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아나운서가 매력적이라 평한 소설가 김율
『스무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 김율
손석희 JTBC 아나운서가 평했듯, 『스무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SNS에서 중계하는 빨간아이의 존재를 추적하는 추리소설 같은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갓 대학생이 된 청춘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놀이를 진지하게 담았다.
대학 등록금은 전혀 낮아지지 않았고, 청년 실업률은 높아져만 간다. 이런 불우한 시대이지만 청년에게는 젊음을 누려야 할 특권이 있다. 사랑, 우정, 방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기에 요즘 작품에는 이러한 청년의 모습은 그다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모습이라든지, 일자리에서 잘려 백수로 지내는 모습 등 먹고 사는 문제의 치열함을 다룬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문학에 우열이 없듯, 어떤 소재가 더 훌륭한지를 묻는 건 의미 없는 질문이다. 확실한 사실은 신인 소설가 김율이 쓴 『스무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은 청춘의 치기 어린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다.
한 대학의 기숙사. 앞으로 다가올 대학 생활에 들뜬 신입생들에게 빨간아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빨간아이는 대학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SNS에 올려 부도덕한 짓을 한 학생을 고발한다. 빨간아이라는 존재 덕분에 캠퍼스가 깨끗해졌다며 좋아하던 학내 분위기는 점점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빨간아이가 캠퍼스를 구석 구석 탐색할수록 학생들이 감시당하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에 가장 당황한 것은 주인공 유리. 빨간아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만든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유리는 누가 빨간아이를 사칭했는지 범인을 찾기로 결심한다.
추리소설 형식을 띈 이 작품은 여러 결로 읽어낼 수 있다. 빨간아이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추리소설로, 다양한 청춘이 겪어내는 신입생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로, SNS가 일상을 장악해버린 현재를 비판하는 이야기로, 21세기 대한민국 대학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햄릿』의 오마주, 그 외에도 독자에 따라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결은 다양하다. 이런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시킨 김율 소설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스무살이 가기 전에 소설을 꼭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는지요?
‘소설 쓰기’라는 행위보다는 소설의 ‘주제’가 제게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스무 살에 대한 이야기를 할거라면 나이 먹고 철들기 전, 나 자신이 아직 스무 살일 때 후다닥 끝내버려야 가장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잠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맡으며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어느 날 5학년 학생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와 다른 애를 흉보느라 귓속말로 “쟤는 아직도 뽀로로 보고 논데요. 쯧쯧”이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좀 더 유심히 들어보니 ‘뽀로로’ 애니메이션을 졸업했는지의 여부가 그들만의 문화적 성숙의 척도였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 나이 또래만이 공유하는 생생하고 재미있는 세대적 코드인거죠. 그래서 저는 제가 현역으로 몸 담고 있는 나이, 현 스무 살만의 정서, 문화, 코드 등을 마치 사진기로 찍듯이 생생하게 소설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보통은 신춘문예 등등에서 등단한 기성 작가들이 소설책을 내게 되는데요. 김율 작가님은 문단에서 등단한 경력 없이 바로 책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기성 작가들에 비해서 책 내는 과정이 약간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제 경우에는 출판사에 직접 투고하여 출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집필 당시 문학상 수상, 혹은 출판 같은 현실적 문제들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쑥 투고를 해본 것이었는데 마침 출판사는 20대 독자들을 겨냥한 책을 기획하고 있다 하더군요. 그래서 관계자 분들과 몇 번의 만남 후 뜻이 맞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추천사를 써 주신 분이 손석희 아나운서인데요. 두 분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요.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십니다. 홀로 소설을 쓰다 보면 평가에 대한 갈증에 목이 탑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간곡히 부탁해 평소 존경하던 손석희 선생님께 소설을 보여드렸습니다. 그 분께서 제 소설에 해주신 ‘매력적이다’라는 평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애초에 제 주제에 첫 소설을 ‘잘’ 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시작부터 다소 부족하더라도 매력적인 소설을 쓰고자 했습니다. 뛰어남과 매력이 언제나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런 와중에 손석희 선생님이 제가 목표로 삼았던 부분을 콕 집어 칭찬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작품에 관해 좀 여쭙겠습니다. 이 소설은 주요 장면마다 햄릿의 구절이 함께 등장하는데요. 작가님께 『햄릿』은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햄릿』하면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우유부단함’이 연상됩니다. 우유부단함은 한마디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상태인데 그것이 제 자신, 그리고 스무 살의 정서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햄릿은 정신 없이 폭주하는 주위 환경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햄릿만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20대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400년을 뛰어넘어 느끼는 동질감에 햄릿을 제 소설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수업 때문에 햄릿을 영어 원문으로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무슨 뜻인지도 잘 해석조차 되지 않는 중세 영어에 무언가 멋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햄릿을 소설의 중심부에 올려 놓았습니다.
요즘 한국소설 중에서는 청춘을 다룬다면 대개 삼포세대, 루저 등 경제적인 빈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서 『스무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은 등장인물의 경제적 상황이 드러나지는 않았는데요.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시며 부각하려 한 청춘의 모습이 있다면?
작가는 300페이지 남짓한 책의 분량에 무엇을 담을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저는 ‘스무 살의 로맨티시즘’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분명 현재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주류적 정서는 ‘루저문화’입니다. 힘든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겠지요. 그러나 시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설사 전쟁통일지라도 스무 살이라면 갖는 감정적 역동, 낭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다루고자 했기에 현실적 고민들은 잠시 차치해두고 스무 살의 흔들리는 영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작품에서 ‘SNS’, ‘감시사회’, ‘소외’ 등을 주제로 읽어낼 수 있겠습니다. 작가님께서는 SNS를 많이 하시나요?
SNS에 직접 글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소위 말하는 ‘눈팅’은 자주 합니다. 온라인 상에 머물지만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현실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SNS라는 소재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심지어는 약간 두렵게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 인용되는 여러 사상가의 글을 보면 평소에 독서를 열심히 하실 듯합니다.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기억에 남는 책을 3권 정도 꼽아주신다면?
저는 거의 소설밖에 읽지 않습니다. 이런 편식에는 거창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소설이 가장 좋아서 소설만 읽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을 세 권 꼽자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그리고 박민규님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입니다.
『죄와 벌』은 살면서 읽었던 책들 중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가장 강렬한 영향을 받은 책입니다. 음울한 페테르부르그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비극적 절규, 스토리, 라스콜리니코프의 광적인 심리 묘사 등 모든 방면에서 압도당해버렸습니다. 많은 책들이 읽고 나면 휘발성으로 날아가버리지만 이 책은 마치 빈 속에 털어 넣은 독한 보드카 샷처럼 온 몸에 저릿저릿 파고들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일까?』는 소설을 풀어나가는 알랭 드 보통의 문체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문장 자체에 감정이 듬뿍 배어있는 데에 비해 그의 문장은 비문학 도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건조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감정이 등장하면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온갖 휘황찬란한 수사가 그것을 꾸며줍니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그 감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독자에게 이해시킵니다. 건조한 문체로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아이러니한 문체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며 박민규 작가님의 유머에 감탄 했습니다. 소설가가 되어보니 유머란 참 다루기 까다로운 놈입니다. 웃기지만 유치하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 있으나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그 적정선을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소설에 쓰이는 뛰어난 유머의 교과서를 읽고 있는 느낌입니다.
소설에서 청춘의 치기 어린 모습, 사랑, 우정 등 다양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작가님 개인적으로는 대학 신입생 때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제 신입생 생활은 얇고 넓었습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리저리 쏘다니며 산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보람차게 이룬 것은 없지만 산만하게 넓어진 견문이 책을 쓸 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열중했던 것을 꼽자면 독서입니다. 학교 도서관에 틀어 박혀 보고 싶은 책을 뒤적거리는 나날이 많았습니다.
첫 작품을 쓰셨습니다. 앞으로도 소설 창작은 계속 하실 계획인지요?
앞으로 두 권 더, 총 세 권 쓰고 20대에는 그만 쓸 생각입니다. 이 결심은 처음 소설을 쓸 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책이란 것은 작가에게 지식, 경험 등의 인풋(Input)이 있을 때 아웃풋(Output)으로 산출되는 것입니다. 20대의 자산으로 쓸 책은 세 권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이것저것 조금 더 배우며 내실을 다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30대가 되었을 즈음에 또다시 책을 쓰려고 할 것 같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무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김율 저 | 푸른숲
《스무 살을 적절히 부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은 기숙사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빨간아이’라는 괴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기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펼쳐낸 이야기다. 대학교 1학년, 일곱 명의 친구들이 이 전대미문의 괴담을 함께 추적하는 내용으로, 그 과정에서 젊음의 맨 얼굴과 맨 언어들이 여기저기서 날것으로 튀어나와 활기차게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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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