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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블로거 서평도 일종의 평론”

블로거 하늘여시의 삶, 독서 그리고 영화 리뷰어클럽, 서평단 경험이 뜻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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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 압박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갈수록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이 환영받는 시대다. 그럼에도 묵묵히 길게 써내려가는 블로거가 있다. 자주 쓰진 않지만, 블로거 '하늘여시'가 쓴 리뷰에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문화예술계 언저리 여기저기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백수와 프리랜서의 시소를 타고 있어요. 문화 컨텐츠 창작집단인 '파수'로 플래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쓰고 지역미디어센터에 인연이 있어 맹아들을 위한 미디어교육에도 참여했었어요. 하지만 지난 일년은 백수일 때가 더  길었어요.

 

요즘 관심사는?

 

이사도 하고 영화도 많이 보고 저렴하고 알찬 공연들도 자주 찾아다녔지만 제 백수생활의 백미는 탁구에요. 심각한 운동치인데 남편의 강요, 아니 권유로 시작했어요. 보기완 다르게 범생 스타일이라 열심히 출석도장은 찍었고요. 그렇게 다니다보니 어느 날 공이 라켓에 와서 맞더라고요. 현란한 기술의 서브는 아직 멀었지만 제가 똑딱똑딱 공 맞추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이 신기해해요. 사실 탁구클럽 옆집이 동네서점이에요. 탁구를 열심히 치다가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면서 책방에 가 있는 재미로 운동을 다닌 것도 같아요.

 

고은희01.jpg

 

블로그를 보면 묵직한 책을 주로 읽는 것 같습니다.

 

종이와 글자를 좋아하고 평생 읽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요. 간판, 메뉴, 사용설명서나 광고도 열심히 읽어요. 읽어서 가지고 싶은 일종의 욕심과 약간의 허영심이기도 할 테죠. 누구에게나 그렇듯 독서는 많을수록 좋은 친구고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이 축적될수록 끊기 어려운 게 독서인 것 같아요. 독서는 존재하지 않는 곳까지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중독성이 있어요.

 

어떤 계기로 책을 읽게 되었나요? 주로 읽는 책 분야는?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이 시골에서 작은 인쇄소를 하셨어요. 지금은 잘 보내지 않는 부고를 일일이 활자를 하나하나 찾아 맞추던 작은 공장풍경이나 잉크냄새 같은 게 기억이 나요. 어려서 병치레가 잦아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외래를 많이 다녔는데 그때마다 작은 책을 선물 받았던 기억도 있고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니 신문 편성표 옆의 줄거리들을 읽었어요. 열심히 읽고 ‘주말의 명화’가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 잘난 척을 하는 거예요. "아빠! 저건 저건, 저 남자가 저 여자를 콜걸로 오해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거야. 근데 진짜로는 회장 딸이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아버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떠들어대는 일곱 살짜리가 전라도 말로 얼척이 없으셨을 거예요. 조금 더 자라서 책은 호기심천국이었어요. 성교육도 도서관에서 빌린 과학용어대사전이나 의학에세이로 받았으니 말 다했죠.

 

책 편식은 없는 편이에요. 어떤 책이건 배울 만한 구석이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내 주변을 넘어선 사유를 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하루의 스트레스는 ‘요츠바랑’ 풀고, 뇌경화가 의심될 만큼 멍 때릴 땐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만나고, 마음의 응급실이 필요할 땐 ‘김형경’과 ‘도리스 레싱’을 꺼내고, 복잡한 세상이 화두를 던지면 ‘마이클 샌델’을 읽고요.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최근 공들였던 독서는 귀농, 시골생활, 숲, 야영, 텃밭 같은 키워드에요. 그런데 멈추지 않고 거기서 좀 더 가버리고 말았어요. 일상에서의 불안증을 ‘모험도감’을 읽으며 서바이벌로 풀어버린 거죠. 어느 날 저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표류해서 ‘윌’이라는 배구공 친구를 둔 ‘베어 그릴스’가 되어 있더라구요.

 

요즘은 뜸하지만 하늘여시라는 이름으로 예스 블로그(//blog.yes24.com/fox9255)를 운영하는데요. 책 읽고 서평 쓰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서평을 쓰는 이유는? 서평 쓰는 책 기준은 어떻게 정하나요?

 

주로 리뷰어클럽이나 서평단 활동하면서 서평을 썼어요. 한 번도 쉽게 서평을 써본 적은 없어요. 블로거가 쓰는 서평도 평론의 하위 장르 어디쯤 있는 재생산 작업이라고 믿고, 공들인 작가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쉽게 읽는 것조차 미안했거든요. 수많은 메모를 하고 시간도 많이 들였어요. 적어도 내가 책에서 어떤 질문을 떠올렸는지, 그래서 세상을 볼 때 어떤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지를 서평에서 말하려고 애썼어요. 제 강박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책의 좋은 점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감을 주는 책이나 영화는 절로 이야길 하고 싶게 만들어요. 제게 그 영감이란 건 어떤 발명의 단초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생각들을 넓혀나갈 힌트들이에요. 물론 그 과정을 즐기는 게 중요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아마 이 인터뷰가 계기가 되어 다시 블로그에 불을 켜고 열심히 떠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되면 이젠 영화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요. 영화 이야기 쓰기가 늘 두려웠어요. 영화를 다 소화시키고 이야길 하는 건지 확신도 없었고요.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닌데 바보처럼 영화이야기 하기를 즐기길 못했던 것도 같아요. 이런 결심엔 리뷰어 활동이 약과 내공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난쏘공이나 정기리뷰어 활동을 할 땐 치열하게 읽고 썼는데 그게 정말 행복해서 ‘나는 리뷰어가 직업이고 다니는 직장은 부업’이라고 마인드 콘트롤을 했을 정도에요. 읽고 쓰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라고 절절하게 느낀 시기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커요.

 

영화 이야기를 좀 더 해 주세요.

 

저 아마도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사람 중 하나일 거예요. 너무 마음 아픈 사건사고들이 많았잖아요. 종일 TV 뉴스와 인터넷을 끼고 있다가 우울한 마음으로 무작정 영화들을 보곤 했어요. 시기적인 영향이었는지 청소년 소재 영화들을 수십 편 봤어요. 대부분 아이들이 등장하는 미디어들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데 그래서 오히려 끊임없이 반성하게 되기도 해요. 그런데 하물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반복해서 영화로 확인하게 되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사람은 평생 영혼이 조금씩 자라기 때문에 완전히 성숙한 존재란 없다고 믿어왔는데 우리의 미성숙 때문에 희생자가 생긴다면?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백만km가 되더라구요. 자기가 하는 행동에 늘 약간의 봉사정신을 섞는다면?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인가 희망고문인가. 정답도 없지만 포기를 하기도 어려운 질문들에 늘 매달리는 것 같아요. 매번 딜레마로 끝나는 문제들이고 대부분 개개인의 머릿속에서 그쳐버리겠죠.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좀 더 나은 내일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고 싶어요. 길고 긴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 아닌가요?

 

만약 청소년 소재의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킹 오브 썸머>, <르벨>, <블링 링>, <어바웃 케빈>, <인 어 베러 월드>, <한공주>, <방황하는 칼날>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막다른 길에 다다를테고 아주 원론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으니깐.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기억력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어요. 영화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은 잘 잊지 않아요. 그런 건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기억들이구요. 음... 수년 전에 응급실에서 급성심근경색 진단 받았을 때가 꽤 쇼킹했어요. 충격적이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 속의 정신없는 편집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제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일이기도 해요. 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이후로는 덤으로 받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거든요. 실제로 좀 더 겸손해졌고요. 제가 다니는 탁구클럽엔 80대 중반의 할아버지들이 탁구를 치러 오세요. 유쾌하고 건강하시죠. 그분들 볼 때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그때를 되새김질해요. 

 

 채널예스는 어떤 계기로 아셨나요?

 

처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친구의 소개였던 것도 같고. 알고 나서는 책 구경하는 게 좋아서 종일 예스24 열어두고 살 때도 많았어요. 서점에 가지 않아도 늘 책방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채널예스의 발전도 지켜보게 되었겠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텐 관심사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놀이터죠. 의외로 동화 플래쉬 컨텐츠를 자주 봐요.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내게 누군가 동화책을 읽어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꼬물꼬물해지는 뭔가가 있어요.

 

6월은 월드컵이 열리네요. 월드컵 기간에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2014 브라질 월드컵엔 꼭 직접 가서 응원해보고 싶었는데...... 다음 월드컵으로 미뤄야겠지요? 평생 꿈만 꾸는 거 아니냐구요? 그래도 괜찮아요.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잖아요. 제게 월드컵은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아이템 같은 거예요. 일부러 관심을 갖고 경기 일정 공부도 종종 하겠죠. 메이저리그 류현진 선발 경기 때 그랬던 것처럼 혼자 경기를 봐야할 때는 남편에게 모바일중계도 할지도 몰라요. 월드컵 기간 내내 TV앞에서 먹을 맛있는 간식메뉴 고민에 행복할거고 종종 상대 팀의 잘생긴 스트라이커를 응원하기도 하고......

 

앞으로 계획은?

 

남은 올해는 지역문화재단의 문화사업을 모니터하는 일을 몇 건 할 예정이에요. 재취업을 꿈꾸고 있긴 한데 실제로는 웹툰 ‘송곳’ 업로드 요일을 기다리며 세계국제도서전 사전예약을 하고 있더라구요. 아마도 백수와 프리랜서의 줄타기를 오래오래 하게 될지도요.

 

독자에게 찾아가는 채널예스!

‘독자와 만나다’는 채널예스를 평소에 즐겨 읽는 독자가 주인공인 코너입니다.
인터뷰를 원하는 분이나 주변에 소개하고 싶은 지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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