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깬 뮤지션들이 돌아왔다. 아이돌들은 전처럼 힘쓰지 못했고, 힙합이 굳건했다. 다양한 조합들도 흥미로웠다. 돌이켜보니 기형적이었던 2014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Splash of the year 2014.
1. 상반기부터 올해 끝까지
콜라보레이션
부정할 수 없는 소유와 정기고의 합이 소녀시대, 투애니원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콜라보레이션이 많았다. 한 때 유닛들이 쏟아졌던 것처럼, 올해 짝 짓는 방식이었다. 이전의 「착해 빠졌어」, 「Officially missing you, too」가 다져놓은 바닥이다. 2월에 「썸」이 터지면서, 유사품들이 덤벼들었고, 피쳐링이라 해도 될 만한 협업에도 꼭 '콜라보레이션'이 붙었다. 그런 표현 덕인지, 조합은 더 다양해졌다. 웃음거리가 된 것을 역으로 이용한 비진아(비X태진아), 구분되어 있던 세대를 뭉친 아이유, 여름엔 싸이 X 스눕 독, 산이 X 레이나가 있었다. 근래 YG 힙합 프로젝트 역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듣는 이에게 새로움을 주고, 다른 팬덤의 힘 받아오는 가요계 흐름이었다.
섹시 콘셉트
걸 그룹의 섹시 콘셉트도 상반기 「Something」부터 최근 「위아래」까지, 2014년을 달궜다. 언제나 존재했지만 올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방송 3사가 3대 금지 안무를 내놓았기 때문.(1. 무대에 눕지 말 것 2. 몸을 더듬지 말 것 3. 의상을 열어젖히지 말 것) 결단을 내려야했다.
역사적으로 대중음악, 예술이 '어른'들의 보편적인 견해보다 앞서간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엔 다르다. 단순한 노출과 자극으로만 경쟁하여, 섹시 평준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K-POP의 주된 소비자, 10대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접근성이 높아져, 그 아래 동생들에게도 나쁜 화면과 가사가 전달될 수 있다. 실제로 따라서 춤추는 아이 보고 경악했다는 엄마들 많다.
걸 그룹의 입장도 어쩔 수 없다. AOA는 밴드, 걸스데이는 귀여운 콘셉트였지만 대중은 그들이 짧은 치마 입을 때부터 기대했다. 그전은 모른다. 선정적인 설정이 성공할 확률도 높고, 논란이 되면서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얻게 해준다. 양측 모두, 각성하지 않는다면 벗어나기 힘든 씁쓸한 악순환이다.
2. 세월호 사건의 여파
올바른 애도의 자세 ▶◀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295명이 허망하게 떠났다. 사건을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은 나라를 절망으로 몰았다. 몇 달간 일시정지, 흑백 톤이었다.
모든 뮤지션은 애도하기위해 앨범과 공연을 연기했다. 몇몇 클럽들도 휴업에 들어갔다.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뒤로하고, 국가적인 아픔에 동참한 것은 성숙한 판단이었으나 페스티벌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 뷰티플 민트 라이프 2014 >, 사고 바로 뒤에 예정되어있었다. 고심했지만 임박한 일정 때문에 행사를 축소해서 진행하려 했다고 한다. 시끄럽고 밝지 않게 애도하는 분위기를 지키려는 듯 보였으나, 고양시에서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했다. 하루전날에 취소해버렸다. 당시 백성운, 새누리당 고양시장 예비후보는 “세월호 통곡 속에 풍악놀이 웬 말인가”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에 여러 뮤지션들이 안타까움 드러냈었다. 음악은 '위로'라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펜타포트의 선전
3개월이 지나고 여름, 페스티벌 시즌이 다가왔을 때에도 세월호의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대중음악을 넘어 영화관에도 빈 의자가 많았다. 분명 위축되었었다. 여기에서 인천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오랜 내공을 펼쳤다. 비가와도 능수능란한 진행, 라인업에 관계없이 폭발적인 분위기와 스테이지별 매력. 3일간 9만 3천명으로, 역대 최다의 관객을 모았다. 올해 최고의 페스티벌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그리고 2015년은 펜타포트의 10주년이다.)
[페스티벌 기선제압] ④ 나의 페스티벌 답사기 2014 : 펜타포트는 사랑입니다.
3. 힙합이 대세
연결고리
힙합이 대세라는 말은 식상해졌지만, 2014년까지 이어졌다. 여러 가지가 맞물렸다. 랩 스타와 현역 래퍼들,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의 캐스팅으로 성공한 < Show Me The Money 3 >가 그 중심에 있다. 나아가 걸출한 힙합 앨범들이 쏟아졌다. 에픽하이, 개코, 빈지노 그리고 알앤비 싱어 박재범과 크러쉬, 또 저스트 뮤직과 일리네어의 컴필레이션. 모두 만만치 않았다. 힙합신 안에서만 유행이었던 「연결고리」는 이렇게 파도의 파도의 파도를 타고 홍대에서 홍콩까지 갔다. 올해 설립된 박재범과 사이먼 디의 레이블, AOMG도 뜨거웠다.
디스전과 < Show Me The Money 2 >에서의 활약으로, 힙합 열풍에 방아쇠 당긴 스윙스의 올해 역시 뜨거웠다. 박수칠 때 입대했다. 때문에 2015년도 힙합이 대세일 수 있을지, 그 악동의 빈자리는 누가 채울지가 관심 가는 부분이다.
힙합인 척하는 MC몽
5년간의 자숙을 마치고 돌아온 엠씨몽을 두고 대중은 뿔이 났다. 감싸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민감한 문제였던 만큼 날카롭게 반응했다. 컴백에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군가, 「멸공의 횃불」이 100위권 내에 올라가기도 했다.
잘못을 넘어, 얄밉게 피해 다녔다. < Miss Me Or Diss Me >라며 자신감을 보이고는 숨어서 돈 벌었다. 컴백한 시기도 그가 군대에 갈 수 있는 나이(만 35세까지)가 갓 넘었을 때. 개운치 않다. 관계없이 음원차트에선 승승장구했다. 올해, 단기간에 사랑받았던 앨범 중 독보적이다. 이런 갖가지의 논란들을 야기하고도 엠씨몽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4. 돌아온 90년대
컴백과 향수
조용필의 「Bounce」 덕분인지, 김추자, 양희은 등 긴 공백의 뮤지션들이 돌아왔다. 특히 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가수가 많았다. 서태지, 이승환, 이선희, 이소라, 김동률, 토이, 임창정, 참 많다. 건재한 경우도,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가요계를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알록달록, 풍성하던 한 해였다.
90년대는 향수로도 다가온다. 재작년의 < 건축학개론 >이 제시하고, < 응답하라 > 시리즈가 얼개 잡았다. 2015년 앞부분에 걸쳐있는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와 지오디의 성공적인 컴백이 여기에 일맥상통한다. 증명했다. 복고는 이제 '7080'에서 'Back to the 90's'로 넘어갔다.
그리고 신해철
신해철도 올해 돌아온 90년대였다. 건강상의 문제로 오랜 공백을 가졌었지만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며 부인에게 무릎 꿇고 부탁했다. 음악을 시작하던 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정말 행복해보였다. 넥스트와 솔로로서 리부트할 것이라며 거친 날개 짓을 보였고, 올해 여름 TV와 라디오, 공연 무대를 넘나들었다.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렇게 의욕적인 모습으로, 그는 떠났다.
비상한 사람이었다. 90년대 아이돌 스타이면서, 깊이 있는 새로운 음악 고집하던 로커, 용기 있게 소신발언 하던 논객이었으며 따뜻하고 인간적인 라디오 DJ이기도 했다. 그의 자리가 컸기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방송사와 가요계 동료들도 그를 추모했다. 보내기엔 일렀고, 사인이 안타깝다.
올해 세상을 떠난 가수 고은비, 권리세, 박성신, 신해철, 유수연, 유채영의 명복을 빈다.▶◀
2015/01 전민석(lego93@naver.com)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