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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저/이혁재 역 | 재인
그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는 서점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저자가 되었다. 다작 작가로서 끊임없이 새 이야기를 쏟아 낼 뿐 아니라, 『용의자 X의 헌신』 이전에 썼던 여러 작품들이 시간을 거슬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번에 출판된 『명탐정의 규칙』도 1996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주간문춘 걸작 미스테리 베스트’에 선정된 작품이고, 2009년 아사히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추리소설의 미덕은 ‘그럴듯한 일이 예측할 수 없게 펼쳐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당연한 요건을 갖춘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럴듯한 일이긴 한데 트릭이 허술하거나, 예측할 수 없던 결말이었으나 억지스러운 설정이었다는 식이다. ‘한번 손에 쥐면 놓을 수 없는 책’이라는 말은 두 가지 경우를 의미하는데,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경우와 이제껏 읽은 것이 아까워서 끝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경우다. 적어도 200, 300페이지가 되는 추리소설은 전자의 경우라면 행복하겠으나, 후자의 체험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의 많은 소설이, 추리소설의 미덕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이다. 그 역시 사건의 기본이 되는 밀실, 독극물, 암호 등의 일반적인 설정으로 추리를 주조해 나가지만, 그의 소설에는 추리 못지않은 드라마가 있다. 추리소설의 마지막 장이 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경악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떻게?’보다 ‘왜?’에 초점을 두어, 탄탄한 서사를 만들고, 피해자 혹은 피의자의 입장에서 충분한 드라마를 뽑아낼 뿐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트릭의 의외성으로 독자를 놀래킨다(여기에는 그가 전기공학 전공의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는 문학도들이 알 수 없는 세계의 일들을 종종 소재로 가져온다). 그의 소설이 주는 이러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즐거움에 많은 독자들이 그의 팬을 자처한다.
그의 추리소설이 책장의 한 칸을 서서히 잠식해 나갈 즈음,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도대체 이 왕성한 창작욕은 어디에서 솟아나는 거냐고. 매일 아침 뚝 하면, 착, 하고 새로운 트릭이 그대 머리 위에 먼지처럼 떨어지는 것이냐고. 대체 만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기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는 것이냐고. 그러니까, 추리소설 쓰는 게 그렇게 재미있느냐고.
마치 『명탐정의 규칙』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답을 들은 기분이다. 나에게 건넨 말이라기보다는 자조 어린 혼잣말 같은. “계속해서 추리소설을 쓰는 일이란 만만치 않단 말이지. 독자들의 수준은 높아져 가고, 더 이상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없어만 보여. 쏟아져 나오는 추리소설들은 한정된 트릭을 그저 반복해대. 인물들을 별장이나 산장에 모아 놓고 폭설이라느니 다리가 끊겼다는 식의 뻔한 밀실 트릭, 다잉 메시지를 남길 기회가 있었다면 범인의 이름을 쓸 것이지, 왜 알파벳으로 암호 따윌 쓰는 건지. 몇 번 언급하지도 않던 인물을 갑자기 범인이라고 들이대질 않나, 알고 보니 정신질환, 알고 보니 1인 2역…… 내가 읽어도 얼굴 화끈거리게 뻔뻔한 설정들이 아직도 많다니까.” “등장인물의 입장에서는 한마디하고 싶은 말이 있다. ‘좀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서 쓰면 안 될까?’ 산장은 언제나 폭설로 고립되고, 외딴섬의 별장도 폭풍우로 늘 고립된다. 이런 식이라면 독자들도 곧 질려 버릴 것이 뻔하다.”
열두 가지 대표적인 트릭을 적나라하게 밝히며, 그러한 트릭으로 정형화된 소설을 짓는 작가를 자조하던 목소리는 독자에 대한 불평(!)도 서슴지 않는다. “어이, 독자. 그렇다고 웃을 일만은 아냐. 그쪽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치밀한 이야기를 짜 놓아도, 그대들은 적극적이지 않아. 발단부터 해결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길 바라지. 내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탁월한 플롯을 짜 놔도, 그대들은 근거 없는 직관으로 한두 명 범인으로 꼽아 둔 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대사를 칠 뿐이잖아.”
일찌감치 이러한 진리ㅡ쉽게 쓴 추리소설은 책장 쉽게 넘기는 독자를 얻는다ㅡ를 깨달은 그이기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소설에 다른 패턴과 다른 무늬를 새겨 나간 것이리라. 추리소설은 뻔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보다 먼저 그 대사를 외치고는, 황당해 하는 독자의 뒤통수를 또 한번 치는 작가다. 소설 속 열두 가지 대표 트릭 이야기 역시, 단순히 트릭을 지적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블랙 유머로 결말지어 두 번 웃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추리소설을 써 낸다. 그가 이러한 상황마저도 소설로 써 내는 걸 보니, ‘추리’라는 재료를 가장 잘 다루는 수석 요리사가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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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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