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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앤 클라이드> 에녹, 이 남자에 주목하자

“한 방이요? 계단이라는 계단은 다 밟고 올라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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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유독 돋보이는 역할이 있습니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코믹연기로 극에 양념을 치거나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드러내거나 남성미를 물씬 풍기며 여심을 사로잡기도 하죠. 지난해 연말 뮤지컬 <카르멘>에서도 남녀 주인공을 넘어 악독한 가르시아가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당시 가르시아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에녹 씨는 그 여세를 몰아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 클라이드로 숨겨진 남성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유독 돋보이는 역할이 있습니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코믹연기로 극에 양념을 치거나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드러내거나 남성미를 물씬 풍기며 여심을 사로잡기도 하죠. 지난해 연말 뮤지컬 <카르멘>에서도 남녀 주인공을 넘어 악독한 가르시아가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당시 가르시아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에녹 씨는 그 여세를 몰아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 클라이드로 숨겨진 남성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절, 좀도둑질을 하며 감옥을 들락거리던 클라이드는 꿈 많은 웨이트리스 보니와 함께 신문 1면을 장식할 강도 행각을 벌이며 한때의 짜릿함을 만끽하는데요. 건장한 체격에 복고풍의 수트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에녹 씨는 이번 무대에서도 단연 눈에 띕니다. 요즘 절찬리에 주목받고 있는 이 배우, 직접 만나 봐야겠죠? 

 

보니앤클라이드에녹

 

 

“재밌게 보셨으면 다행입니다. 초반에 무대에서 신발 굽이 떨어져서 무척 당황했어요. 관객들이 눈치 못 채게 하느라고 애먹었거든요.”

 

에녹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노련한 배우인가 봅니다. 신발 굽이 떨어진 것도, 그가 당황하고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거든요. 그나저나 분장을 지우고 말간 얼굴로 무대에서의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있는 에녹 씨는 폼 잡던 클라이드와는 꽤 달라 보입니다. 에녹에서 클라이드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클라이드와 비슷해요. 기존에는 인물을 분석하고 자료를 찾고 '이런 인물일 것이다’라는 판단 하에 조금씩 가까워졌다면 이번에는 캐릭터를 제 안으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따로 인물화를 하려고 했더니 호흡도 안 맞고 잘 모르겠더라고요. 클라이드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저의 20대를 돌아보니 총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치기 어린 마음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감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말투나 화내는 방법, 당황하는 모습 등이 모두 저예요.”

 

그래서일까요? 클라이드는 건달, 강도, 넓게 보면 악역의 범주 안에 들 텐데, <카르멘>의 가르시아와 달리 클라이드에게서는 그런 이미지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연출님도 그걸 요구하셨어요. 초연 때 클라이드가 마초적인 캐릭터로 사회에 대한 반항을 드러내는 일괄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입체적인 모습을 원하셨어요. 가르시아는 자기만의 법칙과 세계가 뚜렷한 인물이지만, 클라이드는 아직 법칙이고 뭐고 없는, 날것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20대에 얼마나 경험이 있겠어요. 스스로는 최고라고 생각해도 결코 멋질 수 없는 나이거든요.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기에는 아직 어린, 상황마다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인물로 그려냈어요. 그래서 인물 자체의 매력이 덜할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 극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면 훨씬 잘한 게 아닐까 싶어요.”

 

<보니 앤 클라이드>의 경우 여느 뮤지컬과 달리 유난히 애정 표현 장면이 많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초연 때는 훨씬 많았다고 해요. 너무 과해서 실질적인 드라마의 진행을 방해할 수도 있고, 정말로 감정의 깊이가 커져서 나누는 키스에서 감동이 덜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많이 걷어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 연습할 때는 힘들었어요. 프로필 촬영 현장에서 처음으로 오소연 배우를 만났거든요. 일면식도 없는데, 만나자마다 뽀뽀를 하라는 거예요(웃음). 정말 힘들었죠. 연습실에 와서도 한 일주일은 낯을 가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의 특성상 키스 신이 안 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질 못해요. 그래서 ‘마음 편할 때 얘기해 다오.’ 말을 건네고, 한 번 운을 떼고 나니까 편해지더군요.”

 

보니앤클라이드에녹

 

 

키스 신은 물론이고 클라이드도 상체를 노출하다 보니 관객들 모두 에녹 씨의 근육질 몸매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 무대를 위해 따로 운동을 했는지 ‘강도 높게’ 캐물어봤습니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정도는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연습하면서 힘들었는지 살이 좀 많이 빠졌고요. 요즘 몸 좋은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그냥 조명을 잘 받아서(웃음).”

 

클라이드와 보니는 첫 눈에 반해 열정적으로 사랑합니다. 실제로 이런 경험이 있을까요?


“저는 없어요. 길게는 몇 개월 알고 지내다 어느 순간 어떤 매력이 보이면 바로 돌진하죠. 그런데 제가 만났던 분들은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 특징이 다 달라요. 동일한 점이 있다면 어떤 한 모습에 반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에 흔쾌히 희생하는 모습이나 가치관이 예쁘게 보일 때? 그런 모습에 ‘훅’ 가면 바로 돌진하죠.” 

 

가치관만 보고 외모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긴가요?


“아휴, 왜 없겠어요. 그렇게 말하면 너무 거짓말이죠(웃음).”

 

에녹 씨 외에도 엄기준, Key, 박형식, 장현승 등 5명이 클라이드로 캐스팅됐습니다. 다들 브라운관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위기감 같은 건 없었나요?


“대부분 초연 때 클라이드를 했던 분들이라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분보다 연습을 더 많이 할 수 있었고 많이들 도와주셨고, 특히 기준이 형님 같은 경우는 연기적인 호흡이 굉장히 좋아서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주연이다 보니까 걱정은 됐어요. 사람들이 날 모르는데 안 보러 오면 어쩌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서 그 걱정은 사라졌고, 많이 안 오시더라도 진실된 연기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않나 생각하고요.”

 

가르시아에 이어 클라이드로 남성미가 돋보이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분장을 지운 에녹 씨의 얼굴은 ‘교회 오빠’에 어울릴 선한 이미지입니다. 쏟아지고 있는 관심이나 인기는 실감하고 있는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으로 좋은 평들을 보고, 또 제가 지금 클라이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감사한 일이구나 생각하죠. 제 이미지 때문에 처음 공연할 때는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무대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남성이나 강한 이미지의 역할이 많거든요.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제 안에 있는 것들은 많이 다릅니다(웃음). 평소에도 조용한 편이고 뒤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제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밀고 나가는 편이예요. 그 강도가 심해서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질 정도로.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인물에 다가서는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역할이 주어지면 돌진하거든요.”

 

보니앤클라이드에녹

 

 

‘한 방’을 원하는 클라이드와 달리 스물아홉에 데뷔한 에녹 씨는 답답하도록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습니다. 올해 나이 서른다섯, 이제야 타이틀 롤로 대극장 무대에 섰습니다.


“정말 계단이라는 계단은 다 밟고 올라온 것 같아요(웃음). 두 계단 세 계단 한꺼번에 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이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죠. 그래서 작품을 할 때면 좀 절박하게 했던 것 같아요. 이 무대가 오디션이라는 생각으로 너무 빡빡한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뮤지컬에 대해 잘 모르니까 연출님이나 선배들 붙들고 물어보고, 어떻게든 맡은 캐릭터에서는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요. 쉴 때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내가 배우가 맞나, 이 일을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을까 힘들고 걱정도 많이 했죠. 그런데 기다리고 버티니까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또 한 계단 한 계단 밟아온 덕분에 역할이 주어졌을 때 두려움 보다는 뭔가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이번 공연에는 <보니 앤 클라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새로 만든 뮤지컬 넘버 ‘내일이 올까’가 더해졌습니다. 보니와 클라이드에게는 없었지만, 오랜 시간 땀 흘리며 달려온 에녹 씨에게는 희망하는 내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클라이드를 하고 있지만 실력이나 배우로서의 센스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배우의 모습이 있다면 지금 한참 달려가고 있고, 올해는 좀 더 그 모습에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주연으로 승승장구하고 어떤 면을 어필해서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내실을 다져서 어떤 역할을 하든 믿음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정답인 것 같아요, 좀 더 믿음이 가는 배우! 그리고 멋진 남자 주인공도 좋지만, 좀 더 나이가 들면 사랑이 듬뿍 담긴 아버지 역할은 꼭 해보고 싶고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이 배우가 정말 한 계단 한 계단 성실하게 밟아 왔다는 것을 느낍니다. 겸손하지만 자신감이 묻어나고, 예의를 갖추되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피력하는 모습에서 밝고 앳된 얼굴 뒤에 숨겨진 경험과 나이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올 한 해 성큼성큼 걸어갈 에녹 씨, 주목할 배우가 분명하네요! 1967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는 1930년대 미국에서 실존했던 커플의 영화 같은 스토리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것이 미화될 수는 없겠지만, 비록 내일이 없더라도 오늘 하루를 영화처럼 멋지게 살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 않나요? 그 불안하지만 짜릿한 순간을 즐기는 클라이드와 보니에는 각각 엄기준, 에녹, Key, 박형식, 장현승, 가희, 오소연 씨가 캐스팅돼 색색의 다른 러브스토리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6월 29일까지 BBC아트센터 BBC홀에서 공연될 예정입니다. 

 

 

보니앤클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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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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