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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오의 단단한 아이덴티티

이들의 상상은 이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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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하면서도 지루한 것 같지만 여러 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느껴지시나요? 스몰 오의 < Temper Of Water >입니다.

스몰 오(small O) < Temper Of Water >

 

스몰오

 

전반적으로 음악이 던지는 인상이 비슷해 보인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덕분에 약간은 질질 끌려간다는 효과 또한 존재한다. 기시감이 연쇄로 등장하는 모습이랄까. “이 곡이 아까 그 곡 같은데” 싶을 수도 있겠다. 재밌는 부분은, 약점이라면 약점이라 할 이러한 특징이 실은, 잘 잡은 콘셉트라는 장점에서 출발한다는 데에 있다. 밴드가 써낸 열한 트랙의 곡들은 모두 '마치 구도를 위해 서역으로 떠난 원정대'를 그린 하나의 이국적인 사운드에 출발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감상이 또 달라진다.

 

스몰오의 세계관은 상당히 견고하다. 실로 훌륭한 상상력의 발로다. 더불어 여러 음악 스타일을 통한 다양한 시도는 음반에 풍부함까지도 더한다. 목가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 컬러, 현실과 상상 사이서 줄을 타는 오주환의 작사법, 이를 토대로 포크,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앰비언트, 포스트 록 등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방법론이 작품을 다채롭게 만든다.



 

서두에서부터 반론과 반론이 충돌했다. 지루함의 연속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잘 구축한 구조물로 봐야할까.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왔다. 양시(兩是)의 균형은 이미 앞 문단에서 무너졌다. 음반을 해석하는 방향은 후자의 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 작사와 작곡, 편곡, 제작, 연주 등 전반의 구성요소들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까마귀」에서는 웅장함을, 「74」에서는 경쾌함을 공급하는 퍼커션 섹션과 「여우」, 「마의 산」, 「코끼리」를 울리는 음향 효과, 곳곳에서 등장해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당기는 기타 솔로 등은 편곡과 연주, 프로듀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완성도를 확보한다.

 

호평은 밴드의 메인 송라이터 오주환의 멜로디 메이킹에도 따라붙어야 한다. 코러스의 흡인력은 단연 압권이다. 노래가 자연스레 입에 감도는 「74」와 「That will fall」, (어쩌면 이스턴 사이드 킥의 보컬 라인으로도 들릴 듯한) 「코끼리」에서의 선율은 말할 것도 없고, 짤막한 왈츠 리듬으로 쉽게 멜로디를 흩뿌리는 「Nord」와 간편하게 마디를 구성한 「호밀밭」에서의 선율 또한 쉽게 뇌리에 박힌다.

스몰오

 

결정적으로, 간편한 멜로디는 자칫 현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음악에 균형을 더한다. 프로그레시브의 서사성을 뼈대에 내재시킨 「코끼리」와 이국적인 리듬 운용에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뒤섞은 「까마귀」, 점층의 구조를 담은 「마의 산」과 「암울한 계절」 등은 특유의 낯섦을 기제로 삼고 있다. 텍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계급구조의 역학 관계를 뒤흔드는 「That will fall」과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마의 산」에서의 가사도 또한 다가가기 어렵다. 이 때의 접근성을 직관성을 내포한 멜로디가 끌어올린다. 어지럽다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의 사운드에 구심력이 생기는 셈이다.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마음 놓고 각양의 색깔이 뻗어나갈 수 있는 것도, 널찍한 세계관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캐치한 선율이 전제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주환의 작곡뿐만 아니라 편곡 과정에서 내놓은 고한결의 간결한 기타 리프들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넓히고 넓힌 스펙트럼이 작품을 수작의 위치로 올려놓는다. 서두에서 언급한 연쇄하는 기시감도 단점이라기보다는 밴드의 콘셉트에 집중을 기하는 장치로 볼 수 있겠다. 아쉬운 부분이 노출되지 않는다. 음반뿐만 아니라 개개의 곡들 역시 일정한 수준 위에 올라있다. 특히 음반을 통해 새로 선보인 「암울한 계절」나 「74」 같은 트랙들은 앞서 Ep로 공개돼 소구력을 발휘했던 「까마귀」, 「That will fall」, 「코끼리」 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베스트 트랙으로서도 충분히 꼽을만하다.

 

상당히 잘 만든 앨범이다. 밴드의 콘셉트도 잘 살아있고 컬러도 뚜렷하다. 지난 < That Will Fall >을 지나가며 이들에 내재된 위험성을 제기한 바 있다. 동류의 스타일을 구사하는 플릿 폭시스나 스피리츄얼라이즈드와 같은 밴드로부터의 잔영이 그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기우였던 듯싶다. 단단한 아이덴티티와 너른 반경의 음악 영역, 그 가운데서 잘 잡은 무게중심까지. 이들의 상상은 이미 현실이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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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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