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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친구, 우정 타령? 평생 할 걸?!

『우정 지속의 법칙』 을 읽고 친구를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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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청소년문고를 읽는다. 다시 사춘기를 겪고 있어서? 설마~. 성인 소설 못지않은, 아니 더 깊은 사유를 안겨주는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목과 표지에 꽂혀 읽게 되는 책들은 대부분 실패하지 않는데, 소설가 설흔의 『우정 지속의 법칙』 도 그러했다.

토이의 4집 앨범 『A Night In Seoul』 은 내가 무척 아끼는 음반이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라는 명곡이 담긴 앨범, 수록된 곡들의 제목만 쭉 읊어도 마음이 철렁한다. 14곡 리스트 중, 내 마음을 훔쳤던 노래는 「혼자 있는 시간」.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마지막 가사, 단 하나의 문장 때문이었다. ‘손 내미는 법 잊은 사람들’. 내가 꽂힌 단어는 ‘손, 내미는, 법’이었다. 이 날 이후로 나의 모든 블로그, 미니홈피, 카페의 이름은 ‘손 내미는 법’이 되었다. 출생 년도 순으로 part1, part2, part3 이라는 유치한 타이틀을 보태면서.


출퇴근길에 『우정 지속의 법칙』 을 읽으며, 문득 버리다시피 한 블로그 제목이 생각난 건, 아마도 내 마음이 많이 찔렸기 때문이다. 결혼 후 인간관계가 재편된다는 말을 심각하게 신뢰하진 않았지만, 관계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줄은 건 사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통화를 했던 친구라도 사는 곳이 멀어지면, 입장과 상황이 달라지면 ‘우리가 언제 친했더라?’하며 갸우뚱거린다던데, 시답지 않은 수다를 떨던 친구의 단축번호가 이제 가물가물하다.

작가 설흔은 『우정 지속의 법칙』 을 쓰게 된 까닭을 서문에 자세히 밝혔다. 중3 조카 녀석이 갑작스레 꺼낸 질문 “삼촌, 난 왜 친구가 없을까?”에서 작가는 중학교 시절, 둘도 없는 단짝을 떠올렸다. 자연스레 소원해져 거리감이 생겼던 그 친구는 어느 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작가는 그간의 작품에서 친구를 다시 살리기도, 친구와 자신의 상황을 교묘히 바꿔 놓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양심의 가책(나의 거절이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른다는)을 해소하길 원했다. 작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라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그 순간,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책상 위의 연필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저 혼자 힘으로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 연필을 보며 내가 왜 하필 우정에 관한 글들을 모았던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 친구가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이제 금침으로 자신의 얼굴을 수놓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얼굴을 내가 품에 안아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요 몇 해 동안 그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하려 했습니다. 친구는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믿으려 했습니다. 내 전략은 성공한 듯했지요. 내 나름대로 즐겁게 살았고, 그 친구를 거의 잊은 듯했으니까요. 아니었습니다. 나는 단 한시도 그 친구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저 잊은 척했을 뿐입니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 그 하나뿐입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 p.17)
설흔은 조카와 대면해 상담을 해주는 대신, 우정을 지속하는 법칙을 생각해냈다. 친구에게 처음 다가가는 방법부터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 등 친구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고전 속 옛사람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작가 설흔이 ‘관계의 시작’을 위해 제안한 방법은 첫째, 불쑥 찾아가기. 둘째, 줄기차게 만나기. 셋째, 둘만의 것을 공유하기 등이다. 친구에게 불쑥 찾아갈 수 있는 용기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두 주인공 윌과 마커스 사이에서,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와 박지원의 일화에서 힌트를 얻는다. 설흔은 조카를 위해 아니, 하늘에 있는 친구를 위해 『우정 지속의 법칙』 을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책을 완성했다.


갑자기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모든 잘못과 어리석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나는 구제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카 녀석이 혼자 내린 결정과 내 구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김교각과 박지원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사실을, 아니 실은 내 소중한 형이 손을 내밀어 주었고 조카 녀석이 나를 끌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다시 ‘우정 지속의 법칙’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 p.184)

모든 우정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도 말하렵니다. 우정이 끝나는 순간에 비로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중략) 내 친구는 오래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와 친구의 우정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는 내 인생 내내 나와 함께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얼치기 작가라도 된 것은 어쩌면 친구 덕분이지도 모릅니다. 여태껏 나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제 나는 친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 p.203~204)
누군가는 책을 펼치고 의문을 던질지 모른다. 이토록 우정을 지속하는 방법이 간단하지 않다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되나? 사실, 딱히 그렇게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말이지?! 『우정 지속의 법칙』 은 ‘법칙’을 말하고 있지만, 이 법칙을 따르라고 말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른 친구 녀석에게 전화 한 통을 걸기까지, 그 망설임을 조금 짧게 만드는 유연제다.

요즘, 내가 유일하게 본방 사수하고 있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곧 종영한다. 이토록 서정적인 제목을 드라마 제목으로 쓰다니! 낯설었지만 반가웠는데, 마지막 회를 앞두고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여지없이 마음에 꽂힌다, 찔린다. 진심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손 내미는 법도 까먹었다. 내밀어야 해? 잡아야 해? 고민하는 시대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같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이 느껴진다면 뿌리칠 수 없다. 우정 따위는 고민할 여력도 없다고?! 하지만, 후회할 걸? 세상을 떠날 때, 남는 건 오로지 ‘사람’뿐일테니. 솔직해 보자. 혼자 사는 거,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지 않은가?


설흔의 또 다른 저서들


언제 생길지도 모를, 나의 2세가 청소년기를 지날 때, 무심하게 건네고픈 책들이 있다. 『우정 지속의 법칙』『열려라, 인생』, 『관점의 힘』 등이다. 만약 아들이라면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 딸이라면 『미래에서 온 편지』,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를 꼭 손에 쥐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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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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