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똑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은 고양이도 없다
성격도 제각각인 우리집 고양이 세 마리
고양이는 전부 다르다. 이 세상에 똑같은 고양이는 하나도 없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감과 천하태평 그 자체인 똘똘이
우리 집 세 마리 고양이들은 그 성격도 제각각이다. 모두 한국 토종의 짧은 털 고양이들이지만 성격은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
똘똘이는 자신감과 천하태평 그 자체다. 녀석은 내가 혼을 내면 도망갔다가 금방 애앵거리면서 친한 척한다. 그럴 때 보면 “아까 왜 그랬어? 우리 여전히 친한 거 맞지”라고 확인하는 거 같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이 녀석은 야단맞은 직후가 가장 환대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도 모른다.
소니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피곤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아내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그 배경에는 처음 기른 고양이라 버릇 들인다고 내가 너무 심하게 야단친 데다, 고양이답지 않게 냉장고에서 뛰어내리다가 골절을 당하는 등의 씁쓸한 과거가 있긴 하다. 그러면서도 집안의 대소사에는 늘 신경을 쓴다. 삼돌이에게는 늘 손해를 보면서도 끝까지 맞서려고 한다. 그 결과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동물의 왕국(중국말로 하면 용쟁호투쯤 되려나) 장면의 주인공은 주로 소니와 삼돌이가 된다.
삼돌이는 무지막지하다
반면, 삼돌이는 무신경에 무지막지하다. 세 마리 중에서 아마 가장 전투력이 높을 것이다. 소니랑 몇 초 싸우고 난 뒤에 보면 바닥에 소니의 털이 80퍼센트, 녀석의 털이 20퍼센트 비율로 떨어져 있다. 어떤 날에는 소니 털만 수북이 쌓여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여전히 삼돌이와 마주치기만 하면 ‘으와앙’이다. 가끔은 똘똘이와 소니 이 두 녀석이 아주 오랫동안 겉보기에만 친근한 상태를 유지했었는데, 그때는 옆에 삼돌이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에는 똘똘이와 소니 사이에 공동의 적을 만났을 때 생기는 진정한 유대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밥 먹으러 왔는데 그릇에 사료가 없을 때 소니와 똘똘이는 큰 소리로 집사를 부른다. 삼돌이는 그냥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누군가 거실에 나오면 빈 밥그릇 앞으로 자박자박 걸어가서 빈 그릇과 사람을 교대로 쳐다본다. 그런가 하면 화장실 쓸 때를 보면, 소니는 어릴 때 모래를 쓰지 않고 키워서 지금도 배변패드를 쓴다. 화장실에 깔린 배변패드를 팍팍 긁은 다음에 졸졸졸……. 똘똘이는 오줌을 눌 때는 그냥 모래를 파고 누지만 똥이 마려울 때는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다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삼돌이는 언제 화장실을 쓰는지 모르게 조용히 볼일을 본다. 하지만 삼돌이의 똥은 냄새가 진해서 싸자마자 금방 알게 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스타일의 소니
소니와 똘똘이는 캔 사료는 절대 안 먹는 반면, 삼돌이는 캔 사료를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 캔이나 좋아하는 건 아니고 나름대로 선호하는 특정 브랜드가 있다. 매일 한 캔씩 먹는다. 그 외에 소니는 삶은 닭고기, 구운 생선, 스테이크나 구운 삼겹살도 먹는다. 똘똘이는 구운 생선과 회를 먹는데, 특히 연어 회를 좋아한다. 찌거나 구운 고구마는 소니와 똘똘이 모두 좋아한다. 삼돌이는 사람 음식은 안 먹고 캔 사료만 먹는다. 세 녀석 다 좋아하는 먹을거리는 캣그라스(귀리 싹 틔운 것), 그리고 건사료이다.
소니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스타일이다. 쓰다듬어 달라고 앵앵거리면서도 동시에 자기 몸에 손대지 말라고 화를 낸다. 두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햄릿 같다.
똘똘이는 제사장 같다. 형식과 절차를 중시한다. 물론 그 절차는 주기적으로 바뀐다. 내 무릎에 올라와 앉을 때도 우선 멀리서부터 앵앵거리며 나를 본다. 내가 오라고 손짓을 여러 번 한 다음에야 무릎에 올라와 앉는다. 이 순서가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최근에는 잘 때 꼭 내 다리 사이에 자리하고 잔다. 그것도 내가 침대에 눕기 전에는 나와 아내의 베개 사이에서 자다가 내가 누우면 다리 사이로 자리를 옮긴다.
삼돌이는 무던하다. 아무 때나 사람이 근처에만 가도 고르릉 대고 온몸을 뒤틀며 기분 좋음을 표현한다. 물론 기분이 아주 좋아진 다음에는 손을 물기도 한다. 원하는 곳을 쓰다듬지 않고 다른 곳을 만지고 있으면 발톱을 내어 내 손을 찍어서 쓰다듬기를 원하는 곳으로 끌어당기기도 한다.
소니의 표정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 같다. 그것도 3편쯤의 모진 고생에 처량 맞아진 슬픈 표정이다. 똘똘이는 <백귀야행>에 나오는 아오아라시 같다. 단, 아오아라시와는 달리 시끄럽다. 삼돌이는 <식스센스>의 주인공콜(할리 조엘 오스먼트) 같다. 어린 게 너무 많은 고생을 해서 그런 건지, 사실 그 머릿속에 생각은 하나도 없겠지만 눈빛만 보면 무척 생각이 많아 보인다.
고양이는 전부 다르다. 이 세상에 똑같은 고양이는 하나도 없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추천 기사]
-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 고양이는 완전 깬다!
- 미션, 고양이 발톱 깎기!
- 이용한 “고양이의 세계를 존중해주는 나라도 있다”
관련태그: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고양이, 고양이기르기, 장근영
혼자서 하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사는 젊은 심리학자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게임·드라마 등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일러스트레이터, 16년차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다. 아침형 삶, 집단주의, 복잡한 대인관계를 멀리하는 그는 코치이자 매니저인 아내와 이 책의 주인공인 무심한 고양이 소니, 똘똘이, 삼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
<장근영> 저11,700원(10% + 5%)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는 심리학자가 세 고양이와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고양이와 현대인의 다르고 또 같은 심리를 대조하며 유머와 감동, 위로를 전하는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심리 에세이’다. 저자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카툰을 직접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