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시기상조, 나의 영화 Top 20
뜬금없지만 어쩌겠어…
영화 칼럼이라는 이 지면의 성격에 걸맞게 오늘은 감히 내가 그동안 재밌게 보아왔던 영화 <Top 20>를 꼽아 보려 하는데, 이마저도 마이너하다면 나는 이제 글을 접고, 산 속에 들어가 도를 정진하겠다, 는 건 아니고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실 된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이라, 누군가 만약 “당신은 허풍이나 치고, 근거 없는 과장과 비약이나 일삼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비수를 꽂는다면, 나는 서러워 눈물, 콧물은 물론이거니와, 신체의 모든 수분을 쏟아내 그 자리에서 즉사하더라도 분이 안 풀릴 정도로 억울하다면, 거짓이고, 약간의 과장 정도는 애교로 글에 보태는 사람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오늘의 글에는 추호의 빈정댐이나 비아냥거림이 없다. 그러므로 나의 진실한 글쓰기의 자세에 다시 주목해주면 좋겠다. 뭐, 그건 내 사정이고, 어쨌든 솔직히 말하건대, 오늘의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인은 ‘탕웨이’다. 나는 탕웨이의 결혼 소식에 대한 한ㆍ중 합동 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합된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지리적으로는 인접해있지만, 동북아 공정이나, 혐한 감정으로 인해 양국 간 감정의 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탕웨이의 결혼 소식으로 양국이 대동단결할지는 진정 몰랐다.
여하튼, 고립감을 느낀 이유는 나는 도대체 ‘탕웨이의 매력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감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원하는 음악은 음원 유통이 되지 않고, 기다리는 영화는 국내 수입이 되지 않고, 국내 개봉이 되더라도 단관 개봉에 1일 1회 상영 정도가 고작인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마셰티 킬즈>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땐, 1일 1회 상영이라는 희소성에 불구하고 객석엔 나를 포함해 5명이 고작이었다. 직업이 소설가이긴 하지만,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간만에 ‘우와! 이거다!’ 싶은 소설이 나타나면, 나의 오랜 기다림과 감탄과는 달리 금세 절판 돼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나는 그만 스스로 마이너한 감성을 지닌 소유자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다 탕웨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화 칼럼이라는 이 지면의 성격에 걸맞게 오늘은 감히 내가 그동안 재밌게 보아왔던 영화 <Top 20>를 꼽아 보려 하는데, 이마저도 마이너하다면 나는 이제 글을 접고, 산 속에 들어가 도를 정진하겠다, 는 건 아니고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들을 추리려 했으니, 이 영화들은 마이너한 감성의 소유자인 나에게도 유효한 성공작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도 안다. 여름 휴가철도 아닌데, 뜬금없이 추천작 20이라니(그래도 마감은 해야지. 어쩌겠어……)
아울러, ‘영사기’에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장고>, <바스터즈>,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아쉽게 생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니볼>은 살아남았다.
나는 여러 차례 밝혔지만, 청소년기 용돈의 대부분을 극장 티켓 구매에 쏟아 부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매주 개봉영화 한 편씩은 평균적으로 봐왔다. 군대를 가고, 해외에 있었던 시기를 포함한 수치이므로, 성인이 되어 국내에 있을 때는 한 주에 개봉영화 2-3편은 봐 왔다는 말이다. 요즘도 그러하다. 어림잡아 1,200 여 편 가량 봤다. 그 중에 단연코, <그을린 사랑>이 최고다. 다소 느리게 전개되는 면이 있지만, 그 점 역시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2.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 토마스 알프레드슨)
내가 원하는 진정한 첩보 영화. 이 영화를 위해서 별점을 매기자면, 하늘에 매달린 상당한 행성들을 지상에 추락시켜야 한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La Mer>가 흘러가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버릴 장면이 단 하나도 없는, 모든 장면이 서사적으로, 미학적으로 훌륭한 영화다.
학창시절 이 영화를 보고 나는 2주 뒤, 일본에 가기로 결심했다. 비록 단기간 어학연수였지만, 이 영화 속에 흐르는 정서를 배우고 싶었다. 무엇이 저토록 제한된 공간과 설정에서 이야기를 증폭 시킬 수 있는지, 학창시절의 나는 감탄 하면서 보았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압구정동의 ‘씨네플러스’에서 봤는데, ‘이 감독이다!’ 싶었다. 한국영화의 선두주자가 될 선수가 몸을 푼다는 인상을 확실히 받았다. ‘살인의 추억’이 나왔을 땐, 기대에 부응해줘서 ‘역시!’하고 느꼈다. 일상적인 소재와 배경, 그리고 이를 전복시키는 대사, 재즈의 이율배반적인 조합은 보고 듣는 순간 마음을 뺏겼다.
5.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세르지오 레오네)
쓰다 보니 <대부>보다 이 영화를 높은 순위에 올려놓은 걸 보며, 나의 순위 선정이 마이너하다는 걸 자각했지만, 그래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훨씬 훌륭하다. 참고로, 내가 태어나서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아버지를 따라가서 봤는데, 극장에 들어가자마자 로버트 드니로가 차 뒷좌석에서 데보라(극중 이름)의 옷을 마구 벗겨서 ‘우와! 신세계다’ 하고 느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 작품을 보고 흥분하여 소설 『능력자』를 썼다. 그 덕에 먹고 산다.
한국 영화감독 중 데뷔작을 보고 ‘이 감독이다!’고 한 사람은 총 다섯 명이다. 봉준호, 최동훈, 장준환, 정근섭. 그리고, 한재림 감독(이원석 감독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라는 수식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저기 쓰이는데, 이 영화가 진짜 ‘한국영화’다. 하나의 색채로 규정할 수 없는 감정, 남녀간ㆍ계급간의 감정 차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정의 생노병사. 모든 걸 훌륭히 담아냈다. 볼 때마다 쓴 맛이 느껴진다. 신기하다.
훌륭한 고전이라도 수십 년이 지나서 새로이 정립된 기준으로 보자면, 낡은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영화 <졸업>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졸업>은 영화의 유효기간마저 졸업했다. 욕망의 종착역에 기다리는 이는 고작 허무함뿐이라는 사실을 오이디푸스적 서사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보여준다. 참고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혼자가 된 더스틴 호프만이 차를 타고 금문교 위를 달리는 장면. 물론,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이 흐른다.
통속소설을 가지고도 이토록 훌륭한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감탄스럽다.
갱의 세계에 잠입한 형사의 이야기로는 <도니브래스코>가 단연 최고다.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주연 알파치노, 숀 펜, 조연 루이스 구즈만, 비고 모텐슨, 테마 음악 <You are so beautiful>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학창시절, 이 영화에 나온 장학우의 표정 연기를 수 백 차례 따라했다.
아직도 테마음악을 휘파람으로 불 수 있다.
베트남의 씬들이 너무 좋아 새로 나올 소설 『풍의 역사』에 오마주로 심어 놓기도 했다. 따라했다고 비난을 받는 것조차 영광이다.
내 소설의 기원을 영화적으로 수색해본다면, ‘능력자’는 <파이터>, 미발간 신작 ‘풍의 역사’는 <빅피쉬>다. 보는 순간, ‘우와! 저 허풍쟁이 영감이다!’ 싶었다. 허풍쟁이들이 나오는 이야기만큼 자유롭고, 해방감이 느껴지는 건 없다. 적어도 내겐.
감독의 이름을 쓰는 자리에 작가의 이름을 쓰고 싶을 만큼, 아론소킨의 존재감이 컸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 영화 전체에 흐르는 패배적인 정서와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 그렇기에 음울한 화면의 톤이 마음속에서는 빛이 났다.
전혀 흥행하지 못한 영화이지만, 상당한 수작이다. 대사가 훌륭하며, 전개 방식이 세련됐다. 노배우들의 연출작은 이래서 신뢰할 수 있다.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일랜드에 갔다면 믿으실지. 영화 촬영지 전부를 직접 갔다 왔다면 또 믿으실지. 에이미 애덤스와 매튜 굿의 매력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영화, 아일랜드로의 이민을 한동안 고민하게 했던 영화다.
17.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2004, 피터 호윗)
이 영화 때문에 스코틀랜드에 갈 참이다.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저평가 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외롭다.
나는 지금껏 50만 마일 가량 비행을 했는데, 영화 속이지만 1000만 마일을 비행한 조지 클루니를 보고 기겁했다. 다소 교훈적이지만, 성급히 결론내리지 않아서 강요하지 않는 달변가의 말을 듣는 것 같다.
이런 영화가 흥행되지 않는 이 땅의 현실이 싫다. 엔딩 씬의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우주 대통령을 시켜줘도 모자람이 없다. 대사 없는 표정만으로 엔딩을 써버린 작가도 대단하다. 이런 게 통하는 환경이라니!
오락적이고, 과감하고, 섹시하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세상에 무관심한 천재다. 노력하려고 발버둥 치는 캐릭터는 존경하지만, 매력적이지 않다. 대충 살자.
(영화 <그을린 사랑> 중)
다 써놓고 보니, 나 정말 메이저한 감성의 소유자인 것 같다. 아……, 이게 뭐지?
* 편집자 주 : 저 역시 도대체 ‘탕웨이의 매력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두 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과잉의 매혹, 결핍의 자유 <탐 엣 더 팜>
- B급 예술의 완벽한 승리 <바스터즈>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10,800원(10% + 5%)
10,800원(10% + 5%)
5,400원(10% + 5%)
8,400원(0% + 5%)
7,800원(0% + 5%)
8,400원(0% + 5%)
8,400원(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