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부모가 귀를 열지 않으면, 아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눈뜨는 게 무서웠어요.”
아이가 보내는 신호는 매우 미약할 수 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신호를 놓치는 순간, 아이의 상처가 어떻게 터져버릴지는 모를 일이다. 내 아이는 다르다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안심하기 전에 아이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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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마다 눈뜨는 게 무서웠어요.”
자해를 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담실을 찾은 중학교 1학년 다빈이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중학생이 된 후 늘어난 교과목 수와 엄청난 학습량으로 심적 부담이 컸다. ‘선배들한테 찍히면 끝장’이라는 친구들의 엄포도 다빈이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복장을 포함한 여러 가지 규율에 대해서 전달받을 때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작은 실수도 모두 벌점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 일종의 협박처럼 들렸다. 중학교생활은 시작부터 숨통을 죄는 듯했다.
부모님의 잔소리 역시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중학생이 된 후 부모님은 눈만 마주치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없이 집을 나서는 발걸음 뒤로 “수업시간에 딴짓하지 말고 집중해” 하는 잔소리가 쏟아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랴부랴 학원으로 향하는 일과의 반복, 엄마에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지만 “우리나라 중학생은 다 똑같아. 엄살떨지 마” 하는 핀잔만 돌아올 뿐이었다.
혹시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라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답답한 마음에 고민을 말해봤지만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새삼스럽지 않은 일로 뭘 그래!” 하며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친구들 앞에서 다빈이는 할말을 잃었다. 사실 공부만큼 어려운 것이 친구관계였다. 몇 명이 어울리다가도 그 안에서 다시 편이 나뉘기도 했고, 자기 앞에서 다른 친구 욕을 했던 아이가 다시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함께 웃고 떠들며 놀다가도 다른 곳에서 내 험담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너만 힘드냐? 죽을 용기도 없는 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를 맞았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힘겹게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시험, 시험, 또 시험. 학창시절이 끝날 때까지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학급 채팅방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일전에 친구들에게 빈축을 사긴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공감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설사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이라도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싶었다. 그런데 전혀 상상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질시와 조롱이 담긴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너만 힘드냐?”
“힘들면 죽든지. 죽을 용기도 없는 게.”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는지 알려줄까?”
다빈이는 친구들의 무지막지한 댓글에 시달렸다. 마치 공공의 적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학교에 가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뒤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친구들이 자기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교실에 앉아 있기조차 괴로웠다.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마저 서먹해졌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다. 잠을 못 자서 늘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너무 두려웠다. 이대로 잠들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칼을 보는 순간, 친구들이 댓글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알려준 게 떠올랐다.
손목에 가져다 댔다. 살짝 힘을 주었다.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고, 아프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피를 보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황급히 일회용 반창고를 붙였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이런 밤이 보름 이상 계속되었다. 학교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길에서 교복 입은 학생만 봐도 소름이 돋았다. 마치 그들이 욕을 하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하루종일 입 한번 열지 않고 앉아만 있다가 학교를 나서는 일이 많아졌다.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칼을 꺼내 손목에 대고 그었다. 옷, 방바닥, 책가방 여기저기 피가 묻었다. 겁에 질린 비명에 놀라 엄마 아빠가 달려왔다.
어쩌면 ‘누구나 거치는 학창시절인데 혼자만 유별나게 힘들어하는 것 아니냐’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귀하게만 커서 어려움을 모르는 게 문제’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약해 빠졌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나약하다는 말도, 이럴수록 고통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전에 아이가 왜 그토록 힘들어하는지, 무엇이 어렵고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에 대해 들어주는 것이 우선 아닐까.
자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몰라서’인 경우가 많다. 특히 다빈이처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감성적으로는 예민한 반면, 이성적인 판단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서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빈이가 그저 아파만 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에도 집중하려고 애썼고, 몸과 마음이 힘든 가운데도 학원에 빠지지 않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해보기 위해서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다빈이의 ‘외로운 사투’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친구들의 시선은 싸늘했고, 부모님은 공부 외의 이야기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빈이는 여러 번 시도했다. 한번은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 중학교는 초등학교랑 너무 달라.”
“그럼 중학교가 초등학교랑 같을 줄 알았니?”
엄마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이렇게 힘든 학교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지?”
엄마의 시큰둥한 반응에 기운이 빠진 아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짜증 섞인 질책이 날아들었다. “너만 힘든 것도 아닌데 엄마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만한 각오도 안 하고 중학생이 됐어? 그런 고민할 시간 있으면 방에 들어가서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워. 아휴, 답답해. 정말!”
잔뜩 화를 퍼부은 엄마는 빨래를 개다 말고 수건 몇 장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다빈이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냥 좀 힘들다고 말한 것뿐인데. 내가 하기 싫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힘들다는 거잖아. 힘든데, 정말 많이 힘든데, 힘들어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간 다빈이는 앞으로는 엄마에게 절대 속내를 털어놓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부터였다. 엄마가 무슨 말을 건네도 다빈이가 대답 없이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건. 그러다 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착한 딸이 뉴스에서나 접했던 자해를 했다는 사실은 부모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고 상처였다. 하지만 우선은 다빈이를 챙겨야 했다. 완전히 방전돼버린 다빈이는 계속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담실에 온 첫날, 바로 다빈이에게 병원치료를 권유했고 약물을 복용하면서 상담치료를 병행했다.
“친구들이 생각 없이 한 말이니 무시해버려. 왜 마음에 담고 힘들어하니?”
“친구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쓰지 마. 네 생각이 중요한 거야.”
“네가 좀더 강하게 대처했으면 좋았을 텐데…… 별거 아니야. 곧 괜찮아질 거야.”
선생님도 부모님도 안타까움에 한마디씩 전했다. 그러나 다빈이에게는 어른들의 위로가 또다른 나무람 같았다. 결국은 자신이 약하고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라며 자책할 뿐이었다. 자해를 하는 아이는 엄청난 삶의 무게를 지닌 불행한 아이일 거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종종 있다. 혹은 심리가 불안정하거나 너무 나약해서 그런 선택을 하는 거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창 예민한 시기에는 어른들이 별 뜻 없이 툭 던진 한마디에도 크나큰 상처를 받는다. 공감해주기를 기대했던 친구들의 가시 돋친 말은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긴다.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한 아이를 본 부모는 당황한다. 착하던 아이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반항하는지, 밝고 건강하던 아이가 왜 이토록 기운 없고 우울해하는지 알 수 없어 고민한다. 하지만 아이의 변화에 ‘갑자기’란 있을 수 없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는 매우 미약할 수 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신호를 놓치는 순간, 아이의 상처가 어떻게 터져버릴지는 모를 일이다. 내 아이는 다르다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안심하기 전에 아이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이경자 저 | 아우름
이 책에는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리고 혼자 힘들어하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 교사에게 아이의 마음속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추천처럼, 20여 년간 특수교사와 심리상담가 등으로 일해온 저자는 아동심리 전문가로서 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가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어주고,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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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아이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법, 교육법, 육아, 사춘기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그간 1천 여 명이 넘는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왔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조기교육실, 특수학교, 발달클리닉 등에서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용인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특수상담사로 학교부적응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라임오렌지나무아동청소년센터에서 상담실장으로 재직하다 현재는 분당에 위치한 이경자심리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시형 박사가 운영하는 '세로토닌 키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경자> 저12,420원(10% + 5%)
아이가 자라면서 천사 같기만 하던 내 아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귀찮을 정도로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묻는 말에 대답은 고사하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린다. 분명 내 아이인데,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야기를 건넨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