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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진화하는 이소라의 음악세계

세다 사운드도 가사도 감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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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애초에 이소라라는 가수부터, 전작과 다른 그녀의 감성, 록이라는 장르, 참여한 뮤지션들까지. 호불호가 심하던 앨범이기도 한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소라 < 8 >  
 
세다. 사운드도 가사도 감성도. 어느 때보다 직접적이고 거칠며 더러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소라의 8집은 전체가 강한 록 사운드로 무장하고 있다. 얼핏 헤비메탈로 내달렸던 3집의 '분노' 파트가 연상되지만, 그 시절과 겹쳐지는 건 장르뿐이다.

 

이소라.jpg

 

마치 CD와 한 장의 메모지가 검은 편지 봉투에 담겨 툭 배달된 듯한 이번 블랙앨범은 일단은 7집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5집 이후 앨범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강화되던 밴드 사운드는 전면에 나와 앨범 이미지를 끌고 가는 단계에 이르렀고, 계속적으로 얇아져 가던 보컬도 더욱 날렵하게 깎인 채 사운드 내부로 흡수되었다. 작업방식도 동일하다. 음악 파트너인 정지찬, 이한철, 김민규, 정순용, 임헌일, 정준일에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주문했고, 그것을 결국엔 이끌어 냈다. 모두 록의 색을 충실하게 띄면서도 이소라의 감성이 진입할 틈이 있는 음악들이다.

이소라

 

그런데 여기에 입혀내는 이소라의 감성과 태도가 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 앨범이 전작의 음악적 방향을 이어감과 동시에 7집 사이에 뚜렷한 구분선을 긋는 건 이 때문이다. 앨범의 생경함이 있다면 록이라는 장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이소라 자체인 것이다. 가사부터 그렇다. 모던록을 풍경으로 단정한 시어들이 서정의 운율을 이루었던 과거와 달리 노랫말이 파편적으로 튀어 나열되거나 아예 서술적이다. 날카롭게 벼른 목소리도 절제보다는 표출을 향한다. 7집이 자아를 관조적으로 노래해 편안했다면, 스스로와 더욱 밀착한 이번 앨범은 온통 불화다. 그 분투의 에너지를 이소라는 자기 어투 그대로 쏟아내고 있다.

 

이런 변화를 일군 데는 처음 작곡으로 참여한 임헌일과 정준일의 역할도 적잖아 보인다. 어찌됐든 강렬한 포문으로 앨범의 첫 인상을 이끄는 앞 세 트랙은 모두 이들 손에서 빚어졌기 때문이다. 앨범은 초반부터 격정적으로 몰아친다. 서늘하고도 비장한 인트로의 「나 Focus」와 왜곡된 보이스가 신경질적으로 분노하는 「좀 멈춰라 사랑아」가 끌어올린 격렬의 기운을 「쳐」는 정박을 강하게 때려가며 잇고 「흘러 All through the night」에서는 펑키한 리듬의 흥으로 받아친다. 그 흐름을 끌어가는 데 임헌일의 기타는 보컬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

 

노래들은 단호하고도 절박하고, 이 둘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정서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매정하게 고갤 돌리는 「넌 날」, 다시 천진난만한 보이스로 표정을 바꾸는 「너는 나의」 등 여섯 번의 감정이 휘몰아치고 나면, 나에게만 '포커스'되었던 시선은 「난 별」로 흐르면서 어느새 세상과 관계 안의 나로 확장된다. 경건한 사운드 속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외는 타이틀곡 「난 별」은 기존의 음악 스타일과 현재의 변화가 가장 적절히 조화한 넘버다. 유일하게 조용한 마지막 트랙 「운 듯」의 메마름은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난 생의 주검 같다. 격정 후의 고요는 그래서 더욱 짙다.

 

앨범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건 이소라 자신이다. 지난 작품에서부터 담아내기 시작한 '자아'가 투영과 반영의 수준을 넘었다. 가면 갈수록 이소라는 그의 음악 속에 더욱 분명하고 뚜렷하게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하드록은 어쩌면 과거와는 또 달라진 현재의 자신을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매개인지도 모른다. 장르의 특성을 빌려 그는 어느 때보다 자신의 사정과 심정을 직설적이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달라진 이소라가 주는 이질성은 왜곡된 사운드와 묘한 화합을 일으키며 바로크적 낯섦을 선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범의 흡입력은 이 지점에서 주춤한다. 장르의 파격적 세기와 지난 앨범의 향수에 그의 현재가 가려지는 것이다. 장르의 발현에 집중된 앨범이라 하기엔 어딘가 헐겁고, 그가 과거 이룬 옛 명반의 기대치로 접근하려니 그것과도 다른 지점에 서 있으며, 트렌드에 무심하면서 대중성과도 거리가 생겼다. 더군다나 균열과 충돌의 인상은 아무리 그 자체가 이미지라 할지라도 편히 안기지 않는다. 비타협의 고집이 포용의 너비를 줄였다고 할까. 그러나 이 앨범의 멋은 아부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해 나가는 중견 가수의 그 비타협과 대담함에서 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거 이소라가 오랜 기간 닦아 온 음악 스타일은 7집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다. 더 길게 나아가기 위해 변화는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그 돌파와 모색의 기미는 사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콘서트 때면 간간이 기타를 튕기며 Stone Temple Pilots의 「Down」과 같은 강렬한 록 넘버들을 커버하기도 했고, 지난해 가을 있었던 단독 공연에서는 자신의 곡을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전하면서 이 공연을 통해 지금까지의 잔잔한 노래들을 마무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8집의 변화가 일시적 실험만은 아닌 셈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 모두 변하고 있어, 나도 잘할 수 있어.'

 

이번 앨범을 통해 이소라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시 한번) 내려놓고, 그간의 작업을 거름삼아 또 다른 음악 세계를 향한 출발점에 (또다시) 섰다. 신보의 의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익숙했던, 잘 했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이 낯설고 부족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넓혀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까닭이다. 게다가 그 결과물은 점차 듣기 보드라워져가는 근래 음악 경향과 반대 방향에 서며 대중음악을 다양화하고 있다. 이 블랙앨범에 깃든 폭발성과 지향 노선은 그래서 더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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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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