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물려주어야 할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지난 편도 딸 얘기더니 이번 편도 아이 얘기냐, 라는 독자들이 있을 법도 하다. 이러다 칼럼 ‘솔직히 말해서’의 장르가 육아로 옮겨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설마 그럴 리가. 다음 차례엔 반드시 다른 주제로 찾아 오겠습니다.
작년 10월에 애 엄마가 된 나는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태교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일기 등을 쓰지도 않았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는 성장 앨범 촬영도 생략했다. 훗날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은 건 이벤트가 아니라 하루하루 지나는 일상이기 때문이라면 변명처럼 들릴까. 아이가 태어나고 정신을 추스른 다음부터 육아일기를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음 먹긴 했지만, 사실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대체 다들 언제 시간을 내어 사진을 찍고 육아일기를 쓰는 건지!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기사에 따르면 일하는 엄마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가사 노동하는 데 쓰고 있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거의 내지 못 하고 있단다. 엄마가 회사 업무와 가사 노동에 허덕이며 아이의 일상을 기록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신, 아이 아빠(그러니까 남편)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스마트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듣기로는 태어난 이후 5개월 동안 찍은 사진만 1,500여 장이라나. 잘 찍어보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까지 하더니, 매일매일 폐쇄형 SNS에 사진을 올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아이의 모든 순간 순간을 기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겠지만, 이제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몰입 중이다. 엄마가 아이를 재우느라 애를 쓰고 있을 때도,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히는 순간에도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들이미는 이 상황이라니, 대체 사진이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 먹었다. 집착적일 정도로 아빠의 애정이 담뿍 담긴 이 사진들이 훗날 아이에겐 추억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몽각의 『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는 작가의 큰딸 윤미가 태어난 순간부터 자라나는 순간을 담은 사진집이다. 한 가족의 일상을 꾸준하고도 성실하게 담아낸 이 사진집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입으로 회자되며 사랑받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딸바보 전몽각과 그의 딸 윤미의 사진이 표지에 실려있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사진을 찍는 일은 서서히 줄어들기 마련인데, 딸의 데이트까지 쫓아가 사진을 찍은 이 아버지의 끈기와 집착(?)이 바로 이런 보물 같은 사진집을 만든 것 아니겠는가. 기왕에 1,500장의 사진을 찍은 아이 아빠에게 이 사진집을 보여주며 그 끈기를 2~30년 후까지 발휘해보라고 할 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이 모여 이처럼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라고 격려하면서.
그나저나 아이 사진을 찍는 아빠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이 눈물나도록 애달프고 사랑스러운 사진집의 말미에 실린 전몽각의 부인 이문강의 후기를 보면 이런 얘기가 실려 있어서 그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 때나 카메라를 들이밀 때도 저러다 말겠지 하고 근근이 참았는데 이제는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하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쪽)
한 사람의 성실하고도 정성스런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되는가 보여주는 책 한 권이 더 있다. 꾸준히 육아일기를 써서 물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기도 한 책인데,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가 바로 그것이다. 좋은 동화책이 없어서 직접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고 4녀 1남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이 책에는 자식을 키우면서 느꼈던 고단함과 기쁨이 그대로 묻어난다. 꾹꾹 눌러쓴 글씨는 단아하고 한 장 한 장 수채화로 그려 넣은 그림들은 정갈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그림책을 받아본 아이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훗날,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재산과 같은 물질적인 것을 물려줘야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형의 가치들이 아닐까 한다. 한껏 사랑받았다는 기억이나 고난이 닥쳐와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한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윤미네 집』이나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같은 자신에 대한 애정어린 기록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그 어떤 재산보다 소중한 것을 물려받았다는 충만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두 권의 책을 읽고 그간 팽개쳤던 블로그를 조심스럽게 열어 몇 글자 적어본다. 자라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다 보면 나중에 ‘이만큼 너를 사랑했단다’라고 해줄 얘기도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란 작은 기대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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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아이, 전몽각, 윤미네 집,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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