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담은 영화들
라디오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찾아보자
라디오의 매력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바람도 괜한 것만은 아닐 테다. 듣기로만 가져왔던 감상을 꺼내 보인 영화들, 이 자리에서 몇 편 소개한다.
청각에만 의존하고 있으나 이 매체로부터 발하는 상상과 낭만, 기쁨은 제한된 자극이라는 제 태생적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미디어의 변이에 반하고 있음에도 라디오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매력을 시각화하고자 하는 바람도 괜한 것만은 아닐 테다. 듣기로만 가져왔던 감상을 꺼내 보인 영화들, 이 자리에서 몇 편 소개한다.
굿모닝 베트남 (Good Morning, Vietnam, 1987)
라디오는 친근하고 감성적인 매체다. 그래서 때로는 DJ의 멘트 한 마디가 대통령의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삶의 전쟁터에서도 이러한데 실제 전쟁터에서는 오죽할까.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서 “Go~~od Mor~~ning Vietnam!!!!”이란 야단스러운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파격적인 방송,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군인들을 토닥거리는 DJ에 대한 이야기다.
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전쟁터에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What a Wonderful World)」가 울려퍼진다. 영화는 이 음악 하나로 미국의 영웅담이 아닌 전쟁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게다가 얼마전 우울증으로 자살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의 연기가 너무나 천진하고 유쾌해서 더 씁쓸함을 남긴다. 그가 죽다니.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니. 인간의 모순과 잔혹함은 그대로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세상인가.
2014/9 김반야 (10_ban@naver.com)
볼륨을 높여라 (Pump Up The Volume, 1990)
1990년에 개봉한 영화인만큼, 라디오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청취자들과 같은 고등학교 학생, 디제이 해피 해리가 완전한 공감을 바탕으로 소통한다. 거칠지만 감싸주고 싶은 사춘기, 반항과 고민 그리고 낭만을 해적 방송으로 다뤘다.
10대는 라디오를 알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예민하고 혼란스러울 때에 라디오는 이 질풍노도를 어루만져 잠재운다. 영화는 그런 부분을 짚었다. 발칙하면서도 부드럽다. 제 16회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극중 방송 오프닝 곡,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는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도 오프닝으로 쓰였다. 어렵지 않지만 여운은 꽤 진하다.
2014/09 전민석(lego93@naver.com)
락앤롤 보트 (The Boat That Rocked, 2010)
영화 < The Boat That Rocked > 영국의 라디오 해적방송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1966년 반정부적인 메시지를 담은 로큰롤을 젊은 세대에게 전파하는 매체인 라디오 방송을 법으로 금지한 것이다. 이에 저항적 성향을 지닌 8명의 로큰롤 전문 DJ들은 해적방송선 '라디오 록 호'를 항만에 띄운다. 해적 방송인만큼 표현도 자유로운 '라디오 록'은 영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지만, 영국 정부는 이 배를 전복시키려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은 극의 가장 큰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물론, 로맨틱 코메디의 대가인 리차드 커티스(Richard Curtis)의 작품인 만큼 추억 속의 음악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귀를 들뜨게 한다.
2014/09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미스터 로큰롤 : 앨런 프리드 스토리(Mr. Rock 'n' Roll: The Alan Freed Story, 1999)
미국의 디스크 자키 앨런 프리드는 로큰롤을 영미권 주류 음악으로 올려놓은 공신들 중 하나다. 이른 1950년대서부터 혜안을 갖고 빌 헤일리 앤 히스 코메츠, 척 베리, 플래터스, 리틀 리처드 등이 구사해온 음악을 꾸준히 소개했다. 그 덕택에 '흑인으로부터 시작된 난잡하고 불경한 소음'은 음악의 한 장르와 새로운 팝 컬처라는 거대한 의미를 조금 더 수월하게 획득할 수 있었다. 1999년에 나온 이 TV 영화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전설적인 DJ에 대해 다루고 있다. 팝 애호가라면 재밌을 앨런 프리드의 에피소드들이 영화 전반을 이룬다. 빌 헤일리, 제리 리 루이스, 버디 홀리 등으로 구성된 주변 인물들 또한 흥미를 자아내는 포인트. 영화 < 브렉퍼스트 클럽 >에 등장했던 주드 넬슨이 앨런 프리드의 역할을 맡았다. 라인업에서 폴라 압둘의 이름도 확인해볼 수 있다.
1957년, 앨런 프리드의 소개로 척 베리, 리틀 리차드, 클라이드 맥패터 등이 등장해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 영화 < 미스터 로큰롤(Mister Rock And Roll) >이 등장한 바 있다. 작품의 제목은 여기서 따온 듯하다.
2014/09 이수호(howard19@naver.com)
접속 (1997)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신청곡'이다. 케이블 TV 쇼핑가이드인 수현(전도연)이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를 신청하고, 이를 본 라디오 피디 동현(한석규)은 그가 혹시 갑자기 떠나버린 옛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피시통신으로 접속하기에 이른다. 지금과 같은 IT 시대에선 사연이 온 핸드폰 번호를 확인해 약속장소와 시간을 잡으면 끝나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런 갑작스런 만남 자체가 어려웠기에 왠지 모를 설렘과 같은 아날로그의 감성이 아직 남아 있던 시기였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전해 문자나 앱을 이용,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쌍방향 시스템이 라디오의 대세가 되어버렸지만, 전보다 메시지는 가벼워지고 진정성은 휘발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오롯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다른 외부 자극 없이 단순히 텍스트만으로 감정을 나누는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감성과 정서로 서로의 이야기를 차근히 들어주며 사랑을 쌓아나간다. 우리는 분명 편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너무 많은 정보에 휘둘려 진짜 간직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멀티태스킹이 만연한 요즘,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에 진심으로 접속하고 있는 걸까. 다른 일 다 제쳐놓고 라디오 전파 하나에만 매달려 울고 웃던 그때가 그립다.
2014/09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프레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 2006)
생방송 라디오 쇼의 마지막 날을 그린 2006년도 영화. 실제 존재하는 동명의 라디오 쇼를 소재로 했으며 주인공 게리슨 케일러는 이 쇼의 진짜 진행자이기도 하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다져진 사회자와 스태프들의 유대감은 가족 그 자체이며, 즐겁게 웃고 떠들며 장난치다가도 방송이 시작되면 완벽한 프로의 면모를 보인다. 시종일관 밝은 진행과 활기찬 게스트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어두운 그림자다. 비현실적인 소재로 죽은 사람이 돌아오기도 하며, 늙은 가수는 마지막 쇼와 함께 운명을 달리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쇼에서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본다. 알고 보니 < 끝없는 사랑 >, < 내쉬빌 >로 유명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유작이다.
현실 속의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의 미래는 사실 어둡다. 쏟아지는 매체 속에 더 이상 대중은 라디오와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도 라디오 종사자들은 하루하루 양질의 콘텐츠 전달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게다가 흔하지 않다고 하여 그 매력이 없다는 것 또한 아니다. 라디오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영화와는 달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14/09 김도헌(zener1218@gmail.com)
라디오 스타 (2006)
한물간 왕년의 스타가수 최곤에게 의지할 구석이라고는 일편단심 자신을 따라주는 매니저뿐이다. 미사리 카페 촌을 전전하다가 겨우 발을 붙인 곳이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 방송. 처음에는 사사건건 문제만 일으키고 시큰둥해하던 그였으나 차츰 방송에 정을 붙이며 방송도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 라디오 스타 >의 묘미는 20여년을 같이 붙어 지낸 가수와 매니저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한물간 가수의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매개가 역시 지난날의 매체인 라디오라는 점도 묘한 감정의 파동을 일으킨다. 특히 영화 후반부 매니저 박민수를 돌아오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영화의 잔잔한 마무리를 유도한다. 두 남자의 우정과 라디오가 빚어내는 이야기 덕분에 < 라디오 스타 >는 백이면 백 떠올리는 우리나라의 라디오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2014/09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원더풀 라디오 (2012)
“나 퍼플 신진아야!” 퇴출 위기 라디오 프로그램과 이를 지키려는 한 때 아이돌로 잘나갔던 디제이. 이민정은 다혈질로 돌변해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매니저를 맡은 이광수는 유쾌한 분위기를 영화 내내 품고 간다.
청취율 바닥이었던 < 원더풀 라디오 >를 재기하게 해준 코너 '그대에게 부르는 노래'.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출연해 각자의 사연을 노래로 전한다. 흘러나오는 구절이 곧 내 얘기 같아 눈물을 흘리던 기억, 이 과정에서 용기를 얻고 무대에 서는 이민정의 모습은 청취자와 디제이 사이의 쌍방향 공감이 이루어지는 라디오만의 매력을 담아낸다. 돌다리를 연신 두들이며 안전한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을 섞어낸 전개가 아쉽지만 보는 이를 라디오 속으로 옮겨오려는 노력과 SBS < 두시탈출 컬투쇼 >의 이재익 PD가 쓴 따뜻한 시나리오가 한 덩어리가 되어 머리가 반응하기 전 마음이 먼저 동한다.
2014/08 정유나(enter_cruise@naver.com)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Play Misty For Me, 1971)
여자들은 목소리 좋은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디제이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많은 로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디제이는 불특정다수인과 소통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디제이의 목소리를 자신에게만 속삭이는 밀어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착각에서 가슴앓이 혹은 불행이 시작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 데뷔작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는 심야 라디오 디제이와 하룻밤을 보낸 여성이 그에게 집착하면서 발생하는 공포와 비극을 섬세하고 타이트하게 묘사했다. 로버타 플랙의 처연한 알앤비 발라드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로 기억되는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는 디스크자키가 단지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직업만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2014/09 소승근(gicsuc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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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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