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음악감독 장소영의 I Am What I Am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니 진짜 꿈이 보였다
자기 확신에 차 있던 음악감독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다시금 애써 감추며 사진을 찍기 위해 수줍게 포즈를 잡는다. 그러나 그 겸손과 낯설음도 잠시일 것이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오케스트라를 향해 지휘봉을 잡는 순간, 그녀는 다시 관객을 압도하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는 자기 확신에 찬, 강단 넘치는 음악감독이 숨어 있다. 하지만 성공한 음악감독의 경력 뒤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지 못해 고민하던 말없던 소녀의 모습도 숨겨져 있었다. 말하자면 음악은 그녀의 직업이자, 스스로의 삶을 고민해온 방식인 것이다.
김태훈 : 반갑습니다. 최근에 순천향대에서 특강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대학이라든지 기업에 가서 특강을 많이 하실 텐데,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뭔가요?
장소영 :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아요.
김태훈 : 음악감독으로 데뷔하신 지 11년 정도 되셨죠? 뮤지컬계에서 꽤 긴 시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장소영 : 꼭 그렇지는 않아요. 초창기 음악감독도 아니고, 20년 넘게 하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학생들이 물어보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버텼냐’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10년이란 세월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나 봐요.
김태훈 : 20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니까, 감독님 정도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오래했다고 느끼는 것 같네요. 실제로 30대, 40대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럴 때 뭐라고 대답하세요?
장소영 : 그냥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그냥 버텼다, 그렇게 대답해요(웃음).
김태훈 : 어쩌다 보니까, 라고 대답하면 학생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장소영 : 뭔가 굉장한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시시한 대답이라서 실망하는 것 같기는 한데요(웃음). 엄청난 꿈을 가지고 활동을 한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그때그때 열심히 했다는 얘기들을 해요.
오랫동안 갈망했던 뮤지컬 음악감독
김태훈 : 연세대학교 작곡과에서 공부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곡과라면 꼭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음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으셨을 텐데,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특별히 꽂히게 된 계기가 있다면?
장소영 : 작곡할 때, 이야기가 있는 장르에 음악을 넣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을 봤어요. 남경주, 최정원 선생님 같은 분들이 출연하셔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무대 위에서 공연하시는 것을 보고 ‘저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이 무대에서 내 곡을 불러주는 공연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되고, 뮤지컬 작곡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죠.
김태훈 :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신 뒤에 직장생활을 했던 걸로 들었어요.
장소영 : 직장생활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고요. 그때 <열린 음악회>가 막 생겼을 때였어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편곡과 드라마 음악을 했죠. 음악으로 할 수 있는 프리랜서 일들을 많이 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연출가를 소개 받았어요. 3일 정도 후에 연출이 전화를 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뮤지컬의 음악감독이 갑자기 없어졌다. 당신이 음악감독을 할 수 있겠냐’고 제의를 하신 거죠. 그 작품이 <하드록 카페>였어요.
김태훈 : 사실 낯설잖아요. 뮤지컬을 좋아하셨고 영화나 TV 음악을 하셨지만, 뮤지컬 쪽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작곡과 음악감독이라는 두 개의 역할에 대한 제의를 동시에 받았는데, 두렵지 않으셨어요?
장소영 : 10년 전부터 꿈꿔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두 번 생각 안 하고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했어요. 물론 두려움이 분명히 있었겠죠. 그런데 너무나 갈망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아주 흔쾌히, 그리고 기분 좋게 시작했죠.
김태훈 : 결과는 어땠어요?
장소영 : 아주 폭발적이었죠(웃음).
김태훈 : 어떤 면에서 ‘아주 폭발적’이었나요?
장소영 : 정확하게 얘기하면 뮤지컬 음악감독으로만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공연은 한 달 밖에 안 남았고,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는데 곡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어요.
김태훈 : 외국의 히트한 곡들을 받아서 사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는데 그 곡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죠?
장소영 : 네. 그러다 보니까 난리가 난 거죠. 공연장도 잡혀 있고 배우들도 다 뽑은 상태에서, 신참 음악감독이 들어오기만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상태였던 거예요. 그래서 공연을 접어야 되냐, 그런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요. 저한테는 천운인데 이렇게 공연이 그냥 중단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무조건 제가 작곡을 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믿어주지 않았죠. 그런데 그때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작곡을 하게 됐어요.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공부하고 갈망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작곡을 정말 열심히 했고, 그게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었죠. 그때부터 작곡가로 확실하게 활동하게 된 거죠.
김태훈 : <하드록 카페>라는 뮤지컬 자체가 록적인 뉘앙스가 굉장히 많은 곡들이잖아요, 클래시컬한 편곡도 있었겠습니다만. 물론 뮤지컬에 대한 여러 가지 공부를 하셨다고 하지만, 사실 록 음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전통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장르잖아요. 작곡으로는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록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루브라든지 특유의 비트를 가지고 맛을 내기가 힘든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장소영 : 다행이었던 게, 대학 졸업하고 록이나 팝 음악을 만드는 일에 많이 참여했어요. 편곡도 많이 했고요. 가수 앨범에 스트링 편곡들을 많이 했고, 드라마 음악도 많이 했죠. 그 중에 록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하드록 카페>은 사실은 록 음악이 아니라, 록카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록일 필요는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창피하기도 한데, 그때 록은 진정한 록이 아닌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그때는 록뿐만 아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넣고 싶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많은 연구들을 했던 것 같아요.
김태훈 : 사실 저도 해외에서 실재 ‘하드록 카페’를 가봤지만, 록 음악을 틀지 않아요. 댄스 음악 틀고 춤춥니다. 클럽인거죠. 사실 간판만 보고 들어갔다가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도 있어요(웃음).
관객과의 호흡, 교감, 그 짜릿한 감동
김태훈 : 시작은 TV와 영화 쪽에서 하셨는데, 뮤지컬 쪽에 오신 뒤로는 다시 그 쪽으로 돌아가지는 않으셨어요. 물론 뮤지컬이 처음부터 꿈꿨던 장르이기도 하셨고요. 뮤지컬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장소영 : 매력은 굉장히 많은데요. 가장 중요한 게 관객과의 호흡, 소통인 것 같아요. 관객과 공연을 하는 사람과의 교감, 이것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그런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서는 재미를 그만큼 느낄 수가 없었고, 그렇다 보니까 뮤지컬에만 매진할 수 있었어요.
김태훈 : 관객과의 교감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죠? 지휘를 하실 때 관객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반응이 직접 보이지는 않을 텐데요.
장소영 : 피부로 느끼죠. 등으로 느껴요(웃음). 말하자면 요리사가 요리를 했는데 먹는 사람이 어떻게 먹고 있는지는 못 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분명히 제가 열심히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거예요. 거기에서 오는 희열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공연이라는 건 80%만 만들어져 있고 나머지 20%는 관객이 채운다는 생각을 계속 해요. 관객들의 리액션에 따라서 공연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같은 공연이 없고, 할 때마다 새롭죠. 같은 공연이라도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 항상 새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요.
김태훈 : 반응이 가장 좋았던,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요?
장소영 : <피맛골 연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가 있었죠. <피맛골 연가>는 서울시에서 글로벌한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뮤지컬인데요. 그 작품에서 써보고 싶었던 악기, 음악들을 다 쏟아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제작비라든가 다른 환경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피맛골 연가>에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말하자면 요리사가 신선한 재료가 많을 때 행복을 느끼고 의욕을 느끼는 것처럼요.
김태훈 : 그 전의 작품들에서는 조건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 그런데 <피맛골 연가>를 통해서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장소영 : 사실 그 전까지는 악기를 쓰는 데 있어서나 노래 부르는 사람의 숫자에 있어서 규모가 큰 것들을 좋아했어요. 규모가 클수록 다양한 음색과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서 열악한 환경인 창작 뮤지컬은 소규모, 편성이 작은 록 음악을 하게 됐죠. 그러니까 제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곳에 있는데 다른 음악들은 시도를 못했고, 공연장도 작아서 제 역량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피맛골 연가> 같은 경우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도 했고, 국악기 양악기 다해서 35인조까지 됐고, 코러스도 60인조 정도 됐고, 그러다 보니 너무 신나게 작업을 했죠.
김태훈 : 말하자면 사단 병력을 지닌 사단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겠네요.
마음대로 칠 수 있는 곡이 좋았다
김태훈 :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장소영 : 8살 때 우연히 피아노가 한 대 생겼어요. 옆집에서 이민을 가면서 저희 집에 주고 간 것 같아요. 그때 신기한 마음에 건반을 두드렸는데 저희 아버지가 천재적이라고, 아무래도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학원에 등록을 시키셨죠. 그런데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께서도 제가 천재라는 거예요(웃음). 저는 갑자기 집안에서 천재적인 음악가가 된 거예요(웃음). 그런데 제가 살던 동네는 서울이기는 하지만 시골 같은 곳이었어요. 거기에서 피아노를 친다는 건 동네에서 가장 부르주아에 속하는, 고급 교육을 받는 학생이란 의미였죠. 동네가 거의 판자촌이었거든요. 반의 절반 정도 되는 학생들이 등록금도 내지 못하는 곳이었는데, 저희 집은 이층집이었어요. 말하자면 굉장한(?) 부잣집 맏딸에 피아노까지 치는 아이였던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서 음악에 소질이 있고 천재적이라고 하니까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싫다고 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하게 됐어요. 엄청난 꿈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김태훈 :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군요(웃음). 그렇지만 단지 주변에서 원했기 때문에 했던 것은 아닐 것 같아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뮤지컬까지 이어지게 되는 재미가 붙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장소영 : 재미가 붙기 이전에, 피아노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의 기대가 너무 컸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고 믿고 계셨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굉장히 엄한 분이신데, 제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엄마가 혼나는 거예요(웃음).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집안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했던 거죠. 사실 재미를 느낀 건, 죄송한 얘기지만, 고3 때였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예중?예고를 다녔지만 항상 어두운 아이였어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인해서 주어진 음악을 그대로 하는 것보다는 마음대로 치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태훈 :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고3이 되어서 대학에 입학해야 될 때에는 작곡과를 선택하셨단 말이죠. 정해진 다른 사람의 곡을 치는 게 아니라 내 곡을 만드는 과로 진로를 바꾸신 건데요.
장소영 : 고3 초에 피아노 시험을 보다가 틀린 적이 있어요. 물론 수많은 실기 시험 때 틀린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는 틀린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반 음 정도를 올려서 연주해 버렸어요. 첫 음을 틀린 걸 감추려고 변주를 했던 거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너는 작곡을 하는 게 낫겠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그때 제가 처음으로 ‘그러고 보니까 내가 만들어서 내 맘대로 치는 걸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전까지는 체계에 순응하는 학생이었는데 작곡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의지가 불타올랐죠. 입시가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전과를 하는 과정이 힘들기는 했어요. 한 번도 부모님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었는데 전과 문제 때문에 처음으로 반항을 하게 된 거죠.
김태훈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잃어버린 아버님의 배신감은 대단했을 것 같은데요.
장소영 :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는 틀렸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거예요(웃음). 사실은 3년 정도 공부를 해야 음대를 들어갈 수 있는데, 작곡으로 바꾼 그 순간부터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때 즐기면서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를 내는지를 알았죠. 그리고 ‘음악 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죠. 그 전까지는 악몽이었어요(웃음).
김태훈 : 아마 이 인터뷰를 보는 젊은 친구들에게 가장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음악이라는 같은 장르 안에서도 어떠한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너무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체험하신 거죠. 결국은 그런 경험들이 영화와 TV 쪽에서 음악을 했음에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뮤지컬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 동력이 되었겠네요.
장소영 :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 다음부터는 좋아하는 일을 따라다닌 것 같아요.
김태훈 : 돈이라든지 성공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따라다닌 것이 오늘날 뮤지컬 음악감독 장소영을 만든 계기였군요.
공연장에서 만나는 음악은 다르다
김태훈 : 뮤지컬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인데요. 결국은 모든 뮤지컬이 창작 뮤지컬이지만,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서 하는 뮤지컬이 있고 내 음악을 작곡해서 만드는 뮤지컬이 있죠. 각각의 장단점과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을 것 같아요. 재작년에 <라카지>라는 뮤지컬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었죠. 가장 최근의 작품 중에 하나로 고 김광석 씨의 음악을 가지고 만들었던 <그날들>도 있었고, 또 본인이 완전히 창작을 해서 만들었던 뮤지컬도 있었죠. 뮤지컬마다의 차이점, 만족감들이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장소영 : 완전히 다르죠. 주어진 곡을 가지고 연주하는 표현과 작곡을 하는 것이 완전히 달랐던 것과 마찬가지예요. 라이선스 뮤지컬의 음악감독을 한다는 것은 만들어진 작품을 잘 재현하는 일이죠. 그런데 창작 뮤지컬 같은 경우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내야 되는 것이고요. 사실 작곡가가 만든 의도를 드라마에 잘 녹여내는 것이 음악 감독의 일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혀 다른 길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가 음악을 만들어서 그것을 드라마에 녹여내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단지 제가 라이선스 뮤지컬을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나와는 다른 코드들이 어떤 게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예요. 아예 다른 길이기 때문에 한 번 맛을 보고 내가 작곡을 더 잘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다를 수밖에 없죠.
김태훈 : <그날들>의 경우에는 음악에 대해서 약간의 호불호가 있었어요. 원곡의 기본적인 멜로디만을 남긴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편곡된 곡들도 꽤 많았단 말이죠. 굉장한 모험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광석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수이자, 그의 음악이라고 하면 거의 5천만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장소영 : 일단 반응이 아주 나쁠 거라는 건 예상했고요(웃음). 저도 추억이 있는 음악들을 그대로 듣고 싶어 하지, 리메이크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 음악을 듣는다는 건 추억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김광석 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이야기 안에 넣을 음악이라면,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노래 속의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가면 적어도 욕은 먹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원곡은 얼마든지 음원으로 들을 수 있고 언제든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지만, 공연장에서는 다른 모습의 김광석 음악을 듣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요. 또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결정을 하고 어차피 바꿀 거라면 ‘아주 다를 수 있구나, 아주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감성을 가지고 올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었어요.
넌버벌 퍼포먼스로 해외 무대 진출
김태훈 : 성공한 음악감독 장소영으로 살아온 시간도 있겠습니다만,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음악적으로 좌절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장소영 : 항상 힘들었다가 좋았다가 했는데요.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같이 오는 것 같아요. 음악 감독으로 데뷔한 해가 2004년이었는데 그해 여름에 제가 굉장히 열심히 음악 활동을 많이 했어요. 7~8 군데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기도 하고요. 입시 선생으로도 활동을 했어요. 왜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왜 나한테는 감독이라든가 작곡가로서의 기회를 주지 않는 걸까’라는 회의가 들었죠. 그래서 ‘다 때려치워야겠다, 그냥 열심히 살림이나 하고 조용히 음악계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실제로 또 다 그만 뒀고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연한 기회를 통해 드디어 뮤지컬 음악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거죠.
김태훈 : 어떻게 보면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고, 운명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만약에 모든 걸 접지 않았던 시기였더라도 음악 감독 제안을 받았다면 다른 일들을 다 접었을까요?
장소영 : 아뇨, 지금도 다른 일도 하고 있는데요(웃음). 그런데 과감하게 접을 수 있었던 건 ‘내가 더 이상 열심히 할 수 없다, 난 최선을 다했고 여기에서 그만둬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때 기회가 온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일찍 기회가 왔다면 그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만큼 오래가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충분히 숙성할 시간을 준 거죠.
김태훈 : 뮤지컬 음악감독 말고 요즘 하고 계신 일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뭐가 있습니까?
장소영 :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퍼포먼스예요. 뮤지컬에서 좀 더 확장된 것인데요, 넌버벌이죠. 뮤지컬은 이야기가 중심이 돼서 흘러간다면, 넌버벌 퍼포먼스는 언어를 모르더라도 모든 장르의 중요도가 비슷한 장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언어에 제한을 받지 않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거죠. 이런 퍼포먼스들이 앞으로 가야 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김태훈 : 어떤 매력 때문일까요? 넌버벌을 선택했다는 건 해외 시장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장소영 : 그렇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유형을 찾은 거죠. 그리고 점점 디지털화 되면서 소통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의 관심만 가지게 되는 상황이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럴수록 소통이라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희소성이 있으면서 중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이 넌버벌 퍼포먼스는 앞으로 굉장히 두각을 나타내는 장르가 될 거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어요.
김태훈 : 지금과 같이 복잡한 언어들과 소통에서의 괴리감들이 느껴지는 시대에, 오히려 언어보다는 비언어적인 것을 사용하는 공연들이 점점 더 많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신데요.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김태훈 : 가장 최근에 시작하고 계신 작업은 무엇인가요?
장소영 : 지금은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있고, 하반기에 작품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8월 정도에 중국에서 한류 바람으로 한국 가수들을 캐스팅한 뮤지컬 콘서트 같은 것들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요. 뮤지컬 <보이첵>을 10월에 올리고요. 또 <그날들> 재공연을 하고 <라카지>도 재공연을 해요. 그리고 뮤지컬 작곡은 지금 쉬고 있어요. 말하자면 안식년 같은 것인데요. 조금 더 깊이 있는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작곡도 어느 정도 쉼을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쉬고 있죠.
김태훈 : 최근에 본 영화나 책, 들었던 음악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던 작품이 있었나요?
장소영 : <노아>는 인상적으로 재미없게 봤고요. <부다페스트 호텔>은 아주 재밌게 봤어요.
김태훈 :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던가요?
장소영 : 사실은 어떤 영화를 보든 ‘음악을 어떻게 사용했나’하고 연구 자세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 않으려고 해도요.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떻게 저런 색감을 나타냈을까’하고 처음으로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작품인 것 같아요. 별 거 아닌 장면을 연출하더라도 굉장히 색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감독이 자기 색깔을 아주 분명하게 잘 나타내고,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모습들을 보면서 ‘예술이라는 건 저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사람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이런 걸 만들었는데 한 번 맛볼래?’라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것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데 너는 어때?’라고 물어보는 것 같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인상적이었어요.
김태훈 : 아마도 그런 느낌이 장소영 감독님의 다음 작품에 반영이 되겠군요.
장소영 :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기 확신에 차 있던 음악감독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다시금 애써 감추며 사진을 찍기 위해 수줍게 포즈를 잡는다. 그러나 그 겸손과 낯설음도 잠시일 것이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오케스트라를 향해 지휘봉을 잡는 순간, 그녀는 다시 관객을 압도하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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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