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종석의 한국어 강좌> 첫 번째 스텝이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다. 다섯 번째 시간의 주제는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였다. 이번 시간에는 수강생들이 꼽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나누고 김수영이 꼽은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도 알아보았다. 또 ‘한국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다른 언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졌다.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 언제나처럼
『자유의 무늬』 를 첨삭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문장은 ‘-한 것은 아니지만 -한 것’이었다. 이 문장은 비문은 아니지만 ‘-것’이 반복되기 때문에 글을 읽을 때 충돌하는 느낌을 준다. 고종석은 글을 쓸 때, 가급적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을 줄여야 매끄러운 글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 명사를 살펴보았다. 고종석은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 명사를 사용할 때는 수식되는 말을 앞에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세 사람의 소방관’보다는 ‘소방관 세 사람’으로 쓰는 게 더 한국어답다. ‘세 권의 책’은 ‘책 세 권’으로, ‘두 되의 쌀’은 ‘쌀 두 되’로 쓰면 된다. 한 수강생이 ‘세 권의 책’이 조금 더 숫자를 강조하는 게 아니냐고 서로 다른 용법 같다고 물었다.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고종석은 우리가 평소에 쓰는 구어를 떠올려보라 했다. 그리고 정육점에서 “한 근의 돼지고기 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를 쓰지 않느냐 되물었다. 그제야 다들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수강생 한 명이 지난 수업에서 언급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추가 설명을 부탁했다. 고종석은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라 답했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압구정은 굉장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며 말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고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고종석은 이와 함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다른 각도로 바라볼만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중 자신을 일부러 ‘조센징’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는 ‘조센징’이라는 말로 차별 받아왔으니 그 이름 그대로 차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스스로 그 이름을 고집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은 단순히 어떤 어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언제나 무조건 따라야 할 법칙은 아니라 했다.
쉼표의 사용도 한번쯤 집고 넘어갈 문제였다. 고종석은 삽입구가 너무 길어지면 쉼표를 적절하게 사용해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너를 사랑해’ 나 ‘너를 하늘만큼 사랑해’는 쉼표 없이도 의미가 분명하다. 하지만 삽입구가 더 길어진다면 ‘너를’과 ‘사랑해’ 사이에 쉼표를 사용하는 게 좋다. 그래야 주어와 술어가 쉽게 눈에 들어오면서 글쓴이의 의도가 분명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자유의 무늬』 수정을 마친 고종석은 오늘의 주제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로 강의를 시작했다. 시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뭘까?”하는 질문이었다. 수강생들은 흔히 아름답다 말하는 프랑스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한국어 등 이런 저런 언어를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고종석이 ‘모국어’라 답했다.
개개인에게 모국어만큼 언어의 속살을 느끼게 해주는 말은 없다는 거였다. 그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언급하며 자신은 이 책에 등장하는 선생님처럼 언어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도 모국어는 한 인간에게 중요한 언어라고 말했다. 고종석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어휘를 알아야 하는데 이럴 때는 사전을 이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말했다. 특히, 유의어나 반의어 사전을 비치해두고 글을 쓸 때 자주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글을 쓰다 보면 같은 말이 반복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유의어 사전을 이용하면 어휘가 풍부한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문장 구조상 대조되는 낱말이 필요할 때는 반의어 사전을 활용하면 된다. 이렇게 사전을 두고 계속해서 훈련하다 보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어휘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다음으로 수강생들이 꼽은 아름다운 우리 말 열 개를 소개했다. A반에서는 ‘사랑, 엄마, 그리움, 오롯하다, 노을, 담백하다, 시나브로, 꿈, 햇살’이, B반에서는 ‘그윽하다, 설레다, 고즈넉하다, 품다, 그리다, 따스하다, 도란도란’ 이 많이 나왔다. 수강생들은 다른 사람들이 꼽은 우리말들을 하나씩 중얼거려보며 곱씹었다.
계속해서 시인 김수영이 꼽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펴보았다. 김수영은 산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10개로 ‘마수거리’,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부싯돌’, ‘벼루돌’을 꼽았다. 이제는 쓰지 않는 말도 많지만 한국어의 말맛이 잘 살아있는 어휘들이며, 김수영의 삶을 보여주는 어휘였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던 고종석은 현재 한국인의 최애캐인 세종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운을 띄웠다. 정말 세종이 백성을 불쌍하게 여겨 한글을 만들었을까? 그의 답은 ‘아니다’였다. 고종석은 세종이 백성 세계의 의식 성장을 고려했던 건 사실이지만 민중 통제를 위한 수단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세종이 집권하던 시절은 여전히 고려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었고 백성들이 하나의 이념 아래 묶이지 않은 시기였다. 조선을 건설하고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확고한 정당성을 확립하지 못한 셈이다. 그렇기에 세종은 백성들이 국가의 이념 아래 백성들이 정체성을 가지길 원했다. 훈민정음은 바로 그 기초교육을 위한 도구였다. 통제에는 교육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바른 소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친다’는 뜻인데 여기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것은 국가의 관점에서 보는 바른 소리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소리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당시 중국의 한자발음과 한국의 한자발음은 서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자가 들어와 오랜 세월이 지나며 많은 부분 변형된 때문이다. 세종은 한자의 ‘바른 소리’를 찾고 싶었다. 조선의 한자발음이 중국의 발음과 닮아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을 만든 데는 한자의 원래 소리를 찾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다.
이어 한국어가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알아보았다. 지난 시간 언어는 의사소통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15세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만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15세기 한국어랑 지금 한국어는 다른 언어다. 고종석은 이를 ‘한국어’가 있는 게 아니라 ‘한국어들’이 있다고 표현했다. 한국어는 고대 한국어, 중세한국어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라는 말로 간단히 쓰고 있지만 한국어에는 여러 층위가 있으며 15세기 한국어와 지금의 한국어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같은 관계다.
한국어의 역사를 살펴본 뒤, 한국어가 다른 언어와 맺는 관계를 알아보았다. 먼저, 고종석은 수강생들에게 한국어가 어떤 어족인지에 물었다. 다들 한 목소리로 ‘우랄-알타이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종석은 가만히 웃으며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이 언어 유형은 비슷하지만 한 가족으로 분류하기는 조금 힘들다고 말했다. ‘우랄어족’에는 헝가리 핀란드 등의 나라가 있고, ‘알타이 어족’은 터키, 몽고, 만주어, 일본어가 있는데 현재는 우랄어와 알타이어를 따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같은 어족으로 분류하려면 기초언어나 기본적인 수사나 신체언어에서 음운대응이 필요한데, 제대로 음운대응이 되지 않아 현재는 폐기되었다.
핀란드의 언어학자인 구스타프 존 람스테드는 알타이어족을 만들고, 한국어 어원사전을 쓴 학자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알타이어족이라 생각하고 긴 기간 연구했으나 죽기 전에 확신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한국어는 아직까지 어떤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다. 알타이어족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다. 수강생들이 입을 모아 말한 우랄-알타이어족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알타이어족인 일본어를 놓고 연구했을 때, 고유어끼리 대응되는 것이 거의 없다. 가끔 일본어와 한국어 음운이 대응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어휘들은 대부분 일본어의 차용이라 어족 연구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강좌를 마무리하며 고종석은 한국어가 ‘고아 언어’라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말은 화성에서 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그는,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쩌면 이렇게 가족 없는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우리가 특별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수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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