰래 짝사랑하지만 이안은 제게 도통 관심이 없어 남몰래 속앓이를 하고, 아이들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합격했다 자랑한 교복 모델 광고는 초라한 결과물로 비웃음을 산다. 개의치 않는다 웃으며 말하지만 당연히 마음이 쓰인다. 예민한 시기, 짧은 말 한마디로도 틀어지는 것이 친구 사이다. 소영을 조심하라는 은별의 말은 제 길을 막는 것 같아 화가 나고, 여러 가지 일이 반복되며 은별과 송주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남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안은 은별을 오래 전부터 마음에 뒀지만 요즘 달라진 듯한 은별에게 신경이 쓰이고 태광과 친밀해보이는 모습에 서운하기 그지없다. 집안 사정은 좋지 않고 부상도 염려되지만, 이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은별이다. 태광(육성재) 역시 자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아버지와 갈등하는 한편, 은별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출처_ KBS
놀랍게도, 이 모든 사건들이 서른 명 남짓한 한 학급 내에서 일어난다. 어른들의 낭만적인 회상처럼 교실이 즐겁기만 한 곳은 아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앉아 있는 학급에선 불온한 감정이 끓어오른다. 사랑, 질투, 방황, 좌절, 분노, 슬픔…. 드라마는 이런 고민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편을 택한다. 아이들의 거칠고 풋내나는 토로는 화면에 그대로 담기고, 이야기는 다채로운 감정을 담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상처 받고 고개 숙인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요즘 아이들에 대한 염려를 하기도 할 터다.
드라마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라고 말한다. 힘들고 상처 받은 아이들에 대한 다정하고 따스한 이해. 열여덟, 실용보다 위안이, 이익보다 격려가 중요할 수 있는 나이니까. <후아유-학교2015>는 정공법을 택한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아이들이 어떻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지, 어떤 말이 아이들을 상처 입히고 또 치료하는지 보여주려는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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