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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전염병, 갑자기 왜 화제일까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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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러니까 4월 22일 포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로 ‘바나나 전염병’, ‘바나나 바이러스’ 등이 순위에 올랐다.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자마자 한국의 여러 언론이 기사를 쓰기 바빠졌다. 사실 원래 기사라고 한다면 ‘시의성’이 중요할 텐데, 바나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소식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파나마병은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바나나 바이러스가 화제가 된 건 미국 경제 전문 채널인 CNBC가 보도하면서인 듯하다. 언론 기사 대부분이 CNBC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파나마병, 바나나 바이러스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포털 검색보다는 책 한 권을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름도 외우기 쉽게 『바나나』다. 바나나를 검색하면 보통 요시모토 바나나가 나올 수도 있으므로 저자 이름까지 알아두는 게 좋다. 댄 쾨펠이 썼고, 이마고에서 나왔다.

 

바나나

 

바나나는 노랗고 길다. 싸고 맛있다. 탄수화물 덩어리라 바쁜 직장인의 아침, 저녁으로 활용도가 높다. 필자도 한때 바나나바라기였다. 때는 1년 전. 터질 것 같은 팔 근육을 만들어 보고자 무려 1년짜리 헬스장 이용권을 끊고 만다. 다시 생각해 보니 꼭 저 이유 때문은 아닌 듯하다. 근육을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보다는 더는 늘어나는 뱃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그러니까 한여름에 나시티를 입어야겠다는 욕망보다는 갈비뼈 아래로 내려온 지방 덩어리의 지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게 헬스장을 등록한 계기였다.

 

초반 3달 정도는 열심히 운동했다. 바나나와 함께. 하루는 바나나를 먹고 헬스장에 갔다. 다른 날에는 헬스장에 간 뒤 집에 와서 바나나를 먹었다.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서 헬스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다음 날 변에서 바나나 향이 나길 기대했건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바나나를 먹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바나나와 즐거웠던 한 시절을 보낸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바나나는 많은 사람이 즐기는 과일이니. 애석하게도 가까운 시일 내, 어쩌면 조금 먼 미래에 바나나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파나마병 때문이다. 이미 보도로 접했겠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먹는 캐번디시라는 종은 파나마병에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바나나를 이해해야 한다.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꺾꽂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또 다른 바나나를 만든다. 우리가 먹는 바나나가 유전적으로 모두 쌍둥이인 셈. 전부 똑같다는 말은 전부 병에 걸리기 쉽다는 의미다. 세계적으로 널리 먹는 바나나가 한순간에 없어진다니. 공상만화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렇게 사라진 적이 있다. 그것도 최근이다.
 
1960년대에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는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 다르다. 지금의 캐번디시의 역할을 그로미셸이 담당했다. 단어에서 추측할 수 있듯 그로미셸은 케번디시보다 더 크고 껍질이 단단해 운반도 편했으며 당도도 진했다. 그렇다면 왜 그 미셸보다 못한 캐번디시를 현재 인류가 먹고 있을까? 파나마병으로 그로미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파나마병은 세계 각지에서 서서히, 또는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세계에는 캐번디시 외 야생종까지 합하면 1,000종의 바나나가 있다. 한때 이들 종간 교배에 희망을 걸었으나, 현재 유일한 희망은 유전공학.
 
책에는 대충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이 원래 쓰여진 게 2008년, 한국에 소개된 때가 2010년이다. 그 뒤로도 파나마병에 맞설 종을 새로 개발하지 못한 듯, 포털 검색어에 ‘바나나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아마도 쉽지는 않을 테다. 앞서 말했듯,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에 전염병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바나나를 상품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로 야생 바나나의 대부분이 껍질이 너무 단단하다거나, 당도가 적거나 하는 등으로 상품화하기에 무리가 있다.

 

바나나 외에도 이미 인류는 여러 동물, 식물이 멸종하는 장면을 봤다. 그런데 바나나 멸종은 인류에 의미하는 바가 다소 크다. 바나나는 미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과일이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식량난을 해결해 주는 고마운 과일이기도 하다. 보통 과일과 달리 바나나에는 탄수화물이 매우 풍부하다. 세계적으로 바나나보다 소비량이 많은 건 밀, 쌀, 옥수수밖에 없다고 하니 먹거리로써 바나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런 바나나를 우리 후손들은 『한때는 잘나갔던 지구의 생명들』이라는 책에서나 볼지도 모르겠다. 마치 공룡처럼 말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것은 사과인데, 사과는 맛있으니, 맛있는 건 바나나, 하고 노래 불렀던 우리와는 다르게 앞으로 태어날 인간은 저 노래의 가사를 비틀어 부를지도 모른다. 바나나를 먹었던 선생님은 바나나를 정답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냈건만, 다른 답을 쓴다면? 답안지 채점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밖에 저자가 소개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 아담이 먹은 과일은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성서가 탄생했던 중동 지역은 사과를 기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바나나는 흔했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쓰인 성서에는 선악과가 사과였다는 언급은 없다. 바나나의 외설적인 모습(?) 때문에 성서 번역 과정에서 선악과를 바나나 대신 사과로 묘사했다는 설도 있다.


* 냉장 설비를 갖춘 선박이나 CA 저장법 등은 바나나를 상품화하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다. 바나나가 없었다면, 과일 산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남미의 정치적인 불안정성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바나나로부터 생겼다. 1928년 콜롬비아 대학살은 바나나 농장 노동자의 파업으로 시작한 참극이었다. 당시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반대하며 파업했다. 1950년대 과테말라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는 바나나 회사와 싸우다 정권을 잃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사정은 이랬다.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은 UFC라는 바나나 회사에 맞서 민족주의적인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바나나 회사의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은 고국으로부터 추방당한다. 그가 내세운 조건은 합리적이었다. 바나나 회사가 과테말라에서 취한 이득에 정당한 세금을 낼 것, 과테말라 법을 준수할 것 등이었다. 특히 토지 문제가 심각했다. 과테말라 경작지의 70%를 바나나 회사가 소유했는데, 이 땅 대부분을 놀렸다. 파나마병이 휩쓸고 간 이유도 컸다. 바나나 회사는 파나마병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뒤 다시 활용할 계획이라 땅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바나나 회사와 미국 정부는 하코보 아르벤스를 반대하였고, 결국 대통령은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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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댄 쾨펠 저/김세진 역 | 이마고
『바나나』는 누구나 즐겨 먹는 노란색의 과일, 바나나가 얼마나 특별한 과일인지, 어떤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댄 쾨펠은 2003년 바나나에 퍼진 치명적인 질병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 ‘바나나를 구하자’는 일념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3년 동안 온두라스, 에콰도르, 중국, 벨기에 등 전 세계 바나나 농장과 바나나 연구소들을 찾아다니며 바나나의 기원과 신화, 역사와 지리,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과학 등 모든 것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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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바나나

<댄 쾨펠> 저/<김세진> 역13,500원(10% + 5%)

바나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바나나』는 누구나 즐겨 먹는 노란색의 과일, 바나나가 얼마나 특별한 과일인지, 어떤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댄 쾨펠은 2003년 바나나에 퍼진 치명적인 질병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 ‘바나나를 구하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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