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고양이는 완전 깬다!
허위합의 효과
고양이 애호 유행의 한복판에서는 오히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고양이스러운 태도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그걸 굳이 숨기지 않을수록, 그럼으로써 주변의 불편한 반응을 경험했을수록, 역설적으로 당신은 고양이와 비슷한 존재이고, 따라서 고양이와 공감할 여지가 있는 셈이니까.
어머, 난 네가 그런 앤 줄 정말 몰랐어
고양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환영받지는 못하는 동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책이나 웹툰이 늘어나고, SNS에는 자신과 동거하는 양이의 사진을 올려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고양이 애호의 심리는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고양이가 주는 것보다는 고양이가 깨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오해하지 마시라. 대개의 고양이들은 조심스러운 포식자의 습성을 체화했기에 물건들을 좀처럼 쓰러트리거나 깨뜨리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깨는 건 물건이 아니라 자신 이외의 존재들에 대한 우리 인간의 멍청한 ‘기대’들이다.
우리는 종종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다름의 깊이와 폭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란다.
“어머, 난 네가 그런 앤 줄 몰랐어!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정말 실망이야!”
따지고 보면 사실상 잘못한 쪽은 당신이다. 상대를 잘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도 당신이고, 그 착각을 바탕으로 막연한 기대를 쌓아올린 것도 당신이며,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화를 내고는 어리둥절해져 있는 상대에게서 등을 돌린 것 또한 당신이 아닌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여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실수를 허위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부른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믿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까지는 좋다. 생각이야 자유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그의 생각을 고치려 든다.
“짜장면보다 짬뽕이 좋다고? 저런, 짜장면의 참맛을 모르는구나…….”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하지만 상대가 저항하면 강제하려 든다. 그러다가 마침내 호의가 분노로, 선의가 악담으로 변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혹은 끝까지 가거나 판가름이 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를 안전하게 감싸주던 허위합의 효과의 허상에서 벗어나 진짜 나와 다른 상대를 직면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그래서 계속 허위합의를 믿고 산다.
나는 너와 달라. 그래서 뭐, 그러면 안 돼?
하지만 고양이는 이 환상을 대놓고 깨버리는 돌직구의 명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좋아할 거라 믿고 사온 온갖 장난감들은 무시하고 오히려 그 장난감을 포장했던 상자를 환영한다거나, 안아주고 싶어 할 때는 외면하다가 피곤해서 잠 좀 자려고 하면 부비적거리거나, 일을 하려 하면 반드시 방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개와는 전혀 다르다. 대개의 개들은 주인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주인이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좋아하고 주인이 싫어하면 즉시 싫어한다. 그러니까 개는 허위합의 환상의 화신 같은 존재다. 하지만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 앞에서는 허위합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해진다. 고양이가 사람을 응시하는 눈빛 속에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이질감이 존재한다. 개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눈빛이라면 고양이는 “나는 너와 달라. 그래서 뭐,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듯하다. 요컨대, 고양이는 같이 사는 이에게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다(혹은 뻔뻔하다).
고양이들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자기 고집대로 꿋꿋하게 살아왔다. 바로 그게 고양이의 매력이다. 우리는 그런 고양이와 살면서 서로 달라도 친해지는 법, 이해 못 해도 공감하는 법, 동의하지 않고서 함께 시작한 시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싶다면, 고양이와 사귀어보라
그러니까, 고양이 애호 유행의 한복판에서는 오히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고양이스러운 태도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그걸 굳이 숨기지 않을수록, 그럼으로써 주변의 불편한 반응을 경험했을수록, 역설적으로 당신은 고양이와 비슷한 존재이고, 따라서 고양이와 공감할 여지가 있는 셈이니까. 반면, 그런 사람 앞에서 “아니 어떻게 고양이를 싫어할 수 있어”라며 따지려 든다면 당신은 충분히 고양이에게 익숙해지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허위합의의 환상에서 벗어나 다름을 제대로 인정하고 싶다면, 고양이와 사귀어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인간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고양이인 셈이니까.
그렇다고 자신의 고양이 혐오를 자랑스레 드러낼 필요는 없다. 인간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황금률이 있다면 그건 ‘그가 공감하는 대상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가 혐오하는 대상은 적을수록 좀 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원칙이다. 물론 나 역시도 고양이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1998년 이전까지는.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그 이후로 오랫동안 고양이들과 지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는 1998년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기 는 법, 이해 못 해도 공감하는 법, 동의하지 않고서 함께 시작한 시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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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장근영,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고양이
혼자서 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사는 젊은 심리학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게임·드라마 등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일러스트레이터, 16년차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다. 아침형 삶, 집단주의, 복잡한 대인관계를 멀리하는 그는 코치이자 매니저인 아내와 이 책의 주인공인 무심한 고양이 소니, 똘똘이, 삼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
<장근영> 저11,700원(10% + 5%)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는 심리학자가 세 고양이와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고양이와 현대인의 다르고 또 같은 심리를 대조하며 유머와 감동, 위로를 전하는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심리 에세이’다. 저자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카툰을 직접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