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와의 만남
10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인문학 도서가 출간됐다.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교수들이 공동 집필한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이 그 주인공이다. 문턱은 낮추고 깊이는 더한, 인문학 전반에 걸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인문학과 처음 만나는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인지,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인문학에 접근해야 하는지,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차근차근 들려준다. 청소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설명과 흥미로운 예들이 펼쳐지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교수들이 직접 저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 에서는 미학과 사학, 영문학, 독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저자들이 들려주는 문학, 역사, 철학, 신화, 언어학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김용민 교수
지난 3월 29일,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의 저자들은 ‘10대, 인문학의 눈으로 꿈을 디자인하라!’는 주제로 인문학 특강을 진행하며 독자들과 만났다.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강연에는 다섯 명의 저자들 중 김용민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와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윤주옥 교수, 이혜민 교수, 이전경 교수가 함께했다.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 안에서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신화에 대해 들려주었던 김용민 교수는 ‘10대들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김용민 : “인문학이 기술을 만나고, 현실과 상상이 연결되고, 예술과 기술이 결합되는 시대가 점점 더 빨리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틀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아직까지 한 번도 만들어진 적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발상, 새로운 접근,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력, 창조력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탄탄한 지식과 교양이 바탕이 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할 때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고, 이것을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틀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것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용민 교수는 인문학에 대해 ‘인간의 정신적 측면 전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 궁리하고, 인간을 둘러싼 대상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저자는 최근 들어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원인에 대해 진단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지만 반대로 인간적인 가치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 결과 ‘물질적인 풍요가 곧 행복’이라는 기존의 생각에 회의를 느끼게 된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 끝에서 사람들은 인문학을 통해 해답을 구하고자 했다.
김용민 : “인문학은 문학을 통해서, 철학적인 성찰을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수많은 본보기를 들려줍니다. 인문학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삶의 목표를 무엇으로 삼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가게 만들어 주죠.”
김용민 교수는 ‘인문학의 고전이란 인간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성찰과 지혜를 담고 있는 글’이라고 말하며, 그 지혜를 배우는 것이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라게 한다고 했다. 그것이 곧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사고와 경험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 질문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생겨나는 것임을 지적하며 강연을 마쳤다.
김용민 : “세상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인 경험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행을 하거나 사람들과 만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세상을 깨우쳐가고,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한 것이죠. 이상의 것들이 직접적인 경험이라면 간접적인 경험은 인류의 지혜가 쌓인 고전을 읽는 것입니다. 고전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지식은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윤주옥 교수
‘나는 누구일까’ 문학과 역사 안에서 해답을 찾다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을 통해 ‘문학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힘’이라고 말한 바 있는 윤주옥 교수는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시간과 감정, 사유를 투자할 때 비로소 문학을 통해 나와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확장하는 경험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이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를 인물의 입장에서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문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 돼요.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72쪽)
윤주옥 교수는 문학 작품을 주관적으로 읽기 위해서 등장인물이 되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작업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자란 탓에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여유를 잃어버린 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시켜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터득한 방법을 공개했다.
윤주옥 : “일단은 아이와 같이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작품에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질문하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인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문장은 무엇이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을 계속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정답은 없고 다양한 해석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만약 부모님께서 아이와 같이 작품을 읽었다면 공감대를 만들어주세요. 책을 읽은 느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거죠. 만약 아이가 책을 잘 읽지 않는다면 비슷한 주제를 가진 다른 장르의 작품을 찾아주세요. 영화를 함께 볼 수도 있겠죠.”
저자는 자유롭게 감상을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 문학의 역할은 이러한 자기 수용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과 세상을 포용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타인을 받아들이게 되고, 조금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의 저자들과 함께한 인문학 특강의 마지막은 이혜민 교수의 강연이었다. 역사학자인 그녀는 “효과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는지를 아는 것이다”라는 영문학자 에드워드 멘델슨의 말을 빌려, 청소년기에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를 앎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설계를 그려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역사를 알기를 원해요. 과거로부터 모범이나 교훈을 찾을 수도 있고, 여러 다양한 간접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도 있으며, 마음과 정신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거든요. 한마디로 현재에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역사는 죽은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죽어가는 역사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망각으로 한걸음 다가서는 행위인 동시에, 과거에 바탕을 두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과거가 없다면 미래도 없기 때문이죠.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90~91쪽)
이혜민 교수
저자는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역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문학이 가진 특징이라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탐구 역시 문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공부를 통해 얻어지는 수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혜민 : “역사에서도 개인과 가족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나의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단순한 가족의 역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같이 공유하는 집단 경험이 있죠. 그렇게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 즉 지역이나 국가, 민족의 정체성까지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는 국가를 넘어서서 세계화 시대의 우리들의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단순한 국가 단위의 역사로는 불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리고 국가 단위의 역사에만 집착하게 되면 최근의 일본처럼 국가 이기주의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혜민 교수는 역사를 앎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청소년 시기의 역사 공부가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확인된 사실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민 : “역사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학문이죠.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팩트가 정말 팩트인가’ 라는 것입니다. 사료라는 것 자체도 편향적인 관점에서 쓰인 것들이 많기 때문에 팩트가 확실한지를 먼저 알아야 하죠. 그렇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관점이나 정치적 입장, 사회적인 계급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10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확인된 사실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 청소년기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고 볼 때, 학생들은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자신들이 행동해야 되는 역사적인 모델을 찾을 수 있죠.”
이전경 교수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의 강연회를 통해 김용민 교수는 “인문학적 소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용민 교수를 비롯한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교수들이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도서를 출간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간 이의 성공과 실패, 고뇌와 선택, 그 모든 경험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확실한 지표가 되어주는 것은 없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인문학과 만나게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인문학의 전 분야에 걸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역사적인 인물과 사상, 예술 작품에 대한 소개는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0대에게 권하는 인문학』과 함께라면 어렵지 않게 인문학과 첫 대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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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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