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태운 우주선이 블랙홀에 접근하고 있다면, 당신은 블랙홀이 처음 생성되던 수십 억 년 전에 블랙홀의 중력에 붙잡혀서 그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블랙홀이 거쳐온 모든 역사가 당신의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다. - 미치오 카쿠 『평행우주』(박병철 옮김, 김영사, 2006)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블랙홀을 영화 「인터스텔라」 덕분에 아이맥스로 ‘볼’ 수 있었습니다. 블랙홀은 거대한 중력으로 빛 알갱이까지 삼켜버립니다. (영화 속 우주인들은 블랙홀을 ‘가르강튀아’라고 부릅니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풍자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늘 출출한 대식가를 비유하는 데 곧잘 쓰입니다.) 소나기가 오면 비가 내리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르는 선이 생기듯 블랙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을 넘는 순간 ‘호로록~’ 완벽하게 검은 무의세계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선 바로 앞에서는 몹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만약 충분히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바라본다면 수많은 별과 별빛이 빨려 들어가기 전 모습으로 한꺼번에 보일 겁니다. 그래서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즉 사건의 경계선인 블랙홀 바로 앞은 마치 금식을 앞두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미친 듯이 노는 카니발처럼 늘 황홀하게 반짝거립니다.
비록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블랙홀은 시간 여행과 에너지 보존의 비밀, 다른 우주로 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죽음이 떠오릅니다. 삶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지만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매혹적입니다. 흔히 숨이 넘어갈 때면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합니다. 주마등이 아마 인생 버전의 이벤트 호라이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죽음 너머에 블랙홀처럼 천문학자들이 상상하는 화이트홀이나 평행우주가 있다면 다행입니다. 어쨌든 한 번 더 살아볼 수 있으니까요. 만약 아무것도 없더라도 ‘아님 말고’, 실컷 놀았으니 됐습니다. 뭐가 있든 없든 살아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축제뿐입니다. 그리고 축제는 늘 길 위에서 펼쳐집니다. 떠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떠나는 이유밥장 저 | 앨리스
여행으로 삶을 촉촉하게’를 기치로 여행에 필요한 아홉 단어를 중심으로 밥장 식 여행을 풀어간 책이다. 밥장이 여행에서 늘 강조하는 것은 기록이다. 그는 보기보다 담기, 찍기보다 쓰기 그리기를 권한다. 사소한 것도 내 느낌을 간직하고 기록하다 보면 여행 작가 태원준의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리는 순간”도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고 “카페의 냅킨 하나로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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