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시작하기 전,
『자유의 무늬』 를 함께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종석은 이미 자신의 저서인 이 책을 읽고 마음껏 뜯어 고쳐보라고 주문한 상태였다. 그는 글쓰기에 있어 어떤 설명과 조언보다 직접 읽고 쓰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수업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어쩌면 이 책을 읽고 고치는 과정 안에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책을 펴며 그는 한국어다운 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간결함’이라고 말했다. 의미가 변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간결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것. 고종석은 수정을 하면서 자신의 글에 대해 ‘원고를 늘리기 위한 수법’이라거나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글’ 이라는 평을 서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제를 지적하는 수강생들에게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입니다!” 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그를 보며 수강생들은 종종 웃음을 터트렸다.
이날도 수업은 불필요한 ‘의’를 빼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한국의 지식인사회’, ‘국학분야의 연구자’ 등에서 ‘-의’를 제외하면 훨씬 깔끔하고 단정한 글이 된다. 간혹 ‘-의’가 빠지고 나니 체언들의 나열 같아 어색하다는 말을 하는 수강생도 있었다. 고종석은 대뜸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며, 수강생의 언어감각을 존중해주었다. 물론 그 말이 합당하게 느껴질 때 말이다. 고종석은 글쓰기에 정답이 없고, 개인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고려했다.
두 번째로 지적한 부분은 ‘-들’의 사용이었다. 엄밀하게 따졌을 때 복수가 옳더라도 뜻이 충분히 통하면 ‘-들’을 쓰지 않는 게 좋다. 문장의 가독성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운데’ 라는 표현도 주의 깊게 사용하라고 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은 ‘그들 상당수는’으로 써도 충분히 의미를 알 수 있다. 부사 뒤에 쉼표를 찍지 말라는 이야기도 반복되었다. 그는 ‘실상’이나 ‘실은’ 뒤에 찍는 쉼표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도 자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고종석은 공적인 글쓰기에서 ‘우리’라는 표현은 저널리즘의 객관성을 무시한 것이라 말했다. 특히 신문기자라면 더욱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게 좋다. 기자가 유지해야 할 균형감각이 이 낱말과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학교수’ 와 ‘우리 사회’는 ‘한국의 대학교수’ 와 ‘한국사회’로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어 고종석은 ‘생각하고 있다’와 같은 현재 진행형 문장은 한국어에 알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생각한다’ 정도로 가볍게 쓰라고 조언했다. ‘여기고 있다’는 말도 ‘여긴다’ 정도로 표현하는 게 좋다.
글에서 실명을 거론해야 할 경우 이름 뒤에 ‘-씨’를 붙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고종석은 이날 어느 정도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문이나 예술인의 경우, 평론과 같이 인물에 대한 진지한 글을 쓸 때는 ‘-씨’를 붙이지 않는다. 문학평론을 떠올려보면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시나 소설, 인물에 대한 평을 할 때는 ‘김지하’나 ‘조정래’라고 바로 쓰는 걸 볼 수 있다.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유명인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씨’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김태희는’, ‘기성용은’ 과 같이 바로 이름을 언급한다. 고인의 경우도 ‘-씨’를 사용하지 않는다. ‘안창호씨’, ‘이순신씨’라고 쓰지 않는 걸 보면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대신 글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이 아닐 경우라며 ‘-씨’를 붙여주는 게 좋다.
이어 고종석은 보조사를 사용하면 문장의 뉘앙스가 섬세해지지만 때에 따라 굳이 분류할 필요가 없을 때도 많다고 했다. 이 경우 보조사를 삭제하면 문장이 훨씬 담백해진다. 예를 들면 ‘역시도’나 ‘아마도’가 그런 경우인데, 간단하게 줄여 ‘역시’나 ‘아마’로 쓰는 편이 낫다. 같은 조사나 낱말을 한 문장 안에서 반복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다. 물론 보조사나 조사를 줄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언어감각에 달려있다. 고종석은 외국인이라면 보조사와 주격조사의 쓰임을 구별하는 게 어렵지만 한국인은 이미 언어감각이 내면화 되어 있으니 더 자연스러운 쪽으로 판단하라 말했다. 그 밖에도 불필요한 ‘-동안’이 자주 쓰인다며 ‘상당기간 동안’을 ‘상당기간’으로 고치라 지적했다. 한국어에는 자동사인 동시에 타동사인 낱말이 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능동을 쓰는 게 좋은데, 그 편이 더 한국어답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자동사가 조금 더 단정해 보이고 타동사는 구어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대체로 자동사를 쓰는 편이 더 세련되게 보인다고 했다.
숨 가쁘게 수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다. 고종석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한국어의 특징들을 간단히 정리했다. 특히 음성상징과 색채어를 적절히 활용하면 한국어다운 문장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곧 이번 시간에 주요 테마인 한자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종석은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어는 크게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와 중국에서 온 한자어로 나눠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일본에서 온 한자어는 일본에 대거 유입되었던 네덜란드문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크게 발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자어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대거 유입된다. 물론, 중국에서 유입된 한자어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랜 시간 중국에 사대를 했던 조선에서 양반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에서 한자어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종석은 ‘한자어’의 사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한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일본식 조어는 피하는 것이 옳지만 한자어 자체는 이미 한국어의 일부분이라는 거였다.
고종석은 유럽의 예를 들어 과도한 한국어 순혈주의를 지적했다. 중세 영국에서는 프랑스 왕가가 궁중에 있으면서 상류층은 불어를 쓰고 하층민만이 영어를 썼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는 마치 조선 사회에서 양반들이 한자를, 중인 이하의 계급과 여성들이 한글을 사용했던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한자어를 없애자’고 하는 식의 운동은 하지 않는다. 이미 자기 언어로 정착된 것을 들어내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거다. 한자어를 없애면 한국어는 반 도막이 된다는 게 고종석의 생각이다.
보통 한자어는 고유어와 한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여름옷은 하의 혹은 하복과 쌍을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쌍을 이루는 한자어와 고유어를 마주하면 이 둘을 같은 뜻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자어를 없애도 고유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한자어 대신 고유어를 쓰는 게 더 한국어답다는 생각도 거기에서 시작된다.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니 고유어로 대체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고종석은 세상에 동의어는 없으며 유의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름옷과 하복은 비슷하긴 하지만 같은 말은 아니라는 거다. 두 낱말이 서로 다른 뉘앙스와 용법을 가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한자어와 고유어는 1:1 대응을 하지 않는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고치다’는 ‘수리’, ‘치료’, ‘개정’ 등 여러 낱말과 대응한다. ‘고치다’는 말을 쓰면 넓은 범위로 뭉뚱그려지지만 한자어를 사용하면 조금 더 섬세한 한국어를 구사하게 된다. 고종석은 이런 한자어를 없애버린다면 한국어는 가난하고 메마른 언어가 될 거라고 했다.
게다가 한자어와 고유어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혈액’과 ‘피’는 유의어이긴 하지만 그 쓰임은 서로 다르다. ‘피바다’나 ‘피가 끓는다’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이럴 때 ‘피’를 ‘혈액’으로 바꾸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또 ‘생명’은 다른 사물에 대해 비유적 사용이 가능하지만 ‘목숨’은 불가하다. ‘이 책은 생명이 길 거야’ 라는 말은 쓸 수 있지만 ‘이 책은 목숨이 길 거야’ 라는 말은 쓸 수 없다.
이런 예를 들며 고종석은 한자어를 사용하며 부담을 느끼지 말자고 했다. 그저 쓰고 싶은 어휘를 골라 쓰면 된다는 거다. 한자어 역시 한국어이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고유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한자어를 과하게 사용해 어려운 문장으로 독자들을 괴롭히는 건 지양해야 할 태도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한자어는 훌륭한 한국어다. 흔히 글을 잘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 어휘에는 한자어도 포함된다.
이어 고종석은 학교 문법에서 문제가 있다고 배운 ‘역전 앞’, ‘초가집’, ‘낙숫물’, ‘처갓집’ 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사실 이 표현들이 굉장히 한국어답다고 말했다. 한자어가 들어간 한국어 문장에서 이런 식의 강조는 자연스럽게 사용된다는 거였다. ‘유언을 남기다’ 같은 말을 보면 ‘유언’이라는 말에 ‘남기다’를 뜻하는 ‘유’ 자가 들어 있는데도 우리는 ‘유언을 남기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어린 소녀’, ‘큰 대문’, ‘단발머리’ 같은 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런 표현이 한자어를 받아들여 활용하는 한국어의 한 방법일 뿐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주어가 없는 명사구에 대해 배웠다. ‘철수는 내일 도쿄에 갈 모양이야’가 바로 그 예였다. 이 문장은 ‘철수는 내일 도쿄에 갈 예정이야.’ 로 바꾸는 편이 훨씬 간결하고 한국어답다. 명사문은 서술어만 있고 주어가 없는데 흔히 사용하는 ‘-것이다’가 바로 이 명사구다. 고종석은 ‘-것이다’ 라는 문장을 쓸 때 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범한다고 말하며 사용법을 정리해주었다. ‘-것이다’의 경우, 주로 예정과 추측을 나타낸다. ‘나는 내일 부산에 갈 거야’나 ‘많이 아플 거야’ 가 그 예다. ‘-것이다’는 이유나 근거를 들어 다시 설명하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앞 문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종석은 글의 첫 번째 문장부터 ‘-하는 것이다’로 시작한다면 잘못된 썼을 확률이 높으니 꼭 다시 확인해보라고 했다.
지난 시간보다 훨씬 여유롭게 강의를 마친 고종석은 과제를 확인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 날의 과제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자유의 무늬』 세 번째 단원을 읽고 수정해오는 것이었다. ‘가을’에 대해 짧은 글을 써오는 과제도 있다. 이번 강좌에서 직접 쓴 글을 첨삭 받는 첫 시간인 셈이다. 읽고 쓰는 일이 많아지는 걸 보니 한국어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듯하다. 문득, 강의 계획을 훑어보니 다음 강의명이 ‘JS느님, SNS를 부탁해!’ 다.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네 번째 시간,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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