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교재인
『자유의 무늬』 를 펼치며 고종석은 이번 시간에 꼭 알아가야 할 것으로 ‘-로서’와 ‘-로써’의 용법을 꼽았다. 모두 알고 있듯이 ‘-로서’는 자격을, ‘-로써’는 수단이나 도구를 뜻할 때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로써’의 경우, 문법상 오류는 없지만 말이 주는 느낌이 무거워 다른 표현을 쓰는 게 좋다.
고종석은 수강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용언은 활용하는 말을 뜻한다. 동사와 형용사, 그리고 서술격 조사‘ -이다’가 바로 용언이다. 이 용언에 ‘-아’, ‘-게’, ‘-지’, ‘-고’를 붙이면 부사형이 된다. 이들이 각각 제1부사형, 제2부사형, 제3부사형, 제4부사형이라 부른다. ‘살다’의 경우를 보면 ‘살아’, ‘살게’, ‘살지’, ‘살고’와 같이 활용되는 걸 알 수 있다.
명사형은 ‘ㅁ’음을 넣어 만드는 제1명사형이 있다. ‘-하다’를 ‘-함’으로 사용하는 게 이런 경우다. 다음은 ‘-기’를 붙여 제2명사형을 만들 수 있는데 ‘-하다’가 ‘-하기’가 되는 걸 떠올려 보면 된다. 많은 경우 글에서 명사형을 사용하는 것보다 용언의 부사형을 사용하는 게 좋다. 특히 ‘ㅁ’이나 제1명사형인 ‘-음’을 붙여 ‘-함으로써’로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용언+제1명사형+-로써’는 ‘용언+제1부사형’으로 고쳐 쓰는 게 더 자연스럽다.
『자유의 무늬』 에 나오는 표현들을 예로 들면 ‘휴전선을 지킴으로써’는 ‘휴전선을 지켜’로 쓸 수 있다. ‘단합함으로써’는 ‘단합해’ 로 ‘끼얹음으로써’는 ‘끼얹어’로, ‘부추김으로써’는 ‘부추겨’로 바꾸면 훨씬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된다.
그는 의미가 통한다면 ‘적어도’ 나 ‘-가운데’ 같은 표현은 삭제라고 말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적어도 외면적으로’ 는 ‘현실 사회주의가 외면적으로는’으로 바꾸는 편이 더 깔끔하다. ‘가운데’도 마찬가지다. ‘개헌론자 가운데 한 사람인 민주당 정동영’은 개헌론자가 여러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개헌론자 한 사람인 민주당 정동영’ 으로 사용한다. ‘-로의’ 같은 겹조사도 쓰지 않는 게 좋다. ‘중세로의 시간여행’은 ‘중세 여행’으로 쓰는 게 깔끔하다.
이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는 전쟁을 일용할 양식으로’ 라는 말에서 괄호 안에 ‘미국의 평화’라고 쓴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뒤에 나오는 전쟁과 평화를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미국의 평화를 뜻하지만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의미를 한눈에 읽어내리라는 보장은 없고, 한글로 명확하게 대비시켜 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괄호 안에 따로 빼서 사용한 것이다.
덧붙여 팍스 아메리카나(Pax Anericana )의 아이러니에 대해 설명했다. 이 말은 팍스 로마나(Pax Ronana)에서 비롯된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로마에 의해 세계가 지배당하는 로마의 1국 체제를 뜻한다. 팍스 아메리카나 역시 미국의 지배체제 아래서 유지되는 표면상의 평화다. 이 말에는 더 이상 힘을 겨루는 전쟁이 필요 없는, 오로지 미국의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라는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물론, 지금은 팍스 아메리카나 대신 팍스 시노아메리카나(Pax Sino Americana)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서 ‘Sino’는 중국을 뜻하는 라틴어 표기다.
다음으로 만난 표현은 ‘기본적 인권’이었다. 첫 시간부터 ‘-적’이나 ‘-적인’을 쓰지 말라고 했던 고종석이지만 이 때는 그대로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기본적 인권’은 법률용어로 정해서 사용되고 있는 공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시민적 자유’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 용어이기 때문에 그대로 쓰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고종석은 한 수강생의 지적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꼭 공적용어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데 동의했다. 글쓰기에는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사람에 감각과 판단에 의해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마니교적 이분법’이 낯설다는 수강생의 질문에 설명이 이어졌다. 이 말은 서구에서 숙어처럼 사용되는데 ‘마니교 주의’나 마니교는 선과 악의 뚜렷한 이분법적 구분을 말한다고 했다. 문장 중 ‘이니셔티브’라는 말을 영어 그대로 쓴 부분이 있는데 고종석은 번역이 잘 되지 않아서 라고 말했다. 한 수강생이 ‘선제행동’으로 쓰거나 문장 구조를 바꾸는 건 어떻겠느냐고 하자 고종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되풀이’는 사람들이 부사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부사로 쓸 수 없는 말이다. 고종석은 ‘절차를 되풀이 거치고’는 ‘절차를 되풀이해서’ 나 ‘거듭’으로 고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하며 ‘거듭’이란 말이 좋은 한국어라 강조했다. ‘-의’의 반복은 없애는 게 좋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계 시민들의 감금과’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계 시민들의 감금과’로 -의의 반복을 줄여야 한다.
‘국민국가’라는 말에 대해 의문을 가진 수강생이 있어 잠시 시간을 할애했다. ‘국민국가 nation state’는 국민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를 말한다. 이 개념은 18세기 말에 민족과 국민의 개념이 생기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정확히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과거 논리를 회복하려는 외부세력들이 프랑스를 공격했는데 이에 대응하면서 프랑스에서 ‘국민’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가 만나는 국가의 대부분은 국민국가다. 말을 마친 고종석은 갑자기 생각난 듯 ‘시민’, ‘도민’, ‘국민’, ‘인민’ 등은 단어 자체에 집합적 의미가 있으니 굳이 -들을 쓸 필요가 없다 말했다.
계속해서 첨삭이 이어졌다. ‘가능성을 도려냈다는’은 ‘가능성을 노려낸’ 으로 고쳤다. ‘도려냈다는’ 은 인용법인데 간단히 쓰는 편이 더 좋다. 신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문민통제’라는 말은 ‘민간 통제’로 고치는 게 좋다. ‘문민’이 일본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 ‘문학적 발언들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들이었다’는 ‘문학적 발언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었다’로 수정했다. 추상명사는 굳이 ‘들’을 붙여 복수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고종석은 요즘 들어 ‘-되다’를 쓰지 않는 추세라 말하며 ‘-하다’를 타동사로 쓰라고 권했다. ‘-화되다’는 ‘-화하다’로 ‘-화 시키다’는 ‘-화하다’로. 처음에는 어색해도 계속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거라 말한 고종석은 이렇게 쓰는 편이 더 한국어에 가까운 용법이라 했다. 예를 들면, ‘근대화시키다’는 ‘근대화하다’로 바꾸는 식이다.
최대한 피하라고 했던 ‘-적인’을 뺄 수 없는 때가 있다. 북한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가져와 ‘기념비적 대작’이라 쓸 경우 고치지 않는 게 좋다. ‘로동신문’ 같은 고유명사도 마찬가지다.
‘체언+조사’는 ‘부사어’와 같은데 굳이 복잡하게 사용할 필요가 없다. 부사어로 간단히 사용하는 게 좋다. ‘거기에 큰 차이가’는 ‘거기 큰 차이가’로 바꿔 쓰면 된다. 이 표현에서 ‘거기’는 ‘체언’, ‘에’는 조사인데, 간단히 ‘거기’ 만으로 말이 통한다.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을 에둘러 말하는 것도 글쓰기의 테크닉이다. 고종석은 한 글에서 ‘주체사상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공식 이데올로기’ 라고 쓴다. 마찬가지로 논어의 ‘과유불급’에 대해 말하면서 ‘공자’가 아니라 ‘선현의 가르침대로’ 라고 썼는데 이는 ‘공자’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종석의 글을 보면 주어로 ‘기자’를 많이 쓰는데 글에서 ‘나’를 주어로 쓰는 게 어색하기 때문에 고른 말이었다. 그는 칼럼이라도 ‘나’를 주어로 내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고종석은 앞서 배운 ‘-로서’, ‘-로써’와 함께 이번 수업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 이유나 근거를 대는 문장을 꼽았다. 흔히 하는 실수는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어색한 게 아니라 틀린 문장이다. ‘이유’는 ‘-때문’과 호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명백한 오문이라는 거다. 대신 ‘-것은 - 때문이다.’, ‘왜냐하면 - 때문이다’, ‘-이유는 -에 있다.’, ‘-이유는 -이다.’로 고칠 것을 권했다.
이어서 정치적 올바름을 고려한 어휘사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식모’는 ‘가정부’로 바뀌었다 다시 ‘가사도우미’로 사용된다. ‘보험외판원’은 ‘보험설계사’로, ‘청소부’는 ‘환경미화원’으로 쓴다. 또한 ‘흑인’은 ‘아프리카계 외국인’으로 ‘외국인 노동자’는 ‘이주 노동자’이 올바른 표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언어를 바꾸어도 새 언어에 본래 이미지가 쉽게 달라붙는다. 일부 좌파들은 이렇게 말만 바꾸는 것은 위선적이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글을 쓸 때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는 것은 필요하다.
『자유의 무늬』 를 보면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며 ‘볼테르가 말한’이 아니라 ‘볼테르의 말로 전해지는’ 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한 대목이 있다. 우리가 볼테르가 한 가장 유명한 말로 알려진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고종석은 사실 볼테르가 이 말을 했다는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친구와 주고받은 서신에 있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함부로 인용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용을 할 때는 분명하게 하고 정확한 게 아니면 아예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특별히 길었던 첨삭이 끝내고 오늘의 주제 ‘SNS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고종석은 간단히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대해 설명하고는 그 특징을 살폈다. 트위터의 경우, 무엇보다 140자 안에 글을 쓴다는 특징 때문에 어휘의 선택이 중요하다 말했다. 언어학적 입장에서는 글자 수의 제약 때문에 ‘담에’나 ‘낼’ 같은 줄임말들이 많이 늘어났다. 물론, 이 부분은 SNS가 보편화되기 전에도 이미 있었던 현상이지만 더욱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SNS글쓰기의 특징은 그 곳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어휘들이 많다는 점이다. ‘트위터 방언’, ‘페이스북 방언’들이 생기는 거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기 전에 고종석은 소쉬르를 빌어 언어와 방언, 의사소통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주었다.
세 사람이 ‘배가 고파’라고 말하는 걸 상상해보자. 이 사람들은 모두 다른 목소리와 억양, 말투를 가진다. 이를 소노그래프(소리나 지진파를 그대로 녹음하거나 임의의 음성 기호로 번역해서 담는 그래프)로 분석하면 이들이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소리 내어 읽더라도 이 소리 연쇄들은 똑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배가 고파’를 잘 알아듣는다. 방언이 섞여 있어도 알아듣는다. 이것은 우리가 물리적 성격의 ‘배가 고파’가 아니라 추상적 성격의 ‘배가 고파’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배가 고파’는 모두 다른 것이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수많은 ‘배가 고파’를 추상화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물리적으로 서로 다르게 실현되는 구체적 언어들을 ‘파롤’(parole)이라고 부르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 언어를 ‘랑그’(langue)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둘을 합쳐 ‘랑가주’(langage)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랑그’는 언어공동체가 받아들이고 있는 기호체계이고, ‘파롤’은 의사를 주고받기 위해 랑그를 사용하는 개별적 행위다. 랑그가 언어활동의 체계적이고 사회적인 부분이라면, 파롤은 언어활동의 우연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이다. 소쉬르는 언어활동의 이 두 측면 가운데 ‘엄밀한 의미의 언어학’이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랑그’라고 말했다.
논의는 ‘방언’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방언을 같은 언어로 생각하는 이유는 ‘의사소통 가능성’ 때문이다. ‘방언’은 보통 지리적 방언과 사회적 방언으로 분류한다. 지리적 방언은 지역에 따라 구분되는 방언이며, 사회적 방언은 특정 직업군이나 성별 등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언어를 뜻한다. 고종석은 ‘SNS방언’은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사회적 방언’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사이버 공간에 초점을 맞춰 ‘지리적 방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말했다.
이렇게 사용되는 ‘SNS 언어’는 동질성과 배타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 공적인 공간이 아니므로 한국어 문법에서 일탈하며 해방감을 맛보기도 한다. 고종석은 ‘생파’나 ‘최애캐’ 같은 트위터 용어들을 소개했다. 생파는 ‘생일 파티’, ‘최애캐’는 ‘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를 뜻한다. 처음 듣는 말에 어리둥절한 수강생들에게 국립국어원에 ‘이런 말도 있어요’ 라는 코너를 소개하기도 했다.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들을 소개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코너라 했다.
고종석은 계속해서 트윗과 멘션의 차이, 트위터에서 구알티라 불리는 수동알티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한국어의 경우 트위터를 하기 좋은 문자라며 로마자는 두 문장 쓰면 끝나지만 한국어에서는 음절 문자로 모아 쓰다 보니 압축이 된다고 했다. 그는 중국인들은 아마 더 많은 내용을 쓸 수 있을 거라며 웃었다.
고종석은 트위터 안에 정치적인 글이 많지만 사실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같은 편을 공고하게 만드는데 쓰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형식도 내용도 크게 중요하지 않은 트위터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글쓰기 능력보다 글쓰기 태도라고 강조했다. 결국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공간인 SNS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고종석은 자신도 앞으로는 ‘깨시민’이나 ‘문빠’ 같은 말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JS느님, 이제 트위터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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