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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휘슬은 울리나

프리미어 리그 심판들은 아스날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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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심판이 올바르고 공정한 판정을 해주길 바라지만, 그 기대는 자주 배반당한다. 특히 아스날과 연애중인 이들은 경기를 보다가 억울한 판정들에 여러번 속을 터뜨린다. 이것은 정말 모두 우연일까? 처음에는 그저 사소한 추측이었다. ‘저 주심(마이크 딘)이 나오면 왠지 아스날은 그날은 경기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에게는 마땅히 지켜야할 것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규칙을 만들고 지킨다. 심지어 연인 사이에도 지켜야할 것이 있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기에, 우리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그렇게 그어지는 작은 '선'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된다. 어떤 이유로든 이 '선'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자신이 내키는대로만 행동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갈등과 상처로만 얼룩질 뿐이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도 이러한데, 하물며 두 팀이 상대방을 꺾기 위해 투쟁하는 스포츠는 오죽하겠는가. 여기에서는 더욱 엄격한 규칙이 세워져있다. 공평한 승부를 위해, 반칙과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그 어느 곳보다도 투명하고 명확한 규칙들이 스포츠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스포츠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이 규칙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을 수호하는 자, 그들의 이름은 ‘심판’이다.

문제는 심판도 인간이기에 결과물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2014년 3월 22일, 첼시전이었다. 전반 14분경, 토레스의 패스를 받은 아자르가 아스날의 골문을 향해 슈팅을 날렸고 볼은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손을 맞고 나갔다. 고의적인 핸들이었으므로 레드카드(퇴장)감이었고, 페널티킥을 내어주는게 맞다. 하지만, 주심은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코너킥을 선언했다가 뒤늦게 부심으로부터 상황을 전해듣고 레드카드를 꺼내보였다. 여기서 문제는 엉뚱한 사람을 퇴장시켰다는 것이다.

[출처: BBC Match of the Day] 

해설자 :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손이 닿았고, 안드레 마리너(주심)는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가 옳은 판정을 하는 것입니다. 아스날 선수들로서는 항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의 손의 닿았습니다. 난 그가 이 판정에 불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볼은 골을 향하고 있지 않았지만, 확실한 레드카드입니다.”

캐스터 :
“아르센 벵거와 아스날로서는 재앙이 벌어지고 있네요. 15분 만에 2-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한 명이 퇴장당하면서 10명이 됩니다. 앗! 깁스가 퇴장당해서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고 있네요? (손에 닿은 것은)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었는데... 그(주심)는 무슨 일을 한거죠?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은 피치 위에 남아있고, 키에란 깁스가 떠났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결국, 경기가 끝나고 나서 영국 축구협회는 잘못을 시인하고 선수들의 징계를 취소했다. 지나간 경기 결과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오심을 인정하고 바로잡은 것이 그나마 작은 위로일까. 이미 두 골이나 먹혔고 세 번째 골을 허용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오심이 아스날의 경기를 망쳤다고 모든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겠지만,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를 바로세워야 할 심판이 오히려 아스날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지만, 아스날로서 심판에게 부당한 판정을 받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마치 세금과도 같은 느낌.

[출처: BT Sport] 

원론적인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골. 그럼 축구에서 골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쉽게 넣을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질문은 전세계 유명한 감독들이 모여서 논의했던 주제이기도 한데, 그 답은 의외로 하나로 모아졌다. 바로, 세트피스(Set-piece).

축구는 22명의 선수들이 피치 위에 한데 뒤섞여서 움직이는 연속적인 스포츠이다. 야구와 비교하면 더욱 알기 쉬운데, 야구는 한 타자, 한 타자씩 나누어 승부를 보고, 이닝별로 공수 교대를 하는 등 작은 끊어짐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이사이에 감독의 작전과 준비된 플레이가 펼쳐질 수 있다. 반면에 축구는 45분의 전/후반전이 끊김없이 진행된다. 단,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누군가의 반칙이 선언될 때까지. 그러면 경기는 멈추고 그 자리에서 프리킥같은 세트피스가 주어지는데, 이때 위치와 상황에 따라 준비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세트피스에서는 개개인의 움직임을 조직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단 번에 공을 골대 근처까지 보낼 수 있으니 자연스레 골이 들어갈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파울조차도 실은 승부를 판가름할 계기가 될 수 있고, 박스 안에서 얻어내는 페널티킥이라면 더욱 결정적이다. 만약, 상대방에게 레드카드를 받게 하여 선수 숫자를 한 명 줄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선수들은 작은 접촉에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피치 위에 뒹굴면서 심판으로부터 반칙 선언을 얻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때로는 그 연기가 딱 걸려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고통스럽게 얼굴을 감싸쥐며 쓰러진 후에 슬쩍 상황을 확인하는 바르셀로나의 부스케츠)
[출처: MBC ESPN] 

이와같이 축구에서는 심판의 크고 작은 판정들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심판이 올바르고 공정한 판정을 해주길 바라지만, 그 기대는 자주 배반당한다. 특히 아스날과 연애중인 이들은 경기를 보다가 억울한 판정들에 여러번 속을 터뜨린다. 이것은 정말 모두 우연일까? 처음에는 그저 사소한 추측이었다. '저 주심(마이크 딘)이 나오면 왠지 아스날은 그날은 경기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는 식으로 말이다.

[출처: 데일리 메일] 

그러나 4년간 마이크 딘이 주관한 경기에서 딱 1승 밖에 거두지 못했다는 기록은 나에게 그것이 더이상 단순한 감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마이크 딘 주심의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다른 팀들이 절반 정도의 승률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되어 더욱 차이는 극명했다. 믿고 있던 심판의 공정성에 근본적으로 의문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심판은 공정한가?

이런 나의 궁금증을 풀어줄 자료가 있었으니, Referee Review 2013(www.refereedecisions.co.uk) 이었다. 프리미어 리그에는 공식적으로 배정된 17명의 심판이 있는데, 이들의 판정들에 대해 기록하고 분석해놓은 통계 자료를 제공했다. 이 내용의 핵심은 심판들의 ‘틀린 판정’, 즉 ‘오심’들이었다. 어느 심판의 오심이 어느 팀에게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적용되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아스날과 관련된 수치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출처: Referee Review 2013] 

맨 윗줄의 아스날을 보자. 심판이 저지른 오심 중 131개가 아스날에 유리하게 판정되었고, 453개가 불리하게 판정되었다. 이 수치를 상쇄해서 경기수로 나눠보면 결과적으로 아스날은 매 경기에서 8.4개의 부당한 판정을 받은 격이다. 반면, 맨유를 보면 평균적으로 4.7개의 유리한 판정을 받았다. 그러므로 아스날과 맨유가 경기를 한다고 가정하면, 90분동안 평균적으로 13.2개의 오심이 아스날에 불리하게, 맨유에 유리하게 나온다는 의미이고, 이는 7분마다 아스날은 불공평한 판정을 받는 꼴이다. 놀라운 수치.

[출처: Referee Review 2013] 

아스날이 그동안의 경기에서 부당하게 적용받은 오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단 눈에 띄는 수치는 두 번째 옐로카드. 총 12번의 오심중에 11번은 부당하게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했다는 의미. 레드카드도 총 8개의 오심이 전부 아스날로서는 억울한 퇴장들이었다. 이런 결정들이 경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 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또한, 두드러지는 수치는 파울/프리킥.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상대팀 선수들이 아스날 선수들을 걷어차도 5~6번은 반칙이 선언되기는 커녕, 오히려 아스날의 반칙이라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렇게 아스날에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걸까? 정답은 너무 간단했다. 프리미어 리그 심판 전원.

[출처: Referee Review 2013] 

빨간 그래프는 해당 팀에 불리한 성향을 나타내고, 초록색 그래프는 유리한 성향을 나타내는데, 아스날은 여지없이 온통 빨간색 뿐이다. 그리고 그 수치도 압도적이다. 반면, 맨유와 토튼햄에는 유리한 판정을 나타내는 초록색 그래프가 다수 존재했다. 맨유와 토튼햄에 유리한 판정을 해준 심판들이 아스날은 불리한 대우를 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통계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구단이었던 맨유에 유일하게 대항하던 클럽이 프랑스인 감독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이라는 사실. 전통적으로 현지에 많은 팬을 거닐고 있는 토튼햄의 가장 직접적인 라이벌 역시 아스날이라는 사실. 혹시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리그에 안티-아스날의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프리미어 리그 심판진이 정말로 안티-아스날 성향을 띠고 있다면 아스날은 매 시즌, 매 경기, 매 순간을 부당한 판정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외부적으로는 맨시티, 첼시처럼 돈을 펑펑 쓰는 클럽들과 경쟁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심판들의 개인적 성향에 맞서싸워야 한다니. 왜 이렇게 우리에게는 하나도 쉬운 것이 없는 걸까.

내가 게임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각본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하는 이 세상의 논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누군가가 흘린 땀의 결실이 때로는 기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결과에 특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누군가의 각본이 존재하고 있다면, 더이상 스포츠는 아름다울 수 없다.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잃은 금메달, 그 이상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스포츠의 진정성과 감동이었다.

[출처: SKY Sports] 

연인에게도, 선수에게도, 그리고 심판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지켜야할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잊는 것 중 하나는 심판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피치 위에서 쉼없이 뛰고 있다는 것이다. 부당하고 어이없는 판정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90분간 땀흘리고 있는 그들의 노력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삑ㅡ'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울릴 심판의 휘슬 소리는 누군가를 위한 울림이 아니라, 부디 피치 위에서의 흔들림없는 정의로움의 외침이길. 그리고 이왕이면 나처럼 아스날과 연애까지는 안해도 좋으니까, 우리를 조금만 덜 미워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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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hungarida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주변에 흔한 보통의 서울 남자. 아스날과 12년째 연애중. 트위터 아스날 가십(@AFC_Gossip)에서 아스날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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