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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에게 좋은 사람은?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선물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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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짧은 이야기를 모은 소설집이다. 단편집이라고는 하기가 모호한 게, 보통의 단편보다도 짧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이현은 이번 소설집이 최초로 다른 사람을 위해 쓴 책이라고 밝힌다.

정이현

 

5월 16일 마음산책이 주관하고 예스24와 KT&G 상상유니브가 후원한 상상북토크가 열렸다. 상상북토크는 매달 문화계 인사를 초대해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번 주인공은 『말하자면 좋은 사람』을 낸 정이현 작가. 행사 진행은 허희 평론가가 맡았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우선 분량이 짧은 이야기로 모아졌다. 단편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원고지 80~100매 분량의 단편보다 훨씬 짧은 20~30매 분량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백두리 화가의 그림이 더해졌다. 형식 면에서 다소 변화를 줬으나, 정이현 작가 특유의 문체는 여전하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문장. 그날의 이야기를 복원해본다.

 

허희가 묻고 정이현이 답하다


정이현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나온 지 3주 정도 됐다. 책 나오고 나서 굉장히 힘들게 단편 한 편을 마감했다. 지금이 계간지 마감철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교정 봤다. 그리고 <낭만서점> 녹음했다. 정신을 빼놓고 사는 듯, 지내고 있다. 책이 나오고 나서는 의도적으로 바쁘게 지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더라.

 

1분, 1초를 아끼는데. 그런데 소설을 쓰려면 ‘뭉텅이 시간’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여건상 뭉텅이 시간이 정말 없다. 오전 시간에 아이를 보낸 뒤에 9시에 출근한다.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는 가능하면 소설을 쓰거나 다른 글을 쓴다. 밤에도 작업한다. 매일 밤마다 밤새거나 하지는 못하고 2~3일에 한 번은 아주 늦게 잔다. 많은 작가가 이틀에 한 번은 밤을 새우더라. (웃음)

 

글 쓸 때 작가로서의 자아는 일상의 자아와 다를 것 같다.

 

등단 초기에는 일상의 자아와 소설 쓰는 자아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작품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그랬다. 사회학을 전공해서인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쓰고 싶었다. 나, 주변인을 넣지 않고 사회적으로 무엇인가를 대변하는 인물을 넣어야겠다고 의식했다. 그러다 경계가 많이 흐려지더라. 일상인으로 천착하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아 있고, 인물이 등장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을 예로 들면, 11편 짧은 소설인데 이중에 내가 들어 있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특이하다. 콩트, 쇼트 스토리 명칭이야 어쨌건 분량이 짧다. 형식에 제한이 있으면 작법도 달라질 텐데, 쓰면서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한동안 한국문단에서 콩트는 맥이 끊겼다. 아무래도 발표 지문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묶어야겠다는 의식 없이 써 오다 쓰면서 형식을 고민했다. 떠올린 작가는 O.헨리였다. 짧은 이야기라 플롯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플롯이 더 단선적이다. 인물, 사건도 다양하진 않지만 하나로 수렴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마다 반전은 아니지만 열쇠고리라고 할 만한 장치를 넣었다. 잘못하면 밋밋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촌철살인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핵심적인 이야기는 있어야 한다. 거창한 만찬은 아니지만 친구와 오후에 만나서 커피 마시고 케익 먹는 짧은 2시간이 굉장히 인상적일 수 있지 않나. 한정식 코스보다도.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편이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에 관해서를 길게 쓴다면, 쇼트 스토리는 그것을 아스피린 하나로 보여준다.

 

선물 같은 책이라고 말했는데, 분위기가 민감한 시기에 책이 나왔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봄인데 봄 같지 않다. 책이 나와서 설레고 들떠야 하는데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속상하고. 할 말이 정말 많다. 그런데. 만약에 이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이었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지금 나온 책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있는 사람을 위로하려고 쓴 책이다. 세상에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낸 책이다.

 

제목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정이현에게 좋은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말하자면 좋은 사람, 말하자면 재수 없는 사람, 말하자면 싫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 면이 있고,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좋은’처럼 여러 가지 형용사가 붙을 수 있다. 형용사가 주관적이지 않나. 나에게 좋은 사람은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다. 반대로 결정적으로 한 방은 참아도 되는데 굳이 앞에서 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힘들다. 싫은 사람은 있다. 뒤끝 없다고 하는 사람. 뒤끝 없다는 사람 치고 뒤끝 없는 사람 못 봤다.

 

보통은 혼자 있으면 고독하고 쓸쓸해서 누군가 만나려고 하는데, 정이현 작가는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지 않나. 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가?

 

글쓰는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자기 시간이 필요하다. 예민해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더더욱 예민해질 수 없다. 풀어진다. 작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뾰족하고 날카롭고 예민한 시간이 필요하다. 밥도 불편한 사람과 먹는 것보다는 혼자 먹는 게 훨씬 좋다. 많은 경우에 혼자 있는 걸 잘 못하는 분들이 계신데. 특히 사랑할 때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주말에 혼자 있을 때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누군가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잘 사귀어 놓아야 한다. 가장 오래 갈 친구는 자기다.  사회적으로 ‘혼자 있기’ 이런 운동을 왜 하지 않는지 의아해 할 때도 있다. 여자들에게 특히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남자들이 더 외로움 타더라.

 
수록 작품 중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사연이 있나.

 

내 문장이 복잡하지 않지만 글 쓰는 데 오래 걸린다. 원고지 10매를 쓰려면 하루 7시간씩 쓰기도 한다. 그런데 「또다시 크리스마스」는 금방 썼다. 그래서 일단 고맙다. 크리스마스 캐럴, <울면 안 돼>를 들으면서 썼다. 번역한 가사인지 모르겠는데, 누가 이렇게 험악한 가사를 썼지, 하며 썼다. 결국 선물 못 받는 아이는 울어서 못 받았다고 생각할 노래 아닌가. 어린 시절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한 기억도 떠올렸다. 스케이트를 받고 싶었지만, 학용품 세트를 받았던 그런 기억.
 

정이현


독자는 궁금했다!

 

사람을 대하는 시선이 궁금하다. 애정이 드러나면서 서늘한데, 이중적인 태도는 무엇인가?

 

애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예로 들면, 결혼식 끝나는 장면으로 끝나면 그 삶과 생명을 기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 그렇게 행복한 순간, 멋진 순간에서 정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순간이 다가온다. 인물을 따뜻하게만 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국 인물에도 투영된다. 내가 세상을 마냥 사랑스럽게만 바라보진 않나 보다. 반대로 참혹한 순간만이 계속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힘들지 않나? 소설가로서 어떤가.

 

그렇게 여긴 적도 있지만 오만한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건 행운이다. 아직 소설가, 작가라고 쓰는 게 민망하다. 집 가, 일가를 이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 쓰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직업으로 소설가라고 말할 때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 노력한다. 그럼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한데 반나절 정도 도망간다. 전화기 꺼 놓기도 하고. 하지만 나 혼자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내가 원고를 안 드리면 편집자가 6시에 퇴근하지 못한다. 인쇄 작업도 늦어지고. 이런 뒷일을 걱정하게 된다. 책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다.

 

정이현이 쓴 글이 대학 과목에서 교재로 쓰는 걸 알고 있나? 기분이 어떤가.


『낭만적 사랑과 사회』 요즘에는 쓰이는지 모르지만 2000년대 중반까진 ‘문학과 성’, 이런 강좌에서 많이 쓰였다. 여학생과 복학생 간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고 들었다. 특히 된장녀 유행했을 때. 교재로 쓰이길 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교재로 안 쓰였으면 좋겠다. 그나마 대학 교재는 괜찮은데. 「소녀시대」가 창비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은 다행히 빠졌다. 전문을 찾아 읽고 항의가 오기도 했다. 아빠가 스무살 여성을 임신시키고, 낙태비를 벌려는 딸의 이야기로 그리 교육적이지 않은 내용이니. 교과서에 실릴 줄 알았으면 더 교훈적으로 썼겠지. (웃음)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막막해진다. 아침까지 소설을 쓰고 온 사람에게 다음 작품을 물으니... (웃음) 올해 더는 책 안 나올 거고. 소박한 계획이 있다. 예정한 건 아니지만 1년에 1권씩 내왔다. 근래 들어서는 반성한다. 좀 자유로워지자는 생각을 했다. 

 

 


[관련 기사]

정이현 “’안녕, 내 모든 것’은 90년대에 전하는 안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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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좋은 사람 정이현 저 | 마음산책
도시 생활자의 삶과 고민을 감각적이고 날렵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 정이현의 짧은 소설을 한 권에 담았다. 단편보다도 짧은, 그래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읽기 편하되 압축적이고 밀도 있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짧은 소설은 거듭 곱씹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등단 초기에 발표한 작품부터 교보문고 북뉴스에 연재해 큰 인기를 모은 최근 작품까지 모두 11편을 묶은 이 책은 작가가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고 다듬어 이음새가 단단한 책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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