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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비밀 친구,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
아이는 무엇을 상상할까?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 소소하게 함께 놀며 지켜주는 누군가 아닐까?
토토로는 고양이버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멋진 모험을 시켜주고 메이가 무엇이든 종알대도 함박웃음으로 받아주고 넉넉하게 품어준다. 어른들에게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은 둘만 아는 '비밀 친구'이다.
요즘 틈만 나면 멍해지곤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리라. 설명하기 힘든 무력감과 아득한 슬픔, 분노와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이 불시에 찾아들면, 나는 아직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울게 되는 영화를 다시 보는, 그런 나날들이다. 이를테면 <이웃집 토토로>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외로운 아이의 이야기다. 네 살짜리 메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간다.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오래된 집에서 아빠, 언니와 함께 산다. 메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는 몸이 아파 병원에 계신다. 아빠는 직장에서 늦게 퇴근하거나 서재에서 공부하느라 바쁘고, 열 살배기 언니 사츠키는 속 깊고 착하지만 낮에는 학교에 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메이는 종일 혼자 지내야하는 네 살인 것이다.
유년 시절의 하루는 이상하게 더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길고 긴 하루 동안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심심한 소녀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제일은 상상하기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무엇을 상상할까?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 소소하게 함께 놀며 지켜주는 누군가 아닐까? 거기에 생각이 미쳤을 때 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토토로는 전설 속의 요정이다. 사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지만, 어쩐지 아저씨일 것만 같다. 그는 사람이 살기 훨씬 전인 머나먼 옛날부터 숲 속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2미터가 넘는 커다란 체구에 털투성이인데, 잘 보면 고양이와 부엉이와 너구리, 곰을 섞어놓은 듯 귀엽고 정감가게 생겼다. 조용한 것을 좋아해 숲 속 동굴에 은둔해 살고 호기심 많고 따뜻한 성격을 지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수한 어린이의 눈에만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메이는 토토로와 친구가 된다. 토토로는 고양이버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멋진 모험을 시켜주고 메이가 무엇이든 종알대도 함박웃음으로 받아주고 넉넉하게 품어준다. 어른들에게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은 둘만 아는 '비밀 친구'이다.
아이가 어른과 ‘비밀 친구’가 되는 이야기라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브라질 작가 J. M. 데 바스콘살로스의 동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다섯 살 아이 제제와 이웃의 뽀르뚜가 아저씨가 나누는 특별하고 깊은 우정을 다루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 제제는 감수성이 유난히 뛰어나고 예민한 소년이다. 그러나 제제의 현실은 힘들고 고달프다.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고, 여섯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온 엄마는 생계를 위해 여전히 힘든 노동을 한다. 누나들도 학교 대신 공장에 다녀야 한다. 그런데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고 그들은 매일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아버지는 소년을 자주 두들겨 패고, 소년을 안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라임오렌지 나무와, 이웃의 뽀르뚜가 아저씨뿐이다. 세상에 대해, 사랑에 대해, 기쁨에 대해, 슬픔에 대해 아이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였다. 제제가 뽀르뚜가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오래 끅끅대며 울었는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생생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메이와 제제인 줄로만 알았다. 마음 깊은 곳에 아직도 아이가 들어있다고 믿었다. 누가 어린 나를 안아주고 도닥여주기만을 바랐다. <이웃집 토토로>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다 허구의 서사이다. 메이나 제제가 다큐멘터리 속의 아이가 아니라 영화나 소설 속의 아이라서 다행이라고 하기엔, 우리 현실이 너무 아프고 먹먹하다. 외로움과 결핍 없이 완벽히 행복하기만 한 유년시절이란 실제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토토로나 뽀르투가 같은 어른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이다.
이 설명하기 힘든 무력감과 아득한 슬픔, 분노와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이제 내가 누군가의 속 깊은 ‘비밀 친구’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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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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