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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족과 다투고 출근한 당신에게

너무 익숙해서 상처인 줄 모르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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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비판 사이에서 명확한 경계선을 긋기가 어려운 까닭은 언어에 두 가지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메시지와 메타메시지다. 이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하고 또 인지할 줄 알아야만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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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 벙끗 못 하겠네”

 

“꼭 케이크를 한 조각 더 먹어야겠어?” 도나가 조지에게 묻는다.


“당연하지.” 조지의 대답은 날이 잔뜩 서 있다. 그 안에는 “좀 전까진 망설였는데 이젠 무조건 먹어야겠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도나는 말문이 턱 막힌다. 조지는 나중에 가서 괜히 한 조각 더 먹었다고 후회할 것이 뻔하다.


“왜 맨날 내가 먹는 것 갖고 뭐라고 그래?” 조지가 묻는다.


“그냥 당신 탈 날까 봐 그러는 거지. 다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20대 후반의 엘리자베스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그녀의 집에 모인 가족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딸네 집을 찾아온 어머니도 거들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칠면조 속에 넣을 재료를 준비하자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얘, 거기에 양파 넣게?”


불현듯 열여섯 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에게 쏘아붙인다.

 

 “엄마, 칠면조 속에 뭘 넣든 내가 알아서 해요. 왜 내가 뭐만 했다 하면 흠을 잡으세요?”


“흠을 잡긴 누가 잡았다고 그래. 그냥 물어본 거야. 너 뭔 일 있니? 입도 벙끗 못 하겠네.”


가족의 장점,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사랑의 장점은 상대방이 나를 속속들이 알아서 굳이 속마음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애지중지하는 사람이 나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 얄궂게도 가족이야말로 우리를 빈번하게 괴롭히는 존재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지척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의 결점을 모조리 볼 수 있다. 그것도 마치 돋보기를 댄 것처럼 세세하게 말이다. 가족은 우리의 잘못을 수도 없이 목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족끼리는 오랫동안 함께한 세월이 있어서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 속에는 반드시 과거에서 온 의미가 메아리치게 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평소 늑장을 부리는 편이라면 부모님, 형제자매, 배우자는 “여덟 시에 출발해야 해”라고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야. 절대 늦으면 안 돼. 제발 7시 반 말고 7시에 욕실에 들어가!” 이런 명령은 우리 삶에 참견하는 모욕적인 언사지만 경험에 기초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이미 부정적인 판단을 수차례 경험해봤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거의 육감적이라고 할 만큼 기가 막히게 비판의 낌새를 잘 알아차린다.


어릴 때는 가족이 세상의 전부다. 성인이 돼도 가족은 여전히 그렇게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다. 우리는 그들의 판단에 과민 반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꼭 대법원의 판결처럼 느껴지고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치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감정 결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판결에 발끈하는 까닭은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다. 혹은 왠지 거기서 외면하고 싶은 일말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또는 우리를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그처럼 가혹하게 비판한다면 정말로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어서 그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사랑마저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 속에 도사린 뜻들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느냐는 생각으로 시커먼 분개심이 일어난다.


특히 자녀가 부모와 마찰을 빚는 이유는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가 몇 살이 되든 간에, 부모님이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간에, 부모님과 사이가 가까웠든 멀었든 간에 살다 보면 부모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볼 때가 있게 마련이고, 내가 쓸 만한 사람인가 싶어 부모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부모님의 비판은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력이 남다르다.

 

관심이 있으니까 비판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싶으면 자신이 그것을 지적할 자격은 물론이고 의무까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여성은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어머니에게서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잔소리를 하시고는 매번 ‘내가 엄마라서 널 사랑하니까 듣기 싫은 소리라도 할 수밖에 없어. 나 말고는 아무도 네게 이런 말 안 할 거야.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너한테 관심이 없으니까’라고 하셨어요.”


가끔 보면 가족들은 ‘관심이 있으니까 비판한다’를 무슨 교리처럼 떠받드는 것 같다. 이것 고쳐라, 저것 고쳐라 하는 말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비난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조언을 하고 지적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관심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머니가 딸의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남자친구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직업을 찾을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신랑감으로 불합격이라고 생각했다. 딸은 자기가 만나는 사람마다 어머니가 못마땅해한다고 받아쳤다. 어머니는 괘씸해하며 쏘아붙였다.

 

 “그럼 아예 관심 갖지 말까?”


우리는 부모님, 자녀, 형제자매, 배우자가 한가족인데도 왜 그렇게 우리에게 비판적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디까지나 아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을 비난으로 받아들인다고 섭섭해할 때도 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조언의 이중성을 알면 이해가 된다. 조언은 따스한 관심의 말이면서 따끔한 비판의 말이기도 하다. 둘 중 무엇이 맞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관심과 비판 사이에서 명확한 경계선을 긋기가 어려운 까닭은 언어에 두 가지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메시지와 메타메시지다. 이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하고 또 인지할 줄 알아야만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할 수 있다.

 

* 이 글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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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 | 예담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에서는 내 편인 줄 알았던 가족이 왜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 왜 싸우고 후회하는 일상을 반복하는지 보여주고, 더 이상 사랑이란 말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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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데보라 태넌

작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

<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12,510원(10% + 5%)

가장 가까워서 더 어려운 가족의 대화법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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