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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괴롭힌 친구보다 지켜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한다

“같이 있어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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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건지, 세상 모든 것이 보기 싫은 건지…… 세 차례 상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고개를 들지 않았고 당연히 눈도 맞추지 않았다.

아이의엉킨마음을풀어주는법

morguefile By taylorschlades

 

중학교 2학년 현우는 몇 달 전 학교에서 2박 3일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잠들기도 힘들어했다. 아무하고도 말하려 들지 않았다. 길에서 우연히 교복 입은 남학생을 만나면 깜짝 놀라며 제자리에 멈춰 두 손을 만지작거리는 등 심한 불안반응을 보였다. 2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현우의 이러한 행동특성은 흔히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의 증상이다. 신체적인 손상 또는 생명의 위협 같은 심적 외상을 입은 뒤에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상태가 심각해서 신경정신과 치료와 상담이 병행되었다.

 

아이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건지, 세상 모든 것이 보기 싫은 건지…… 세 차례 상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고개를 들지 않았고 당연히 눈도 맞추지 않았다.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살짝 눈만 치켜뜨는 정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학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도 연유를 알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학급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토요일에 열리는 ‘친구 사랑의 날’ 행사에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현우가 없는 교실에서 학급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현우의 부모님과 상담사가 학급을 방문한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혹시 현우와 관련해서 책임 추궁을 받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표정의 아이들도 보였다. 갑작스러운 어른들의 방문에 아이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현우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다고 말하며 혼내러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몇몇 아이들이 불공평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집단 수행평가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동일한 점수를 받고 청소시간에도 예외로 해준다는 반응이었다. 어떤 친구는 다가가려고 해도 현우가 피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도 했다. 이렇게 다들 그동안 쌓인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초등학교 때 현우의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였다. 아이는 현우가 초등학교 때 얼마나 밝고 명랑했는지 말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와서 웃음이 없어졌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다른 아이가 되었다고 했다. 교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우 아버지가 교실 앞으로 나가서 입을 열었다.


“우리 현우는 어릴 때 중이염을 앓으면서 심한 고열에 시달렸어.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 당시 또래에 비해 발달이 좀 느리다는 진단을 받았지. 또래만큼 빨리 배우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밝게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마웠단다.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어. 그런데 요즘은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많이 안타까워. 그래도…… 부족한 내 아들과 친구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단다.”


몇몇 아이가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누가 현우를 괴롭혔느냐며 화낼 줄 알았던 아버지가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하자 놀란 듯했다. 동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뭔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우 아버지가 교실을 나간 뒤,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현우는 잘 먹지도, 자지도 못 해. 누구와도 말하지 않아. 아니, 말만 안 하는 게 아니라 쳐다보지도 않아.”
“……”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어.”
“……”
“너희를 혼내려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 그래야 현우를 치료할 수 있거든.”
이야기를 건네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한 명 한 명을 천천히 둘러봤을 뿐, 특별히 어떤 아이를 주목해서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나만 쳐다봐요?”
현우를 괴롭힌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자기 혼자만 의심받는다는 지레짐작에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다. 나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곧 여기저기서 여러 명이 동시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나만 그런 거 아니에요. 다른 애들도 같이 그랬어요.”
“아니에요. 애들이 현우한테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막 밟았어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여학생 몇 명이 울기 시작했다. 남학생들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결국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커져버렸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몇몇 아이가 일어나 현우 부모님께 달려갔다.


“그냥, 정말 장난이었는데, 현우가 이렇게 아파할 줄은 몰랐어요.”
“죄송해요. 저희는 그냥 살짝 놀리려고 한 거예요. 진짜예요.”


현우를 괴롭힌 친구들은 너무 미안해서 울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친구들은 현우가 너무 가여워서 울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담임선생님도 부모님도 함께 울었다. 한참 동안 흐느끼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학교는 오직 공부만 하는 곳이란 어른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상황을 낳곤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건강하게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기형적인 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학여행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이 친구 한 명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발로 밟는 것이 놀이였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아이가 공포를 느끼지 않고 함께 즐겼다면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발길질을 당하며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면 결코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다. 힘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놀이는 누군가에게는 즐거울 수 있지만, 또다른 아이에게는 엄청난 고통일 수도 있다. 종종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모들은 다른 아이에게 고통을 줄 의도가 없었으니 폭력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폭력의 기준은 피해를 당한 아이들의 심리적,정서적,신체적 고통에 의해 정의된다는 사실을 꼭 숙지할 필요가 있다.


죽을 것 같은 충격과 공포를 경험한 현우는 현실세계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모두와 담을 쌓고 자기만의 성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현우가 빨리 일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우선 현우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학교폭력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졌을 때, 가장 먼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하게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피해자에게 더이상 위험한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주는 것이다. 가해자로부터 어떤 보복도 받지 않을 것이며 어른들이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도 현우를 지켜주지 못한 사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부탁했다. 수학여행에 동행했던 선생님도, 집에 있어 함께할 수 없었던 부모님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현우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때, 부모는 모든 원인이 괴롭힌 친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원망하고 분노하는 대상은 친구보다 부모인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부모는 가장 신뢰하는 울타리이자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다. 그런데 자신이 위험에 처했는데도 부모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아이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와 아이가 겪은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공감해주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필요했다.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몰랐구나. 같이 있어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다독여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흔들린 신뢰를 회복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다시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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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이경자 저 | 아우름
이 책에는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리고 혼자 힘들어하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 교사에게 아이의 마음속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추천처럼, 20여 년간 특수교사와 심리상담가 등으로 일해온 저자는 아동심리 전문가로서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어주고,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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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자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그간 1천 여 명이 넘는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왔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조기교육실, 특수학교, 발달클리닉 등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용인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특수상담사로 학교부적응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라임오렌지나무아동청소년센터에서 상담실장으로 재직하다 현재는 분당에 위치한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시형 박사가 운영하는 '세로토닌 키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이경자> 저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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