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유정의 여행과 글쓰기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출간한 정유정 작가 들려주기보다 보여주기를 더 잘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소설적인 보여주기를 추구하는 편이에요. 물론 들려주기도 굉장히 중요해요. 잘 들려줄 수 있으면 보여주기보다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데, 제가 봤을 때 저는 들려주기보다 보여주기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청바지를 입고, 날씬하고 긴 다리를 성큼 성큼 움직여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그녀의 소설만큼이나 거침이 없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했다. ‘소설이란 결국 작가의 생각을 넘어선, 활자화된 삶의 어떤 태도가 아닐까’하고.
들려주기보다는 보여주기의 소설
김태훈 :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유정 : 이야기와 스토리텔링 속에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 이런 것들을 던질 수 있으면 좋은 거고요. 아니다 하더라도 재밌고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책을 낼 때마다 ‘내가 이걸로 세상에 어떤 걸 어필해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독자들이 내 책을 여는 순간 끝장을 보기 전에는 못 닫는다’ 이걸 목표로 하고 가요. 작가라면 최소한 그 정도의 흡입력, 붙잡아 놓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갖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쓰는 편이에요. 그런 건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기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그럴싸하고 이야기에 구현된 허구의 세계가 매력적이어야 하고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박진감도 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또 가장 중요한 게 서스펜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스펜스는 반드시 공포물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거든요.
김태훈 : 긴박감이라는 건, 드라마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정유정 : 서프라이즈 이런 것보다는 서스펜스가 가장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요구한다고 생각해요. 서스펜스를 잘 구사하는 작가가 스티븐 킹인데, 제가 항상 어디에 가면 농담처럼 ‘스티븐 킹을 하느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요(웃음). 책을 보면서 그런 것들을 배우려고 애를 쓰고요. 그리고 작가가 굉장히 매력적인 무엇을 주어야만 독자가 지갑을 열고 내 책을 사는 거지, 제가 김태희도 아닌데(웃음) 제 프로필 사진 보려고 책을 사지는 않으실 거 아니에요.
김태훈 : 서사 구조가 있어야 된다, 줄거리가 재밌어야 된다는 건 아마도 소설이나 영화의 숙명 같은 것일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역시 제 편견입니다만, 여성 작가의 사건치고는 굉장히 강렬합니다. 특히나 등장하는 남성들의 거친 언행과 행동들, 특히나 『28』의 프롤로그에서 던져진-개썰매를 끌고 빙원을 달리는 한 남자에 대한 이미지 같은 것들이요. 스티븐 킹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외 다른 남성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영향 받은 바가 있을까요?
정유정 : 사실 여성 작가의 책은 많이 읽지 않아요. 대부분 남성 작가의 책을 좋아해요. 레이먼드 챈들러 좋아하고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스티븐 킹 좋아하고. 그리고 이야기의 제왕은 저는 찰스 디킨스가 최고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는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저는 집에 TV도 없고 영화를 안 봐요. 왜냐하면 보게 되면 거기에 갇혀요. 영상은 그야말로 폭력이에요. 내가 싫어도 그냥 박아 넣는 거거든요. 가령 내가 이 문을 열고 탈출을 해야 한다는데, 그 순간에 영화에서 본 것들이 박혀있으면 그걸 벗어나지 못해요. 그러니까 되도록 영화를 안 보려고 애를 써요.
김태훈 : 글쓰기가 영상을 불러오는 작업이 되어야 하는데, 영화를 많이 보면 글쓰기가 영상에 의해서 영향 받은 글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단절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정유정 : 그렇죠. 영화를 많이 보면 거기에 갇히니까. 그래서 제 소설을 보고 ‘영화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참... 그렇죠(웃음).
김태훈 : 문장의 이미지들이 생생히 잘 전달된다는 느낌일 수도 있고요. 또 네 권의 소설이 모두 판권이 팔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유정 : 영화에서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소설적인 보여주기를 추구하는 편이에요. 물론 들려주기도 굉장히 중요해요. 잘 들려줄 수 있으면 보여주기보다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데, 제가 봤을 때 저는 들려주기보다 보여주기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김태훈 : 들려주기보다는 보여주기의 소설이라는 말씀은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정유정 : 영화에서는 카메라 워킹으로 볼 수밖에 없는 거고, 인물들의 정서적인 심연 이런 것들을 배우의 표정으로밖에 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소설을 쓰는 사람은 그게 아니거든요. 가령 길가에 시체가 누워있다면 들려주기 소설은 ‘저기에 시체가 누워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고’ 이렇게 진행되지만 보여주기 소설은 그게 아니죠. 그냥 독자한테 시체를 가져다 안겨주는 거죠, 그대로. 시체의 온도, 시체의 느낌, 시체를 안았을 때 본인이 느끼는 정서적인 충격, 이런 것들이요. 물론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지만, 지금 나열한 것들은 소설이 가장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죠.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는 삶을 은유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어요. 그런데 소설은 그 한계가 거의 없죠. 소설에서 그 부분의 영역까지 넓혀주면 영화에서 그걸 가져다가 그 영역까지 확장을 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해리포터> 같은 것만 봐도 그렇잖아요. 문학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 <해리포터>를 처음부터 영화 시나리오로 내 놓으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하자고 할 제작사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해요.
김태훈 : ‘문학은 결국 상상인데 상상을 넘어설 수 있는 영상 따위는 없다’고 말하시는 것 같아요. 들려주는 책이 있고 보여주는 책이 있다고 하셨는데, 영화의 예를 들면 액션과 리액션의 영화라는 게 있어요. 어떤 사람의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고, 어떤 사람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데요. 제 짧은 생각으로 파악하기에는 들려주는 소설은 마치 리액션의 영화 같아요. 시체가 하나 있다면 그 시체를 통해서 내가 갖게 되는 관념과 상념을 들려주는 소설이 될 것 같고요. 작가님의 소설은 ‘저기 시체가 하나 있다’는 걸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던져주는 액션의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유정 : 그렇죠. 독자가 생생하게 ‘내가 지금 시체를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묘사를 해서 안겨주는 거죠. 그러니까 스토리텔링 방식의 차이인 거죠. 작가는 무엇을 쓸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도 중요하거든요. 말씀드린 건 어떻게 쓸 것인가에 해당하는 부분, 스토리텔링에서 텔링에 속하는 부분인 거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Unbelievable’
김태훈 : 첫 번째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이 나왔습니다. 첫 해외 여행인데 히말라야입니다. 이전까지는 방에서 나와 본 적도 없다, 이 나라를 떠나본 적도 없다,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여권을 처음 만들어서 가신 곳이 안나푸르나군요.
정유정 : 맞아요(웃음).
김태훈 : 작가님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에 등장하는 ‘승민’의 꿈과 같은 곳이 안나푸르나이긴 합니다만, 거꾸로 물어보고 싶어요. 안나푸르나에 가보지 않으신 분이 어떤 이미지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이 안나푸르나를 가고 싶어 하는 상념을 묘사하셨는지. 그리고 작가님이 말하자면 소설의 주인공보다 늦게 도착하신 거잖아요. 그때 상반되는 이미지 혹은 현실과 상상의 이미지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정유정 : 히말라야가 신들의 땅으로 불린다고 하잖아요. 당시에는 ‘그 신들의 땅에 가서 별들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주인공을 여기로 보내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성역의 땅이고, 우리는 갈 수 없는 땅이고, 상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땅이고, 그런 곳을 실제로 갔다 온 사람은 뭔가 특별한 걸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승민’하고 안나푸르나를 엮어서, 『내 심장을 쏴라』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 우리는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어쨌든 그것을 향해서 갈 수 있는, 투지를 가진 자기 생의 전사, 그런 걸 쓰고 싶었어요.
김태훈 :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요.
정유정 : 굉장히 불안했죠. 안나푸르나를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아무리 책과 사진들을 보고 묘사한다고 해도 직접 본 것과는 다르잖아요. ‘이게 맞을까’라는 생각에 불안했는데요. 이번 여행에 가서 제가 틀리게 묘사한 건 아닌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Unbelievable, 정말 이 세계는 믿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꼭대기 고개에 올라갔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뭔지를 보여주더라고요. 외계 행성에 가면 생명체가 아무것도 없다고 하잖아요. 거기에 있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인간이 제일 지독한 생명체예요(웃음). 히말라야 꼭대기에는 풀 한 포기도 없고 새도 날지 못해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곳에 서니까 묘하게 슬프더라고요.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서니까. 왜 슬픈지는 모르겠는데 묘하게 슬픈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게 어떤 외로움에서 나오는 건지,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있으니까 외로움을 못 느낄 것 같은데 묘하게 슬프고. 그 황량한 풍경이 내려오는 길에도 수목 한계선을 돌파할 때까지 계속 이어지니까 그 감정을 쭉 느꼈던 것 같아요.
김태훈 : 사막에 갔다 온 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요. 걸어도걸어도 풀 한 포기 없는 모래밭만 펼쳐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격한 감정이 밀려오면서 펑펑 울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근원을 발견하게 되는 고독의 끝 같은 느낌이 안나푸르나에도 있었던 거군요.
정유정 : 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울컥 눈물은 났지만 펑펑 울 수가 없었던 게, 스스로 방어기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완전히 뚫린 게 산티아고예요. 산티아고 넘어서 피니스테르까지 100km를 걸으면서 그때까지도 그게 막혀 있었어요. 계속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피니스테르의 산을 대여섯 개 넘어서 꼭대기에 올라가니까 바다가 보이는데, 안나푸르나에서 터지지 못했던 게 거기에서 터진 거예요. 그동안 밑에서 끓고 있던 본성의 감정들, 옛날의 상처들, 그런 것들이 터져 나온 거죠. 비수기에 갔기 때문에 사람이 없었는데 거기에 앉아서 통곡을 하고 울었어요. 왜 그랬는지 몰라요. 슬프다는 게 아니라 오만가지 것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울었던 것 같아요. 영혼과의 싸움이라는 얘기가 바로 이런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제 자신을 완전히 오픈하는 순간, 그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안나푸르나에서 완성되었어야 할 게 결국은 산티아고에서 완성된 느낌이었어요.
김태훈 : 본인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아마도 고독과 끝까지 싸워냈던 한 사람이 자연과 동화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은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그 두 번의 여행이 작가님의 이전 작품과 앞으로 나올 작품이 변하게 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정유정 : 작가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면 아마 소설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안나푸르나를 다녀오고, 바로 산티아고로
김태훈 : 안나푸르나에 갈 때 극렬히 반대했던 남편 분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되어 있습니다(웃음). 저는 사실 너무 공감하면서 봤어요. 저는 남편 분만큼도 못 해드릴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분은 허락을 해주셨죠. 그런데 안나푸르나를 다녀오셔서 곧바로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간다고 하셨을 때 어떤 반응이셨는지 궁금해요.
정유정 : 포기했죠. ‘또?’라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는 40일이라고 했더니 기가 막혀 하면서 며칠 동안 말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했더니 ‘갔다 와. 언제는 말린다고 안 갔어?’라고 했는데요. 산티아고는 안나푸르나처럼 위험이 있는 지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단은 문명국가를 간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조금 수월하게 떠났는데 전화로 하는 말이, 안나푸르나에 있을 때는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돼서 심심함을 못 느꼈는데 제가 스페인에 가고 나니까 너무 심심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김태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분은 걱정하지 않으실까요? 아내가 집에서 나가기 시작한 출발점이 되었구나, 이런 두려움은 느끼지 않으신대요?
정유정 : 제 생각에는 숙명이라고 받아들일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이 소설 끝나고 에베레스트에 가겠다고 하면 그때쯤에는 완전 포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않을까요.
김태훈 : 아마도 작가님께서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시면, 남편 분께서 몇 날 며칠 동안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 조사를 하실 거예요(웃음).
정유정 : 성격이 그런 데가 있어요. 제가 히말라야에 간다고 했을 때에도 고산병 자료를 잔뜩 가져다 놓은 거예요. 겁먹고 가지 말라고요.
김태훈 : ‘그래도 꼭 가야만 하겠다’는 강렬한 울림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유정 : 갔다 와야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저에게 있어서 소설을 못 쓴다는 건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똑같은 건데, 그러면 이판사판인 거죠. 거기에 가서 죽으나, 여기에서 말라 죽으나. 그러니까 가야되는 거죠.
김태훈 : 결국은 육체의 죽음이냐, 정신의 죽음이냐 사이에서 정신의 죽음을 선택할 순 없다고 생각하시고 가셨다고 볼 수 있는 거군요.
생각하지 않았던 여행 에세이, 하나에 몰입하다 보면
김태훈 :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가실 때의 여러 가지 풍경들이 보입니다. 흡사 『나를 부르는 숲』의 빌 브라이슨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준비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어떤 건가요? 아무래도 동반자를 구하는 것이었을까요?
정유정 : 네, 그게 가장 어려웠고요. 김혜나 작가가 가겠다고 했을 때 정말 춤이라고 추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어려운 게 없는 거예요. 제가 한 달 동안 트래킹 준비를 하면서 지리산 노고단을 일곱 번 정도 올랐던 것 같아요. 그게 어렵지가 않는 거예요. 히말라야에 가겠다는 희망이 생기니까요. 그 희망을 갖기 전까지, 김혜나 작가가 간다고 하기 전까지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김혜나 작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한 번에 수락하더라고요. 김혜나 작가도 한계 상황에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얘기해서 의기투합해서 함께 떠났죠.
김태훈 : 히말라야에 도착했을 때 김혜나 작가는 후회하지 않던가요?(웃음)
정유정 : 후회하지 않았어요. 내려오자마자 둘이 쳐다보고 ‘우리 에베레스트 가자’라는 얘기가 거의 동시에 나왔어요. 제가 책에도 썼지만, 김혜나 작가가 순해 보이는데 승부 근성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참 야무져요. 똑 소리 나는 요즘 젊은이들 같죠. 그래서 제가 많이 의지했어요.
김태훈 : 출발하기 전까지는 책을 낼 계획이 없었다가 돌아오면서 책을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 쓸 생각이 없었는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는 건 작가적인 습관일까요, 아니면 안나푸르나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이걸 책으로 쓴다면 괜찮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일까요?
정유정 : 그건 아니고요. 가이드가 2시간 정도 걸은 후에는 20분 정도 쉬어요. 그래서 앉으면 처음 5분은 좋은데 나머지 시간은 심심해요. 그러니까 꺼내서 쓰는 거예요. 습관인 거죠. 긴 이야기를 쓰지도 않아요. 어느 지점을 지날 때 무슨 생각을 했다, 그렇게 간단히 알아볼 수 있는 메모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려와서 보니까 그 메모가 엄청 두꺼운 거예요. 그걸 보니까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죠. 그러니까 휴양도시 포카라에 와서 할 일이 없는 것을 못 견디겠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인간인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초고를 수첩에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랬더니 포카라나 카트만두에 가서 관광할 목적이 생기더라고요. 관광하고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게 싫은 거예요. 오죽했으면 김혜나 작가한테 오자마자 ‘우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갈까’ 하고 물어보려고 했어요. 그게 일주일 걸린대요. 그런데 김혜나 작가한테 욕 먹을까봐 말은 못하고(웃음) 베이스캠프에 가는 대신에 쓰기 시작한 게 이 여행기의 초고예요. 그래서 초고를 가지고 들어와서 두 달 정도 만에 썼어요.
김태훈 : 정유정 작가님은 소설을 쓰기 위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냥 관광을 하러 가는 데에는 아무런 욕망이 생기지 않는데, 그것을 쓴다는 목적을 상정하게 되면 관광이 행복해지고 의미가 있어진다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결국은 24시간 모든 것들이 글쓰기와 연관되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정유정 :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글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 미친 사람이라면 또 그럴 것 같아요. 성격 자체가 하나에 몰두해서 가는 걸 좋아하지, 푹 쉬고 휴식하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 아닌가 싶어요.
전업작가, 하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김태훈 :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남편 분도 흔쾌히 허락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직업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정유정 :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고요. 직장을 그만 둔 이유는, 말씀드렸다시피 제 성향이 뭔가를 할 때 자신을 벼랑 끝에 올려놔요. 벼랑 끝에 올려놓으면 돌아갈 수 없어요. 실패해도 돌아가지 못해요. 여기에서 승부를 봐야하는 거예요. 위험 속으로 스스로를 집어넣는 경향도 있고, 또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고통과 성취는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고통이 깊으면 성취하는 것 자체도 무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직장을 그만둘 당시에 생각했던 건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를 버려야 된다는 거였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소설을 쓰면,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 데 실패를 계속하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익숙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을 곳이 있으니까 당연히 돌아오죠. 그래서 아예 돌아올 수 없도록 잘라버린 거죠. 죽든 살든 승부를 보도록 무대를 만들어 놓은 거죠.
김태훈 : 작가님이 생각하는 전업 작가의 모습이 있을 것 같아요.
정유정 : 사실 저한테는 경제적인 부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부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남편이 꼬박꼬박 월급을 타다가 용돈을 주고 먹여살려줬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여자 작가는 전업 작가하기가 조금 유리해요. 남자는 가족까지 먹여 살려야 되는데, 여자는 남편한테 빌붙어서 용돈 타서 쓰고 책 값 타서 쓰면서 할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전업 작가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물론 글쓰기를 밥벌이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말이 틀린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일단 저는 먹여살려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다는 건 ‘하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의미였어요.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쓰지?
김태훈 : 앞서 스티븐 킹을 하느님처럼 모신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작가로서의 태도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배운 작가라면 역시 스티븐 킹일까요?
정유정 : 일단은 동경이죠. 그 분은 천재니까요. 누구나 천재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잖아요. 여기에서의 권력이란 정치적인 권력이 아니고 이를테면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가 갖고 있는 불가해한 매력 같은 거죠. 저는 그게 인간에 대한 권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스티븐 킹에게는 두 가지가 다 있는 거죠. 더군다나 그 사람의 책을 보면 완전히 교과서예요. 본인은 전혀 플롯도 짜지 않고 그냥 쓴다고 이야기하지만. 『유혹하는 글쓰기』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혔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졌어요. 서스펜스를 만드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요. 결국에는 제가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면서 스스로의 감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태훈 :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스티븐 킹의 서스펜스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나요?
정유정 : 인물과 인물의 갈등 사이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지옥이 대립하는 거예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준 거죠. 그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정서적인 심연 구조, 나는 A라고 생각하면서도 B라고 말하고 이 사람은 B라고 생각하면서도 C라고 말하는 상황들을 다 보여줘요. 밑에서 부글부글 끓이다가 어느 순간에 광기처럼 터지거든요. 인간의 본성 자체를 재료로 삼으면서 관계를 통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대부분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 자기 안의 악마로 해야 될까요, 그것과 싸우는 경우가 많아요.
정유정 : 『미저리』 같은 경우에도 ‘애니’와 ‘폴’이 싸우기는 하지만 결국엔 자기 안에 있는 작가로서의 자존심, 다시는 글을 못 쓸 수 있다는 공포와 싸우는 부분에도 굉장히 많이 할애하고 있거든요. 처음에 나오는 바다 속 말뚝 이야기도 굉장히 상징적이거든요. 저는 『미저리』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1990년대에 처음으로 『미저리』를 읽었을 때 절판이 돼서 겨우 구했는데, 읽으면서 숨을 못 쉬었어요.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니까 너무너무 쓸쓸한 거예요. 삶이라는 게 이렇게 쓸쓸할 수가 없고, 인간이 이렇게 슬픈 존재이고. 삶의 폭력성, 인간 존재의 나약함, 잔인함.. 그러니까 인간이 굉장히 복합적인 존재인 거예요. 인간의 본성은 영원한 재료인 것 같아요.
제가 스티븐 킹의 작품 중에서 제일 먼저 꼽는 게 『미저리』와 『스탠 바이 미』거든요. 『스탠 바이 미』는 제가 스티븐 킹에 입문하게 된 소설이었고요, 좋아하는 소설은 『미저리』예요. 그리고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라는 연작 소설이 있는데 그 작품은 순문학에 가까워요. 굉장히 사변적인 소설이면서 이야기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요. 스티븐 킹을 보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쓰지?’ 싶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별 짓을 다해도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거죠. 제 생각에 스티븐 킹이 후세에 평가된다면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로 평가받을 것 같아요.
인생에서 목숨 걸고 할 수 있는 게 있는 건, 행운
김태훈 : 작품을 구상하실 때는 어떤 일들을 주로 하시나요? 글쓰기 외의 취미가 있다면?
정유정 : 운동하죠. 복싱해요.
김태훈 : 얼마나 하셨어요? 저도 3년 정도 했거든요.
정유정 : 7년 정도 됐어요.
김태훈 : 선배님이시네요(웃음). 복싱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뭘까요?
정유정 : 복싱의 매력은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지칠 때까지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이건 굉장히 세속적인 얘긴데, 스파링을 하면 제가 남자와 하게 되는데요. 원칙적으로 남자 파트너는 때릴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저는 마음대로 때릴 수 있죠(웃음). 그게 제일 큰 매력이에요.
김태훈 : 예전부터 공격적인 것들을 좋아하셨어요?
정유정 : 제 성격이 그런가 봐요. 저는 스스로가 고상하고 우아하고 차분하고 여성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히말라야에 다녀와서 깨달은 게, 본성이 싸움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김태훈 : 안나푸르나에 올라가실 때, 산티아고를 걸을 때, 그리고 샌드백을 칠 때 스스로 ‘나는 왜 여기에서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백 번 하게 되잖아요. 거기에 대한 답은 찾아내셨어요?
정유정 : 그냥 내가 원하니까.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게 가장 큰 거죠.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아무 목적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거죠.
김태훈 : 결국은 고행에 가까운 수련, 수도라고 해야겠죠. 샌드백을 친다는 것도 일종의 수도의 느낌이 있잖아요. 끊임없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라는 건데, 그 느낌이 좋다고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정유정 : 네, 그렇죠. 복싱의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이긴 하지만 목숨을 거는 건 아니에요. 나는 복싱 선수가 아니니까요. 만약 복싱을 선수로 선택했다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할 거예요. 챔피언이 되든 안 되든. 하지만 저한테 복싱은 좋아는 하지만 목숨 거는 분야는 아닌 거죠. 그런데 인생에서 목숨 걸고 할 수 있는 게 하나쯤 있다는 건 행운이고요, 그걸 놓쳐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태훈 : 한 인간이 아닌 작가로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참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보는 현재의 우리의 세상에서 가장 암울한 부분과 가장 희망적인 부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정유정 : 가장 암울한 부분은 폭력이에요. 언어적인 폭력, 국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폭력 등 모든 폭력성이요. 가끔씩 제가 ‘최후에 남는 인류는 아마 사이코패스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종만 살아남을 것 같아요. 너무나 폭력들이 점점 더 첨예해지고 비열해지는 걸 보면서 참 암울해요. 그래서 제가 이런 소설들을 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요. 다른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도 그렇죠. 다른 동물들은 이렇게 폭력적이지 않아요. 배고프니까 잡아서 먹는 것이지 재미로 죽이지도 않고 이데올로기나 경제논리에 의해서 죽이지도 않아요. 어떤 생물이 인간처럼 다른 생명체를 죽일 수가 있겠어요. 그 모든 폭력성 자체가 굉장히 암울하고요.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또 다른 생명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짐승도 인간밖에 없어요. 그 부분에 있어서 희망을 갖고 있죠.
내가 원하는 걸 아는 삶이 중요
김태훈 : 대학에 가서 특강을 하다보면 젊은 친구들에게서 공통의 질문을 받습니다. 그 질문이 참 아프고 힘들죠.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이거든요. 성공에 대해 말하는 멘토들은 많은데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 말해주는 진정한 멘토는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인생의 선배로서 독자들이나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정유정 :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인데요(웃음). 같은 문제라도 각자의 성격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이잖아요. ‘애니어그램’을 보면 아홉 가지 성격 유형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그 중에서 성취형 인간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요. 그런데 사람의 목적은 다 달라요. 자기 계발서나 스펙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아는 거예요.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야만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던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오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어차피 삶이라는 게 한 번 사는 거지 두 번 사는 건 아닌데,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과연 내가 원하는 게 뭘까’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원한다는 건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깔려있는 것인데, 그걸 알아야 거기를 향해서 자신을 온전해 태울 수 있거든요. 그런 삶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후회가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선택한 걸 누구를 탓하겠어요.
김태훈 : 후배들한테 어떤 질문을 많이 받으세요?
정유정 : 작가로서 6년 정도 무명을 지내면서 11번 공모에 떨어졌을 때 어떤 힘으로 이겨냈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 있어요. 저는 그럴 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요. 제가 패배주의에 젖어 있고 힘들었을 때, 스스로에게 ‘너는 작가가 되고 싶냐, 글을 쓰고 싶냐’고 질문을 던졌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건 직업에 대한 이야기예요.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나의 자유 의지, 욕망에 대한 얘기고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는 글을 쓰고 싶어’로 나오면 거기에서 왜 쓰고 싶은지가 나오는 거거든요. 글을 쓰고 싶다면 작가로 성공을 하든 못 하든 글을 써야 되는 사람이에요. 작가가 되어서 성공하고 돈도 벌고 싶다면 작가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해도 잘할 수 있어요. 작가는 그냥 직업인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게 직업인지 자유 의지인지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묻는 수밖에 없어요. 우리 교육이 아이들의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거세해버린 측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자기 인생이니까.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 것보다 우선해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나’ 생각하다보면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고요. 그 노력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태훈 : 작가님도 벽에 부딪혔을 때 ‘여행을 떠나라’는 누군가의 충고에 의해서 떠난 여행이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되었잖아요.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 홀로 있으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라고 받아들이면 되겠군요.
정유정 : 네. 허세나 가식을 다 걷어버리고, 때로는 자기 자아도 자신을 속이잖아요, 그런 걸 다 걷어버리고 진짜 나를 들여다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걸 일찌감치 알 수 있으면 행운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 만약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그건 진짜 원하는 게 아니에요. ‘왜’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나오는 것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걸 찾을 때까지 고민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는 거죠. 삶이라는 것이 길고 긴데 젊은 시절의 어느 기간 동안 그걸 고민한다고 해서 결코 소모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인생의 가장 큰 밑천이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유정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후에도 30분가량이 더 이어졌다.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채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의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스튜디오를 나서는 작가 정유정을 쳐다보며, 그녀의 소설과 그녀의 여행이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을 받았다.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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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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