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다룬 두 명의 소설가, 최민경 정세랑
『마리의 사생활』 『재인, 재욱, 재훈』 최민경, 정세랑
지난 2월 25일 서울 합정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최민경·정세랑 작가와 함께하는 은행나무 노벨라 2인2색 북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2월 25일 서울 합정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최민경?정세랑 작가와 함께하는 은행나무 노벨라 2인2색 북콘서트’가 열렸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로 나온 『마리의 사생활』(최민경 지음)과 『재인, 재욱, 재훈』(정세랑 지음)의 두 작가가 독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 사회는 서평가 금정연이 맡았다. 두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영상으로 시작한 북콘서트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한 ‘북사운드 트랙’도 함께 울려 퍼졌다. 헤르츠티어가 들려준 곡은 각 작품의 결에 어울리는 ‘곁’(『마리의 사생활』)과 ‘If you rescue me’(『재인, 재욱, 재훈』).
책에 대해 소개해 달라.
최민경 : 『마리의 사생활』은 살면서 맺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잊고 지내던 친구가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하나를 찾아오면서 관계를 맺는다. 이 책에선 각기 다른 여러 관계가 나온다. 책을 쓰면서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마지막에서 하나가 마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데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번쯤은 얘기하고픈 주제여서 재밌는 작업이었다.
정세랑 : 5년 정도 작가 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쉽게 타자를 혐오하거나 폭력적인 사람이 많은데, 주변을 돌아보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많아서 힘을 주더라.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그 사람들이 얼마나 특별한가를 쓰고 싶었다. 주인공 셋 모두 친절해보이지 않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준다.
작품을 쓰면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최민경 : 노벨라 시리즈를 처음 봤을 때는 분량이 적어서 가볍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장편도 단편도 아닌 중편의 분량을 다른 작업보다 어렵게 썼다. 마감도 늦춰졌었는데, 작품이 끝나고 느낀 것은 모든 글은 쓰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세랑 : 비슷한 고민이었다. 분량이 별 것이 아닌 것 같았는데, 작품의 큰 요소였음을 알게 됐다. 300매를 쓰라고 해서 몇 년 동안 미뤄왔던 이야기를 썼다. 그게 참 좋았는데, (시리즈 작품 중에) 나 혼자 400매를 썼다. 100매를 더 썼노라고 편집부에 말했었는데, 원래 나오기로 했던 시리즈 다른 작품이 마무리가 안 돼서 다 쓰지 못한 상태에서 표지 그림이 먼저 나왔다.
두 작품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었나?
최민경 :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이번 작품으로 나왔다. 쓰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다. 관계를 원하지만 뒤로 물러서는 것이 내 작품이라면 『재인, 재욱, 재훈』은 세 명이 세상을 긍정하는 입장이어서 약간은 다르면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여서 흥미로웠다. 장세랑 작가의 작품은 우연히 갖게 초능력이 어디서 오고 왜 하는지 보다는 도와주는 행위에 의미를 두잖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적극성을 띤 캐릭터 같더라. 내 작품과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정세랑 : 작품 공모에 많이 떨어졌는데, 심사평이 늘 주인공이 고민이 없고 밝다는 거였다(웃음). 나는 회사생활도 오래 한 편이라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주인공으로 쓰지 않는 것 같다.
두 작품 공통점이 보인다. 제목에 사람 이름이 들어간다. 아빠가 부재한다. 차이점이라면 『마리의 사생활』이 일상적이고 죽음이 몇 번 나온다면 『재인, 재욱, 재훈』은 죽을 위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다. 관계라는 것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지게 할 만큼 중요한 모티브였나?
최민경 : 살면서 사람들을 관찰도 하고 관계를 맺게 되는데, 각자 안에는 자기만의 폐허가 있다고 본다. 그 마음의 우물이나 사막 같은 것을 훔쳐보고 싶고, 삭막하고 쓸쓸한 부분에 관심이 있다. 그런 것을 통해 이야기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작업이 이런 작품으로 나오기도 하고 시대의 우울감을 공유하고 있음에 안도를 얻기도 한다. 관계는 누구나 고민해봄직한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다고 보고 그래서 이런 작품을 쓰게 된 것 같다.
정세랑 : 자신에 대해서만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없는 것 같다. 무게중심을 (내가 아닌) 바깥으로 옮기고 싶더라. 흥미롭고 재밌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소재는 어떻게 구하나?
정세랑 : 나는 친구들에게 스무 개 이상의 질문을 보내 인터뷰를 한다. 소설 속 재인은 대덕연구단지에 일하는 것으로 설정이 돼 있는데, 실제로 대덕연구단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몇 시에 출근하는지부터 상사가 어떤지 등을 물어봤다. 친구들이 그런 것을 꼼꼼하게 채워서 보내준다. 또 친구 이름을 주인공으로 쓰면 리얼리티가 생겨서 좋더라.
최민경 :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하나의 문장, 한 줄의 문장을 갖고도 (소재가) 떠오를 때가 있다. 일상에서 가끔 그런 것이 와주면 좋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는 독서를 한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하나?
최민경 : 극복이 안 된다. 그 시간이 지나야만 한다. 고갈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오는데 억지로 극복하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이 되는 것 같다.
정세랑 : 김탁환 작가의 파주 사무실에 가본 적이 있다. 김탁환 작가는 진도에 맞춰 하루 30매씩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 그게 참 멋졌다. 하루 30매는 쉽지 않은데, 나는 흉내라도 내 보려고 오전에 10매를 쓰고 오후에 고치는 것으로 생각해 봤었지만 잘 안 되더라(웃음). 평소에 윤활유를 많이 쳐줘야 하는데, 규칙적인 작업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한 사흘가량 놀면 계속 놀고 싶어서 글이 안 된다(웃음).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해보니 어떤가.
정세랑 : 해놓고 나니 마음이 좋다. 우리 다음의 작가들은 (마감 때문에) 죽고 싶을 거다(웃음). 약 올리는 재미로 한다.
최민경 : 책이 출간돼서 편한 마음으로 이런 자리도 나오는데, 지금 쓰는 작가들은 심적으로 부담될 것이다. 대개의 작가들은 ‘독고다이’인데, 이 시리즈에 한 작품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소속감을 주더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각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는 어땠나?
정세랑 : 책을 읽으면서 최민경 작가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니 그런 생각은 날아가고 무척 동안이여서 쇼크를 받았다(웃음). 카메라 앞에서 영상을 찍을 때, 최민경 작가가 너무 부끄러워하셔서 무척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최민경 : 정세랑 작가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점을 가지고 있더라. 작품과 비슷하다. 긍정적, 낙천적, 외향적이고 건강하다. 상상력의 폭이 나보다 넓어서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큰 것 같더라. 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설은 잘 쓰지 못하거든.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밝고, 작업 스타일도 성실한데, 가까이 두면 나도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같으면서도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이어 최민경 작가와 정세랑 작가가 각자의 작품이 아닌 옆 작가의 작품 가운데 인상적인 부분을 낭독했다. 즉 최민경 작가는 『재인, 재욱, 재훈』의 154~155쪽에 나온 부분을, 정세랑 작가는 『마리의 사생활』의 121~122쪽 일부를 낭독했다. 이후 독자들의 질문이 잇따랐다.
『재인, 재욱, 재훈』을 보면 칼국수를 먹고 초능력이 생긴다. 이전 작품에도 먹는 것과 연관돼 재밌는 설정이 있었는데.
정세랑 : 엉뚱한 것을 먹고 초능력이 생기는 경우를 쓰고 싶었다. 파주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칼국수집이 있다. 그 칼국수를 먹으면서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설정을 능청떨면서 써서 독자들이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욕심을 내봤다.
최민경 작가의 작품을 다 읽었는데, 공통점으로 누군가가 죽는다. 이런 설정에 의도가 있나?
최민경 : 의도하진 않았는데 『마리의 사생활』을 쓰고 다시 읽어보니 죽음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에겐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무의식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랄까. 이번 작품을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가 내 무의식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도 덧붙여진 것 같다. 스무 살 무렵 지인들의 죽음을 많이 접했다. 옆의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당시에는 멍한 상태였는데,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남아 있으면 변형된 형태로 작품에 나오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알게 됐고, 죽음이 훨씬 더 강렬한 방식으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글을 쓰는 것이 내 나름의 애도의 방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최민경 : 3월에 성장소설 한 권을 발표할 계획이며 계속 재밌는 다양한 작품을 쓸 것이다.
정세랑 : 9월 출간을 목표로 하나 쓰고 있는데, 내가 썼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가벼움이 끝까지 달리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지금 고치고 있는데, 얼른 나오면 좋겠다.
마리의 사생활최민경 저 | 은행나무
최민경의 소설 [마리의 사생활]. 몇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엄마와 나 둘, 빈집 같았던 우리 집에 어느 날 마리가 찾아왔다. 내 초등학교 동창은 ‘말희’였으나 그녀는 피나는 노력으로 ‘마리’가 되어 있었다. 유럽여행을 끝내고 막 한국에 왔다는 마리는 정말 친한 친구의 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굴고, 과거 어릴 때 내가 보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편지들 때문에 마리가 여행을 떠날 용기를 얻었다며 나를 꼭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그런데 이제 오랜 친구인 상준과의 사이에도 마리가 끼어들자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데…
재인, 재욱, 재훈정세랑 저 | 은행나무
명랑하고 유쾌한 서사, 감전되고 싶은 짜릿한 상상력,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제를 낚아채는 건강한 시선으로 한국소설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작가 정세랑의 소설 《재인, 재욱, 재훈》이 은행나무 노벨라 다섯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 《재인, 재욱, 재훈》에서 역시 그는 특유의 엉뚱하면서 따뜻한 상상력으로 누구라도 깜짝 놀랄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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