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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좋은 친구들>

빛이 나는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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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위대한 작품에 보낸 찬사는 사실 채 떠오르지 않은 기시감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작가의 생에 걸친 비밀스러운 레퍼런스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찬양은 사실 작가의 환상적이고 적절한 조합에 보내는 박수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래, 그 이전에도 이만큼 명석한 자가 없었으며, 그 이후에도 이만큼 명석한 자가 없을 거라고 불린 솔로몬은 말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매일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실로 허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의 심정을 처절히 짓이겨줄 심산인지, 그는 이 말이 담겨 있는 구약 성서 <전도서> 1장 1절을 이렇게 시작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아, 이 글 역시 헛되고, 삶 역시 헛되고, 독서 역시 헛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헛된 진일보와 헛된 퇴보를 반복하는 것이 역사이고, 헛된 실수와 헛된 성공 속에서 울음과 웃음을 쌓아가는 것이 바로 생이다. 어찌됐든 그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한 텍스트의 전문은 이렇다.

 

 “이미 있었던 것이 나중에 다시 있을 것이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할지라.

  해 아래 새 것이 없으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자, 그렇다면 과연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란 있을 수 없으며, 완벽히 새로운 표현도 불가능하며, 온전히 새로운 영화도 태어날 수 없단 말인가?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렇다.’ 나는 인간의 영역에서 순전하고 무흠한 것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우주의 만물에 기대고, 그것을 소비하고, 고작 궁리해봤자 기존의 결과물을 비틀어 생산해내는 생물이다. 예술에 적용해보자면, 우리가 위대한 작품에 보낸 찬사는 사실 채 떠오르지 않은 기시감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작가의 생에 걸친 비밀스러운 레퍼런스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찬양은 사실 작가의 환상적이고 적절한 조합에 보내는 박수다.

 

좋은친구들2.jpg

 영화 <좋은 친구들> 스틸컷

 

관객들은 영화 <좋은 친구들>을 보며 기시감을 자주 느낄 것이다. 제목은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Good Fellas>의 번역 제목인 ‘좋은 친구들’이고, 설정은 <악마가 당신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 사용된 바 있는 ‘합의된 범죄의 실패가 야기한 어머니의 죽음’이다. 이로 인해 주인공이 속한 공동체는 해체된다. 오해가 파국을 부르는 이 서사는 자궁으로 삼고 있는 작품의 출발과 진행, 나아가 결말까지 유사하게 겹쳐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유형의 영화(즉, 남자 주인공끼리의 이해와 오해가 우정과 불신 사이를 오가는 영화)가 보여준 구도가 그래왔듯, 이 영화 역시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첩혈가두, 영웅본색, 굿 펠라스 등등). 게다가, 영화는 <칼리토>에서 보여준바 있는, 즉 욕망을 간직한 남자가 생의 반전을 위해 도피를 눈앞에 둔 순간에 맞는 비극을 다시 한 번 재현한다. 이때껏 그래왔듯, 죽음이 대기하는 장소는 역시 기차역, 터미널, 혹은 공항이다. 그리고 이 죽음의 실행자들은 ‘하찮게 보였던’, 그렇기에 영화의 초중반에 스쳐지나갔던 인물이다.

 

이 보잘 것 없는 하수인은 <칼리토>에서의 베니(존 레귀자모)가 그러했고, 칼리토의 정서가 이식된 <달콤한 인생>의 황정민 역시 그러했고(황정민은, <칼리토>에 등장한 베니에게 정서적 부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헤어스타일마저 같다. 줄무늬 양복마저도), <게임의 법칙>에서 박중훈의 생을 종결시킨 이름 없는 소년마저 그러했다. 주인공은 언제나 손만 뻗치면 닿을 거리에 성공과 탈출을 두고 있고, ‘자, 이제 이곳을 떠나야지’하는 회한으로 한 번 뒤돌아 볼 때, 배경에 불과했던 인물의 표독한 웃음을 마주하게 된다. 당황한 관객만큼이나 허탈하고 허무한 표정으로그는 자신의 마지막 얼굴을 관객의 가슴에 새기고, 사라진다. 이때의 차이점이라면, 해결도구가 총이냐, 칼이냐 하는 것뿐.

 

그 외에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기시감의 흔적은 수없이 많다. 심지어 의상마저도 이러한 영화 - 이번엔, 욕망을 품은 남자의 몰락을 다룬 영화 - 에 많이 쓰인 것이다. 미시적이긴 하지만, 나름의 톡톡한 효과를 거두는 복잡한 문양의 얇은 갈색 넥타이는 영화 <월 스트리트><범죄와의 전쟁>, <제리 맥과이어> 등에 효율적으로 쓰여 왔다.

 

어째서 <좋은 친구들>과 다른 영화들의 교집합에 대해 이렇게 길게 썼느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거의 완벽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완전히 창조된 세상에 태어났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우리에게 부여된 권한은 세상의 피조물에 겨우 ‘이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즉, 인간은 고작 말을 만들어내는 존재인 것이다. 나 역시 이 지면에서 고작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존에 있었던 것을 가장 적절하게,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우아하게, 혹은 가장 요동치게 ‘배열하고, 조합하고, 비트는 것’이다. 메가 트렌드』의 저자 나이스빗은 말한다.

 

 “변화는 대부분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솔로몬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 5천 년 전이다. 이미 5천 년 전에 새로운 것이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기에 창조란 언제나 새로운 반복일 뿐이다. 영화 <좋은 친구들>은 새로운 반복을 훌륭히 해냈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의 주지훈은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 만큼이나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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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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