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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새해’에 만난 연인들

김연수 <벚꽃 새해>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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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진해 등 남녘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김연수의 단편 <벚꽃 새해>의 시간적 배경은 바로 이 즈음이다.

 

수많은 소설 작품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꽃과 식물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독자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꽃’을 주목한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한다.


서귀포, 진해 등 남녘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김연수의 단편 <벚꽃 새해>의 시간적 배경은 바로 이 즈음이다.

 

사진작가인 성진은 경주 남산에서 봄 풍경을 찍는데, 4년 전 헤어진 ‘구여친’ 정연한테서 시계를 돌려달라는 문자를 받는다. 그녀가 예전에 선물한 명품 시계인 태그호이어(TAGHeuer)를 돌려받고 싶다는 것.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있던 지난겨울 어느 날, 선거 결과 때문에 만취했을 때 그 시계는 고장 나 며칠 전에 시계수리점에 팔아버린 뒤였다.


성진이 시계를 되찾으러 갔을 때 주인은 그 시계는 짝퉁이라고 화를 내며 이미 다른 곳에 팔았다고 말한다. 성진은 그 시계가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당황스럽다. 반면 정연은 자신이 홍콩에서 3000달러에 산 진품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얽힌 두 사람은 시계방 주인이 일러준 서울 황학동 가게로 태그호이어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서울에 막 벚꽃이 필 때였다.

 

성진은 하늘을 올려봤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벚나무 가지가 뻗어 있고, 그 가지들마다 햐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는데 외롭지가 않다니 신기하다고 성진은 생각했다. 뷰파인더로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외로움을 느꼈는데 말이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말하자면 오늘은 벚꽃 새해. _김연수 <벚꽃 새해> 중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처럼, 대개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퍼지는 거리를 연인과 함께 걸어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4년 전에 호기롭게 헤어졌지만 둘 다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니 막 피기 시작한 벚꽃에 더욱 마음이 싱숭생숭했을 것이다. 더구나 두 사람 다 청춘이 훌쩍 가버리고 서른에 이른 것을 아쉬워하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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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에 외롭지 않다니.”


두 연인이 찾아간 황학동 가게 노주인은 그런 시계는 없다고 했고, 대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연을 들려준다. 노인은 진시황 병마용 모형 때문에 무식하다는 모욕을 당한 다음, 매일 낮 동안 가게에서 진시황 책, 사마천의 《사기》 등을 읽는다. 그리고 밤에 불을 끄고 누워서 낮에 읽은 내용 중 흥미로운 대목을 고단한 아내에게 들려주었다는 얘기였다. 노부부는 중국 시안(西安)과 그 너머 사막을 같이 여행하기로 약속했지만 아내는 병으로 죽었다.


여기에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한 태국 고도(古都) 아유타야에서의 경험도 오버랩된다.

 

내 세속적 호기심은 이 두 사람이 재결합할까, 아닐까였다. 구여친과 재결합하기를 바라는 듯한 말과 태도가 곳곳에 나오고, 주인공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둘이서 같이 걸어온 길이라면 헛된 시간일 수 없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와 결말을 궁금하게 했다.


농담 혹은 재치 속에 진지한 문제의식


이런 잔잔한 스토리인데도 이 소설이 잘 읽히는 이유는 액자처럼 담긴 황학동 노인 사연, 아유타야의 불상 머리 이야기 등과 함께 김연수 특유의 재치 있는 농담이 곳곳에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시계를 팔아버렸다고 고백했을 때 정연이 대꾸가 없자 ‘뭐지, 이 폭풍전야의 고요는? 성진은 궁금했다’와 같이 불안해하는 대목이 그렇다. 이 같은 농담 혹은 재치, 너스레 속에 진지한 문제의식과 생각해볼 거리가 담겨 있는 것이 김연수 소설의 특징인 것 같다.

 

되찾지 못한 시계는 청춘의 열정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혔다. 성진이 구여친에게 “배신도 이런 배신이 있을까나. 나는 청춘의 순정을 다 바쳤는데, 그게 짝퉁이었다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열심히 차고 다녔네. 스물일곱 살에서 서른두 살까지 이 소중한 청춘의 5년 동안 말이야”라고 말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김연수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나오는 작품이다. 표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아름다운 문장에다 농담과 유머도 가득해 참 좋았다. 젊었을 때 영화감독과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파멜라 이모가 미국에서 살다 다시 제주도에 돌아와 정착하는 이야기다. 시적인 제목은 이모가 서귀포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했을 때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라는 문장에서 온 것이다.

 

작가 김연수(1970년생)은 견고한 고정 독자층을 갖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젊은 작가군에 속하지만 1993년 시로 등단했으니 벌써 작가 경력 이십 년이 넘었다.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달로 간 코미디언』, 장편소설 『굳빠이, 이상』,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등이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는 한 서평에서 “2000년 이후, 김연수는 뒤로 간 적이 없다. 그의 대표작은 늘 그의 최근작”이라고 했다. 경북 김천 출생으로,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소설가 김중혁과 동향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죽마고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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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김민철 저 | 샘터
김연수 [벚꽃 새해], 정은궐 《해를 품은 달》,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의 최근 소설에서부터 1980년대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양귀자, 조정래, 박완서, 성석제 등)의 소설까지 33편의 한국소설을 150여 점의 사진과 함께 야생화를 중심으로 들여다보았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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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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