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별다른 이득은 없지만, 매력적이다
고양이는 아기와 비슷하다. 도움은 안 되고 에너지만 흡수하는 존재. 그나마 아기는 자라서 어른이 되지만 고양이는 평생 그 상태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기도 고양이도 순수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고양이와의 동거, 비용대비 효과로 최악의 선택?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별다른 이득이 없다. 비용대비 효과로는 최악의 선택이다. 고양이들의 행동을 보자면 인간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기로 비밀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고양이는 집을 지켜주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온갖 곳으로 끼어들어가 숨기 바쁘다. 가끔은 제 덩치에 버거운 곳에 기어들어가서는 나오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낯선 이의 방문이 끝난 후에 비집고 기어들어간 침대 밑에서 제 힘으로 나오지 못하는 뚱땡이 삼돌이를 끄집어낸 적이 두어 번 있다. 고양이가 집을 지켜? 바랄 것을 바라시라.
게다가 고양이는 휴식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고양이는 인간의 피로나 수면 욕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언제나 울어대며, 그럼에도 응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끼는 물건을 파괴하겠다는 등의 협박도 서슴없이 해댄다. 방법도 다양하다. 긁거나 넘어뜨리거나 토하거나……. 휴식? 꿈 깨시라. 고양이와 살면 스트레스만 늘어난다.
고양이는 인간이 부를 때는 오지 않고, 오지 말았으면 할 때는 다가온다. 주로 고양이가 눈앞에서 알짱거릴 때는 인간이 바쁘게 원고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빨래를 개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청소를 할 때다. 그런 순간에 키보드 위에 눕거나 종이를 깔고 앉거나 혹은 그 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펜을 사냥하거나 뽀송뽀송하게 건조된 옷 위에 누워 털을 묻히거나 실과 바늘을 쳐서 날려 보내거나 청소 중인 걸레나 빗자루를 온몸으로 막아대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뿐, 고양이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아! 물론 고양이는 쥐를 잡기는 한다. 나도 그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은 쥐를 보면 도망칠 것이 분명하다. 이 녀석들은 심지어 바퀴벌레조차 잡지 못한다. 그 정도 크기의 움직이는 물체는 피하거나 외면한다.
그 어떤 쓸모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순수한 사랑을 받는다
고양이는 자신이 제공하는 불편함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양이와 유용함은 이 우주에서 가장 관계가 없는 두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다. 심지어 우리 부부가 삼돌이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 것처럼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한 고양이일수록 더 좋아하는 경향마저 있다. 냉정한 심리학자라면 ‘인지부조화’로 설명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과잉정당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덕분에 확실해지는 것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감정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향한 모든 매혹과 경탄은 순수하다. 우리가 도취되는 것은 고양이의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고양이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유연함과 힘 그 자체이며, 고양이의 따스함과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그 어디에도 실용적인 기대나 만족은 없다. 순수함은 그것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의 결핍을 의미한다.
고양이에게 어떤 쓸모가 있었다면,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양이 자체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고양이의 그 기능 때문이라고 설명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잉정당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 어떤 쓸모도 거부함으로써 인간에게 과잉정당화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다.
우리도 고양이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적이 있다
순수한 존재, 우리는 그 앞에서 진짜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실용성의 가치로 평가할 수 없는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100퍼센트 순수한 진실을. 입장을 바꾸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이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있을 때, 당신의 주변은 순수함으로 가득 찰 수 있다고. 순수한 멸시, 순수한 조롱, 순수한 증오, 그리고 순수한 존중과 순수한 사랑……. 그때는 그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 당신이 상대방의 진심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무언가 하나씩 쓸모와 기능과 능력이 채워지면서 당신은 주변의 순수함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아니라 내 돈 을 사랑하는 사람, 내가 아니라 내 지위를 질투하는 사람, 내가 아니라 내 역할을 미워하는 사람, 내가 아니라 내 능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점점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
순수함의 결핍에 지쳤을 때, 주변에 대해 믿음보다는 의심만이 남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가 꿈꾸는 것은 어린아이 시절이다. 인간이 가장 무능하고 쓸모없고 오로지 주변에 폐만 끼치던 그 시절, 바로 모든 것이 순수하던 시절이다. 순수한 무능은 순수한 믿음과 연결되고, 순수한 기능은 반대로 순수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고양이는 아기와 비슷하다. 도움은 안 되고 에너지만 흡수하는 존재. 그나마 아기는 자라서 어른이 되지만 고양이는 평생 그 상태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기도 고양이도 순수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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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사는 젊은 심리학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게임·드라마 등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일러스트레이터, 16년차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다. 아침형 삶, 집단주의, 복잡한 대인관계를 멀리하는 그는 코치이자 매니저인 아내와 이 책의 주인공인 무심한 고양이 소니, 똘똘이, 삼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
<장근영> 저11,700원(10% + 5%)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는 심리학자가 세 고양이와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고양이와 현대인의 다르고 또 같은 심리를 대조하며 유머와 감동, 위로를 전하는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심리 에세이’다. 저자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카툰을 직접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